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서슬 퍼런 일제 피하에서 집안 형편이 어려웠던 19세 소녀는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곳으로 데려다 준다는 생면부지의 한 남자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남자는 부모님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겠다는 간청조차 묵살하고 그녀를 끌고 갔다. 소녀가 도착한 곳은 중국 상해 일본군 주둔지였다. 전쟁 중 성노예, 속칭 위안부 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1945년이 돼서야 소녀는 고국으로 올 수 있었다. 온 몸은 구둣발 등에 걷어차인 상처로 가득했다. 칼에 이곳저곳 자상을 입은 자국도 있었다. 그리고 그 소녀는 지난 4일 별세했다. 소녀의 나이 100세였다. 그 소녀가 바로 이순덕 할머니다. 이 할머니는 1991년 일본에서 위안부 피해자 소송을 제기한 9명 중 한 사람이다. 이 재판을 통해 30만엔의 배상금 지급 판결을 일본 법정으로부터 이끌어냈다. 이후에도 이 할머니는 수요시위에 주기적으로 참가하며 증언을 이어갔다. 할머니의 죽음을 안타깝게 생각한 많은 이들이 빈소를 찾았다. 하지만 30만엔의 배상금 외에 변한 것은 없다. 오히려 현실은 냉정하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상징하는 평화의 소녀상도 계속되는 수모를 받고 있다. 지난해 12월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 건립된 소녀상의 경우 철거·재설치가 반복됐으며, 심지어 쓰레기가 투척되는 등 수모를 겪어야 했다. 소녀상을 이유로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대사와 모리모토 야스히로(森本康敬) 부산 총영사가 일본으로 소환 조치도 되기도 했다. 스카이데일리가 대한민국 근대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나라를 잃은 참담한 슬픔을 가녀린 몸으로 받아내야 했던 평화의 소녀상들을 찾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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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는 매주 수요일 평화의 소녀상(사진)을 중심으로 집회가 열린다. 지난주까지 1277회 개최됐다. 24시간 소녀상을 지키는 사람들의 활동도 오늘(10일)로 468일차에 이른다. 하지만 여전히 일본 아베정부는 공식 사과를 거부하고 있다. ⓒ스카이데일리
한 낮의 정오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재건축 공사장 앞에서는 제1277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가 열렸다. 비 오는 궂은 날씨에도 60여명의 사람들이 평화의 소녀상 주변에 모여 일본 정부의 사과를 촉구했다.
이날 자유발언에 나선 이들 중에는 초등학교 4·5학년 학생들도 있어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경기도 광명YMCA 볍씨학교 학생들이었다. 강세누(12), 박주하(12), 오윤하(12), 박상효(11) 학교를 대표해 편지를 낭독했다. 아흔이 넘은 ‘15세 소녀’를 위로하는 편지인 셈이었다.
“잊지 못할 큰 상처가 아직 남아 있으니 일본이 꼭 사과해야 해요. 반드시 일본이 사과할 때까지 건강히 살아계시고 위안부 할머니들 힘내세요. 수요집회는 최장기 집회가 됐는데, 그래서 자랑스러운 집회예요. 꼭 사과를 받길 바라고 저희도 포기하지 않을게요. 할머니들이 잘 드시고 잘 웃고 잘 지내시길 바래요. 우리가 끝까지 잊지 않고 함께 할게요. 행복하게 사세요. 사랑해요. 2017년 4월 5일 볍씨학교 4·5학년 올림”
이들의 발언 외에도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90) 할머니의 발언과 다른 시민들의 자유발언, 주최 측의 성명서 낭독으로 수요집회는 진행됐다. 주된 내용은 1277번 반복됐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본 정부의 사과였다.
집회를 마친 후 많은 사람들이 위안부 피해 할머니 주위에 모였다. 현장학습 차 집회에 참여한 고교생 이주연(19·여) 양은 할머니를 만나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였다. 집회에는 위안부 피해와 일본 정부의 사과에 공감해 참석한 외국인들이 다수 눈에 띠었다.
특히 눈에 띄는 외국인은 일본인이었다. 마츠모토 타카코(68·여) 씨와 노리 미츠(74·남) 씨는 집회에 참여한 이들에게 ‘일본국 헌법 제2장 전쟁의 금지’ 내용이 적힌 손바닥 크기의 종이를 건네고 있었다. 마츠모토 씨는 “위안부 문제는 돈으로 해결하지 말아야 한다”며 “일본이 진심으로 사죄해야 해결 할 수 있다”고 말했다.
