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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사람들]-성폭력 반대 연극인 행동
“미투 운동이 연극계 적폐청산 신호탄 됐죠”
문화·예술계 성추문 악습 근절 노력…피해자 지원 및 연대활동 앞장
이성은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18-03-17 00:23:05
▲ ‘성폭력 반대 연극인 행동’(이하·성반연)은 지난 달 22일 출범해 연극계와 예술계열 대학 내 성폭력 피해자들을 돕고 있는 단체다. 사진은 왼쪽부터 성지수 ‘콜렉티브 뒹굴’ 연출가, 김보은 연극배우, 방혜영 연극집단 ‘공외’ 작가 겸 연출가 [사진=박미나 기자] ⓒ스카이데일리
 
“최근 미투 운동이 ‘정치공작 논란’으로 번지고 있어요.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미투 운동에서 가해자가 어떤 사람인지 중요하지 않아요. 정치공작으로만 바라본다면 피해자 입장에서는 2차 피해나 마찬가지죠. 미투 운동에 어떠한 물음표도 끌어들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성폭력 반대 연극인 행동(이하·성반연)’은 연극계의 성폭력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결성된 단체다. 최근 미투(#Me too) 운동의 열풍으로 연극계 내에서도 피해자들이 속출하자 이번 기회를 통해 성폭력을 뿌리 뽑겠다는 의지로 출범했다. 130명 이상의 연극인들이 모여 만들어진 단체는 출범 직후 성폭력 가해자, 조력자들과 함께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극단 내 피해자들과 연대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성반연은 △피해자 지원팀 △언론대응팀 △대외협력팀 △지지자 지원팀 △운영 지원팀 △온라인팀 등 6개 팀으로 나눠 활동하고 있다. 향후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이나 개선점을 지속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추적팀도 신설한다는 계획이다.
 
매주 월요일 오후 피해자, 지지자 등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정기 모임도 개최하고 있다. 피해자들이 성폭력 피해 사실을 이야기하고 그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다. 포럼을 통해 새로운 담론을 형성하기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변질되는 미투 운동 인식…“피해자에겐 2차 가해나 다름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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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집단 ‘공외’ 작가 겸 연출가인 방혜영(38·여) 씨는 지지자 지원팀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미투 운동에서 가해자가 누구인지 중요한 게 아니라 피해자가 피해를 당한 사실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남성이 여성과 거리를 두는 행위인 ‘펜스 룰’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미투 운동을 정치공작 등으로 해석하는 건 굉장히 위험해요. 피해자 입장에선 정치공작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2차 가해나 다름없기 때문이죠. 미투 운동이 확산되면서 거론되는 펜스룰도 마찬가지에요. 여성이 (사회에서) 하는 일이 많지 않다는 인식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죠. 여성을 배제시킨다는 건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어요”
 
▲ 성반연에서 활동하는 연극인들은 최근 정치공작 등 미투 운동을 바라보는 일부 시선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 피해자들에게 2차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사진은 왼쪽부터 방혜영 연극집단 ‘공외’ 작가 겸 연출가, 성지수 ‘콜렉티브 뒹굴’ 연출가, 김보은 연극배우 ⓒ스카이데일리
 
같은 팀에서 활동하는 ‘콜렉티브 뒹굴’의 성지수(28·여) 연출가 역시 ‘펜스 룰’에 대한 우려를 털어놨다. 여전히 남성중심주의가 강한 한국사회에서 ‘펜스 룰’은 여성의 사회적 고립을 불러일으키는 위험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대부분 언론이나 온라인에서 사용되는 ‘펜스 룰’의 의미는 ‘사회적 고립’을 의미하는 것 같아요. 문화 권력이든 제도적 권력이든 실질적인 권력을 남성들이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죠. 남성중심의 문화 때문인데 이걸 ‘미투 운동의 역풍’으로 연결 짓는 건 크게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온라인관리팀에서 활동하는 연극 배우 김보은(34·여) 씨는 미투 운동을 바라보는 시선이 변질되고 있는 점에 대해 의혹 어린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는 의도적으로 미투 운동을 음해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주장했다.
 
