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호루라기재단은 공익제보자들을 돕기 위해 지난 2011년 설립했다. 국내에는 공익제보자들을 위한 단체가 몇몇 있지만 재단으로는 호루라기가 유일하다. 사진은 왼쪽부터 오상석 상임이사, 박형주 사무국장, 이영기 이사장 [사진=박미나 기자] ⓒ스카이데일리
지난 1990년 감사원에 재직 중이던 이문옥 감사관은 재벌 기업들로부터 외압을 받은 감사원의 실태를 언론에 고발했다. 이 감사관은 고발이후 파면을 당했고 검찰에 구속되기까지 했다. 또 6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법정 다툼 끝에 겨우 복직할 수 있었다.
이 감사관은 국내 최초의 공익제보자로 알려졌고 그 후 ‘제2의 이문옥 감사관’들의 양심 선언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들이 양심 선언을 하기까진 숱한 고뇌의 시간을 가졌을 뿐아니라 고발 이후 삶은 더욱 피폐해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부 고발로 불리는 공익 제보가 국내에서 활성화되지 못하는 이유다.
호루라기 재단은 공익 제보자를 돕기 위해 설립했다. 재단은 공익제보자들에게 무료 상담부터 법률 지원까지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조직 비리에 각성 요구한 제보자들, 심층 인터뷰 통해 실태 보고서 펴내
호루라기 재단의 출범은 쉽지 않았다. 한 독지가의 도움으로 재단 설립을 위한 준비는 마쳤지만 재단의 성격을 정하지 못했다. 지난 2011년 6개월에 걸쳐 어떤 성격의 재단을 만들지부터 논의했다.
그러다 공익제보자를 위한 재단을 설립하기로 결정한 이후 명칭을 호루라기 재단으로 정했다. 이어 국가인권위원회에 법인등록을 하고 7년째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호루라기 재단 서초동 사무실에서 이영기 이사장과 오상석 상임이사, 박형주 사무국장을 만났다.
▲ 이영기(사진) 이사장은 국내 공익제보자들에 대한 처우가 열악하다고 말한다. 공익제보자들의 인권 실태조사조차 없었는데, 지난 2014년 국내 최초로 호루라기 재단이 관련 보고서를 펴냈다. ⓒ스카이데일리
“조직의 비리에 눈 감지 않고 각성을 요구한 사람들을 돕는다는 뜻에서 재단 이름을 호루라기라고 지었어요. 영어로 공익제보자를 휘슬 블로워(Whistle blower)라고 하잖아요”
호루라기 재단은 무료 상담과 법률 지원 와중에 공익제보자에 대한 연구 조사에 착수했다. 2013년 펴낸 ‘내부공익신고자 인권실태조사 보고서’는 공익제보자들을 심층 인터뷰해 그들의 고뇌와 갈등을 자세하게 다뤘다.
“그 전까지 공익제보자들을 위한 어떠한 연구조사도 없었어요. 그래서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약간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실태 보고서를 냈습니다. 발간 당시 많은 언론들이 취재를 왔어요. 보고서는 지금까지도 유일한 공익제보자 기초자료로 쓰이고 있습니다”
유럽은 시민 의무로 여기고, 미국선 수백억 보상금 주기도…우리는 배신자 낙인만
몇몇 선진국의 경우 공익제보를 시민의 의무로 여기거나 막대한 보상·포상을 주기도 한다.
이영기 이사장에 따르면 공익제보자 보호는 크게 미국식과 유럽식 둘로 나뉜다. 미국의 경우 돈과 관련된 비리를 고발하면 비리액의 20%~30% 정도를 보상 받는데, 심지어 수백억원에 이를 수도 있다.
▲ 오상석(왼쪽) 상임이사는 공익제보자들이 호루라기 재단을 통해 법률 상담과 함께 다양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소개했다. 박형주 사무국장은 공익 제보를 하기 전 무료 전화 상담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스카이데일리
유럽에서는 공익제보를 시민의 의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어 고발 이후 불이익을 주는 이들을 엄하게 처벌한다.
이 이사장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20억원 한도 내에서 보상하는데, 경제 비리와 관계없는 사안의 경우 2억원 이내의 포상금을 준다. 또 공익제보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이에 대한 처벌도 미미하다.
“경제비리를 제보하면 비리자금 일부나마 보상금으로 받을 수 있지만 조직 시스템과 같은 비리를 제보할 땐 보상금이 거의 없어요. 불이익만 예상되는 상황에서 누가 제보를 하겠습니까. 우리나라는 제도가 크게 잘못돼 있어요”
내부 고발을 상담하던 이들 중에서도 중도 포기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박형주 사무국장에 따르면 내부 고발 전에 상담을 요청했다가 도중에 포기했다고 보여지는 사람들이 꽤 있다.
“작은 사회복지 단체에서 근무하던 어떤 분은 원장의 자금 유용을 고발하려 했어요. 하지만 근무자가 자신을 포함해 3~4명 밖에 되지 않았죠. 내부 고발을 하라고 독려를 할 수도 없어요. 고발자의 생계나 또 다른 불이익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죠”
“익명성 보장 안 되는 공익제보 문화 바뀌어야…앞으로 내부고발 문화 이끌 것”
▲ 호루라기재단은 2012년부터 매년 호루라기 부는 날 시상식을 개최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호루라기 시상식에서 이영기(왼쪽) 이사장이 해상벙커C유 불법 유통을 고발한 신인술(오른쪽) 씨에게 올해의 호루라기상을 시상하는 모습 [사진=호루라기재단]
호루라기 재단 관계자들은 공익제보를 가로막는 가장 큰 적은 ‘제보자에 대한 인식’이라고 입을 모은다. 조직 내에서 배신자로 낙인 찍히기 일쑤이고 협박이나 경제적 피해, 해고 등의 시련을 겪기도 한다.
호루라기 재단은 이 같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공익제보를 한 이들을 위해 3년째 대상자들을 선정해 기금을 지원하고 있다.
이 이사장은 “공익제보자들 중에 비참한 생활을 하는 이들도 많다. 이혼하거나 정신병을 앓기도 한다”면서 “이런 현실에 분노한 시민들이 거금을 쾌척해 제보자들의 생활비 지원 등에 쓰일 ‘물푸레 기금’을 만들었다”고 전했다.
호루라기 재단은 공익제보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매년 공익제보자들을 대상으로 시상하고 공익제보와 관련한 교육도 하고 제보자 친목 모임도 마련했다.
이영기 이사장은 “우리는 부정부패가 여전히 만연한 나라에 산다. 때문에 공익제보자들을 돕고 연구·조사를 하는 일은 우리 모두를 위한 일, 좀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는 일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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