24시간 468일 연속 소녀상 지키는 사람들…“언제 철거할지 몰라 항상 불안”
▲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에는 비닐텐트(사진 위)가 설치돼 있다. 소녀상지킴이들이 머무는 공간이다. 지난 2015년 12월 한·일 양국 정부 간 일본군 위안부 보상 등의 합의가 이뤄지면서 소녀상이 철거될 수도 있다는 우려감에 자발적으로 나선 이들이다. 사진 아래 왼쪽부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와 사진을 찍는 외국인들 및 소녀상 옆에서 피켓을 든 시민들 ⓒ스카이데일리
집회는 오후 1시 종료됐다. 소녀상 주위로는 다소 분주한 모습이 보였다. 집회를 위해 접어뒀던 텐트를 설치하고 있던 민지연(20·여), 최미정(가명·22·여) 씨였다. 이들은 소녀상을 지키겠다며 노숙농성을 진행 중이다.
텐트는 지난 2015년 12월 설치됐다. 당시는 한·일 양국 정부 간 일본군 위안부 보상 등의 합의가 이뤄진 시기였다. 보도 등을 통해 일본 측이 우리 정부에 대사관 앞에 설치된 소녀상 이전 등을 언급한 일이 전해졌다.
사람들은 소녀상을 지키자며 자발적으로 모여들었다. 현재 약 10명의 인원이 오전 9시에 하루 1회 교대하며 소녀상 옆에서 24시간 머물고 있다. 소녀상을 지키는 이들은 대학생, 직장인 등 다양하다. 농성은 오늘(10일)로 468일차다.
두 사람은 화장기 없이 푸석한 모습이었다. 민 씨는 1주일에 2·3회 농성을 이어오고 있었다. 그는 “역사를 내 힘으로 고쳐보고자 참여하게 됐다”며 “부산 소녀상의 경우 철거 후 재차 설치된 것처럼 서울의 소녀상도 언제 철거될 지 모른다는 위험성을 갖고 있는 상태다”고 말했다.
이곳에 소녀상이 처음 설치된 것은 지난 2011년 12월 14일 수요집회 1000회를 맞아서다. 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진 소녀상은 전쟁 중 성노예 피해를 입은 수많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상징이 됐다. 그런데 소녀상을 지키겠다며 자발적으로 나선 민 씨에게는 잊지 못할 순간이 있었다.
어느 날 새벽 중년 남성이 소녀상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연신 죄송하다며 울먹였다. 민 씨는 그가 누구인지 여전히 모른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가 마음 속 맺힌 응어리를 토해낼 수 있는 공간 역시 소녀상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의 노숙농성을 좋지 않게 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민 씨와 최 씨는 토로했다. 이들에 따르면 “집에가서 공부나 하지 왜 이러고 있느냐”는 타박은 다반사며 “돈 받고 이러고 있느냐”는 모욕적인 언사도 있다고 했다.
지난해 6월에는 망치테러도 일어났다. 한 30대 한국인 여성이 망치로 소녀상을 2회 내려친 것이다. 이로 인해 소녀상의 머리 부분에는 약 3cm의 흠집이 생겼다. 최미정 씨는 농성과 관련해 “소녀상이 공공조형물로 지정되는 방안이 논의 되는 등 올해는 희망을 보고 있다”면서 “이 농성이 이제 좋은 결말을 맺고 끝내야 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국 곳곳 들불처럼 번진 일본의 간악한 성 노략질 상징 소녀상 건립 66개
소녀상이 처음 세워진 것은 지난 1997년 8월이다. 경기도 광주 소재 위안부 피해자 복지시설 나눔의 집에 설치됐다. 이어 2011년 일본대사관 앞에 소녀상이 건립된 후 전국적으로 소녀상 설치 움직임은 빨라지기 시작했다.
현재 전국 곳곳에 설치된 소녀상은 총 66개다. 서울 10개, 경기 18개, 충남 7개, 전남 6개, 경남 5개, 전북 4개, 경북 3개, 강원·충북·부산 각 2개, 인천·대구·광주·대전·울산·세종·제주 각 1개다. 이들은 대부분 비슷하지만 다른 특징들도 보여주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자대학교 앞 대현문화공원에 세워진 소녀상과 서울 중구 정동길에 있는 소녀상은 서 있는 자세를 갖추고 있다. 대현문화공원에 위치한 소녀상은 파란 나비 날개를 단 채 날아오를 것만 같은 모습으로 서 있다. 소녀상의 파란 나비 날개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대학생들이 나비가 돼 함께 하겠다는 약속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소녀상은 지난 2014년 12월 서울 소재 14개 대학 연합 역사 동아리인 평화나비 네트워크의 대학생들이 모금을 해 건립됐다. 당초 이화여대 안에 세우려 했다. 하지만 학교 측의 반대로 대현문화공원에 세워졌다.