“미투 운동을 음해하려는 사람들이 따로 있다고 생각해요. 미투 운동으로 정치인이 이슈되기 전까진 성폭력 사실을 폭로하는 피해자들을 ‘꽃뱀’으로 몰고 가려는 사람들과 ‘그걸 왜 이제 와서 말하느냐’며 의심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죠. 사회에 성폭력이 만연해 있다는 걸 밝히고 싶지 않은 사람들과 우리 사회에 성불평등이 있다는 걸 부정하려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미국에서 미투 운동이 시작됐다고 해서 우리나라에서도 갑자기 미투 운동이 나타난 건 아니에요. 지난해에도 문단 내 성폭력은 이슈가 됐죠. 그동안 쌓여 온 올바른 인식과 행동이 바탕이 됐기에 지금과 같은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봐요. 미투 운동이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건전한 성 인식의 토대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만연하게 번져있는 무대 뒤 성폭력…자성의 노력으로 변화 이끌어내야”
 
방혜영 씨에 따르면 그동안 연극 무대 뒤편에 성희롱·추행 행태가 만연해 있었다. 성희롱 발언을 듣더라도 불쾌한 감정을 숨기고 아무렇지 않게 반응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혹여 불쾌한 기색을 내비쳐도 가해자로부터 진심어린 사과를 받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지난 2005년 막내로 들어간 극단에서 1년 정도 활동을 하던 중 당시 극단 창단 멤버인 남자 선배 배우가 제게 술을 4병 먹이고 손목을 잡아끌더니 대뜸 모텔에 가자고 했어요. 거절했더니 오히려 ‘너 이러면 앞으로 극단생활 힘들다. 너는 작가·연출가를 한다는 애가 남자를 몰라서 어떻게 좋은 작품을 쓰겠냐’고 말하더군요. 그 상황을 빠져나와 3일 동안 사과를 기다렸지만 결국 아무 말이 없었어요. 극단 대표에게도 말해 봤지만 제대로 처리 되지 않았죠. 결국 저는 극단을 나왔고 그 선배는 계속 극단에 남았죠”
 
▲ 성반연은 지난 달 23일부터 피해신고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피해자들의 상담 내용에 대해 비밀을 보장하고 피해자들의 지원에 앞장서고 있다. [사진=‘성폭력 반대 연극인 행동’ SNS]
 
문화·예술계에 만연한 성범죄는 부조리한 시스템에 기인한 것이라는 게 성반연의 주장이다.연극계에선 인맥이 곧 자산이 되는 만큼 배우는 성범죄 피해를 당하더라도 폭로하기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연극영화학과만 봐도 가해자들이 연극계 선배이면서 선생님인 경우가 많죠. 학생 입장에서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 그 사람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어요. 연극계는 누구와 작품을 하고 누구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 자산이 되죠. 성폭력을 폭로하기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어요”
 
성지수 씨도 문화·예술계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지금까지 거장으로 불린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성추문에 휩싸이는 모습을 볼 때 지나친 권력의 집중이 결국 성범죄를 초래했다는 주장이다.
 
“예술계 중·고등학교의 실태도 심각하지만 대학교는 교수 카르텔이 분명 존재한다고 봐요. 한 대학 교수가 가해자로 지목돼 징계를 받는다고 해도 그는 학생들의 평가, 졸업, 장학금 등에 영향을 미치죠. 카르텔은 한 사람을 찍어낸다고 해결되지 않아요. 실제로 한 교수의 성추문 사건이 일어난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이럴 때 일수록 공부만 하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해요”
 
“정부나 기업의 지원을 받는 단체와 공동체 작업이 중요한 집단일수록 폐쇄적일 수밖에 없어요. 공동체가 깨지지 않기 위해 침묵하는 경향이 크죠. 특히 투자자들은 다양성보다 실패하지 않는 작품에만 투자해요. 상황이 이렇다보니 예술계 거장들이 각종 사업을 독점하면서 권력을 갖게 되는거죠.”
 
성반연은 기존 권력에 맞서 성폭력이 만연한 사회를 고발하고 개선하기 위해 청주대·세종대·서울예대 등 학내 미투 운동 모임을 지원하고 연대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아직 후원 계좌를 개설하지 않았지만 후원하고 싶다고 알려오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성지수 씨는 미투 운동을 계기로 연극계가 변화할 수 있다는 믿음을 내비쳤다. 연극계가 자성의 목소리를 낼 때 변화가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일부 오랜 세월 연극계에 몸담은 분들은 ‘나의 연극사를 다시 써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고민을 해요. 미투 운동에 의해 가해자로 지목된 연출가와 함께 한 작품을 자신의 프로필에서 지워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연극계 내부에서부터 악습을 지워내기 위해 자성의 노력을 하고 있다고 봐요”
 
[이성은 기자 / 시각이 다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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