[스카이&땅] ‘임신 로봇’ 진보인가 암울한 미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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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옥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5-09-01 00:02:40

▲ 로봇으로 엄마의 배까지 대체?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가 상상해서 그린 임신 로봇. 챗 GPT.

1932년 영국 작가 올더스 헉슬리는 ‘멋진 신세계’에서 비인간적 기계문명이 가져올 디스토피아에 대해 경고했다. 그런데 헉슬리가 약 100년 전 기상천외한 상상력으로 그려낸 미래가 이제 더 이상 소설 속 허구가 아닌 현실로 다가왔다. 최근 중국의 한 로봇 개발업체가 ‘AI 임신 로봇’을 1년 내에 상용화하겠다고 선언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2000만 원 정도면 누구나 기계의 자궁에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헉슬리의 소설 속에서는 기계문명과 전체주의가 결합하여 모든 것이 정부의 통제 아래 자동화 시스템에 의해 생산된다. 심지어는 인간도 기계를 통해 제조되고 태어난다. 소설 속 ‘인공 부화장’이 현실이 되려는 지금, 우리는 과연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게 될 것인가. 그가 경고했던 ‘인간성의 상실’은 기술 진보의 필연적 대가일까, 아니면 새로운 인간성의 시작일까.

현재 개발 중인 AI 임신 로봇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다. 37도로 일정하게 유지되는 양수 순환 시스템, 영양 공급 네트워크, 센서를 통한 산전 관리까지 갖춘 이 로봇은 모체의 자궁을 완벽하게 모방한 것이다. 인공지능은 실시간으로 태아의 성장 상태를 모니터링하며 최적의 환경을 조성한다고 한다. 마치 24시간 전담 의료진이 붙어있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 개발팀의 주장이다.

하지만 학계의 반응은 차갑다. 우선 “마케팅을 위한 속임수”라는 혹평이 쏟아졌다. 태반 대사, 면역 체계, 신경 발달 등 복잡한 생리적 메커니즘을 정확하게 시뮬레이션하는 것은 현재 기술로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연구팀은 핵심 데이터 발표를 연기한 상태다.

그럼에도 이 소식이 던진 파장은 실로 크다. 출산이 더 이상 여성만의 영역이 아니게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은 기존의 성 권력 구조를 근본적으로 뒤흔든다. 여성해방 운동의 선구자 시몬 드 보부아르가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이제는 ‘모태’ 역시 만들어지는 시대가 됐다는 말인가. 더 나아가 이 기술은 성소수자 부부나 독신자들에게도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다. 전통적인 가족 구조의 개념 자체가 재정의될 수도 있는 것이다.

찬성론자들은 자궁 기형으로 인한 불임 문제 해결과 출산의 고통 완화를 내세워 환영한다. 불임으로 고통받는 부부들에게는 분명 희망의 빛이 될 수 있다. 또한 출산 과정에서의 산모 사망률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 반대론자들의 우려도 깊다.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한다”는 비판부터 난자 확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상업화와 익명성 등 윤리적 딜레마까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특히 ‘기계에서 태어난 아이’의 정체성 형성에 어떤 영향이 미칠지는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다. 종교계에서는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행위”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으며, 일부 철학자들은 “인간 존재의 신비를 기계로 대체하려는 위험한 시도”라고 경고한다.

무엇보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출산의 본질이다. 출산은 단순히 생물학적 과정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에 대한 경외감, 모성애의 발현, 그리고 새로운 존재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시작되는 신성한 순간이다. 기계가 과연 이런 감정적, 영적 차원까지 재현해 줄 수 있을까. 임신 기간 동안 태아와의 교감, 태동을 느끼며 생기는 애착, 출산의 고통을 통해 더욱 깊어지는 모자간의 유대감 같은 것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AI 임신 로봇이 실현된다면 이는 분명 한 시대의 끝이자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의미한다. 기술 발전을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 기술은 결국 인간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무엇보다 여성의 진정한 선택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자연 출산을 원하는 여성을 ‘비효율적’이라고 매도해서도, 로봇 출산을 선택하는 여성을 ‘모성애 부족’으로 비난해서도 안 된다. 기술이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했을 뿐, 어떤 선택도 존중받아야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기술의 혜택을 누리되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것, 새로운 가능성에 열려있되 기본적인 가치를 지키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방향이다. AI 임신 로봇이 단순한 기계가 아닌 생명을 잉태하는 성스러운 도구로 인식될 때, 그리고 이런 원칙들이 지켜질 때만 이 기술은 인간의 존엄성을 높이는 진정한 혁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박선옥 기획취재부장

박선옥 기자 sobahk@skyedaily.com 기자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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