정동길에 있는 소녀상은 지난 2015년 11월 이화여고 역사동아리인 ‘주먹도끼’ 학생들의 주도로 서울 53개 고등학교 학생 6400여명의 모금을 통해 건립됐다. 소녀상은 두 다리로 굳게 서 있는 모습이며 한 손 위에는 나비가 앉아있다.
이 소녀상은 서 있는 모습을 통해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는 뜻을 담고 있으며, 들어 올려진 오른팔은 미래세대에 건네는 악수, 손 위의 나비는 일본군 위안부 희생자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에도 서울 지하철 한성대입구역 인근에 한국과 중국이 합작해 만든 ‘한중 소녀상’, 경기 부천 안중근공원에 세워진 ‘거울 소녀상’, 서울 서초고등학교에 위치해 가슴에는 무궁화를 달고 두 손에는 태극기를 쥐고 있는 ‘서초고 소녀상’ 등이 다양한 모습으로 건립됐다.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을 조각한 김운성 조각가는 일본에서 진행한 강연에서 “한일 외교에 마찰이 있을 수 있는 소녀상이 왜 일본대사관 앞에 세웠느냐”는 질문에 대해 “불편하라고 세웠다”며 “전쟁범죄와 미성년을 성적 노예로 삼고 한 번도 사죄하지 않은 건 당연히 반성해야 하는 일인데 불편해야지 떳떳하면 되겠느냐”고 강조했다.
공공조형물 지정 안 된 소녀상…지자체들 보호에 발벗고 나서지만 정부는 미온적
▲ 전국으로 급속히 번지고 있는 소녀상 설치는 다양한 모습으로 건립되고 있다. 소녀상들의 상징과 의미는 각기 조금씩 다르지만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고 역사를 잊지 말자는 의미는 같다. 전국에 세워진 소녀상들은 대부분 공공조형물로 등록되지 않아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서울 서대문구 대현문화공원의 소녀상(왼쪽)과 서울 서초고등학교 교정의 소녀상 ⓒ스카이데일리
민간 차원에서 세워지고 있는 소녀상은 현행법 상 설치에 대한 지원 근거가 없으며 공공조형물로 지정되지 않는다. 지난해 12월 부산 일본총영사관 앞 소녀상이 잠시 철거됐던 까닭도 이 때문이었다. 시민단체 등은 소녀상이 공공지형물이 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실제 강원도 원주시는 전국 최초로 소녀상을 공공조형물로 등록해 체계적인 관리를 하고 있다. 원주시청공원에 위치한 이 소녀상은 지난 2015년 8월 지역 65개 시민단체와 시민 1200여명이 참여해 제작됐다.
‘원주 평화의 소녀상 시민모임’은 설치 전부터 소녀상이 체계적인 관리를 받기 위해 공공조형물 지정을 시청에 제안했다. 이를 받아들인 원주시는 현재 소녀상을 위해 CCTV와 조명시설을 설치했다.
이후 각 지방자치단체들도 소녀상을 보호하기 위해 나서고 있다.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 위치한 소녀상도 별도 조례 제정을 통해 보호하기로 했다. 이처럼 지자체가 소녀상을 보호·관리하는 추세가 이어지고 있지만 정부는 미온적인 반응만 보이고 있다.
부산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이 설치된 후 일본 측이 항의를 하자 “국제예양 및 관행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만큼 우리 정부·지자체·시민단체 등 관련 당사자들이 이런 점을 고려하며 적절한 장소에 대해 지혜를 모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지난 5일 수요집회에 참가한 설치미술가 이효열(32) 씨는 “외교적 입장을 고려하더라도 정부는 소녀상 설치·관리에 대해 환경조성 수준의 조치라도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하고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 주 글렌데일에서도 소녀상 철거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으나 결국 존립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졌다”며 미국보다 소녀상에 대해 무관심한 정부를 질책했다.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대표는 “정부는 일본 정부가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는 것에 대해 과거 잘못을 저지른 역사의 책임을 명확하게 해결하라고 요구해야 한다”면서 “소녀상 철거 요구는 ‘2015 한일합의’ 때문인데, 정부는 이 합의를 지키기 위해 애쓰지 말고 무용화를 위한 절차를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윤 대표는 “지금 시민들은 적극적으로 소녀상을 세우고 지키기 위해 활동하고 있으면서 역사에 대한 소중함을 인식하고 있다”며 “역사의 아픔이 다시 반복되지 않기 위해 과거 역사를 올바르게 기억하고 미래 세대들에게 잘 교육하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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