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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초]-모델 이연화

“청각장애 절망 속에서 몸짱여왕 타이틀 거머줬죠”

어린 시절부터 홀로 생활…청각장애 판정 후 운동 통해 시련 극복

김민아기자(jkimmina@skyedaily.com)

기사입력 2018-04-10 01: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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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델 이연화(사진) 씨는 2016년 청각장애 판정을 받아 오른쪽 귀의 청력 70%를 잃었다. 그는 지난해 4월 열린 ‘2017 맥스큐 머슬마니아 오리엔탈 챔피언십’에서 패션모델 톨 부문 여자 1위와 그랑프리를 차지했다. [사진=박미나 기자] ⓒ스카이데일리
 
“제 꿈은 문화부 장관이 되는 것이에요. 물론 꿈을 이루기 위해선 해야 할 것들이 굉장히 많죠. 도전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끊임없이 새로운 일을 찾고 있죠. 하나의 도전을 마치고 난 뒤 느끼는 성취감이 저에게 자신감을 북돋아 줘요. 그 자신감은 제가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죠”
 
모델 이연화(28·여) 씨는 지난해 4월 열린 ‘2017 맥스큐 머슬마니아 오리엔탈 챔피언십’에서 패션모델 톨 부문 여자 1위와 그랑프리를 각각 차지했다. 이 씨의 수상은 단순히 상을 받았다는 개념을 넘어 부족함을 딛고 이뤄낸 성과라는 점에서 특히 주목을 받았다. 이 씨는 지난 2016년 청각장애 판정을 받은 장애인이다. 현재 그의 오른쪽 귀는 30% 정도의 청력만 남은 상태다.
 
어린 시절부터 홀로 생활…스스로 책임지는 삶 속에서 갑자기 찾아온 청각장애에 ‘좌절’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의 밑에서 자란 이연화 씨는 어린 시절부터 홀로 보내는 보내는 시간이 유독 많았다. IMF외환위기 시절 가세가 급격히 기울면서 부모님은 사업을 위해 외국으로 떠났다. 그나마 저녁에라도 부모님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 것이다. 이 씨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혼자 살기 시작했다.
 
“그래도 고등학교 때는 교복이 있어서 다행이었죠. 초등학교 때는 같은 옷을 일주일 정도 입고 다닌 적도 있었어요.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시다 보니 끼니를 챙겨주는 경우가 거의 없었어요. 어린 나이라 할 수 있는 요리가 없어서 밥과 간장, 그리고 김치만 끼니를 때우기 일쑤였죠”
 
이 씨는 2008년 경희대학교 조형미술과 산업디자인과에 진학했다.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내며 알게 된 불합리한 문화 등을 개선하고 싶어 문화적으로 큰 영향력이 있는 사람을 꿈꿨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것이 많아 대학생활도 바쁘게 보냈다. 하루에 2~3시간 숙면을 취할 정도로 24시간이 모자랐다.
 
▲ 이연화(사진) 씨는 대학 시절 하루에 2~3시간만 자면서 꿈을 위해 매진했다. 그러던 어느날 오른쪽 귀가 들리지 않아 병원을 찾았고 ‘돌발성 난청’ 판정을 받았다. 일주일의 치료 과정을 거쳤지만 청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현재는 치료를 통해 30% 가량 청력을 회복한 상태다. ⓒ스카이데일리
 
“전공에 관한 공모전도 나갔고 여자 최초로 학생회장도 했어요. 학교에서 디자인과 예술학을 같이 전공하는 사례가 없어서 학교에서 ‘융합학습대상 장학생’으로 선정돼 관련 프로젝트도 했어요. 그러던 중 디자인 서바이벌도 나가게 됐죠. 지금도 생각하면 대학생 때가 가장 행복했었던 시절 같아요. 다시 돌아가고 싶을 정도에요”
 
디자인 서바이벌에 나가 최연소로 여자 파이널리스트 디자이너가 되는 등 승승장구 하던 이 씨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날 점심을 먹던 중 한 쪽 귀가 들리지 않고 이명이 들렸다. 처음에는 피곤해서 그런 것이라고 넘겼다가 증상이 지속돼 동네 병원을 찾았다. 큰 병원으로 가야한다는 의사의 말에 대학 병원을 찾았고 ‘돌발성 난청’ 판정을 받았다. 청각세포가 계속 죽어나가는 증상이었다. 이 씨는 치료시기를 놓치게 되면 청력을 잃을 수도 있다는 주치의의 말에 바로 입원해 치료를 시작했다.
 
“장애 진단을 받기 전에는 정말 아무렇지 않았어요. 잔병치레도 거의 하지 않았으니까요. 입원하고 나서도 아무렇지 않았죠. 청력세포가 전부 죽은 것이 아니라 높은 주파수대만 들리지 않은 거라 치료하면 회복될 것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병원에서 권장한 일주일의 치료 과정 중에서도 청력은 계속 떨어졌어요. 퇴원할 때는 오른쪽 귀의 감각, 청각이 전부 사라졌죠. 결국 장애판정을 받았는데,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어요”
 
“밖을 걷는 데 어디서 소리가 나는지 몰라서 어지럽고 구토를 할 것만 같았어요. 걷는 것이라는 쉬운 일상생활도 어려웠죠.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어도 그냥 안 들리는 게 아니라 이상한 소리가 계속 들렸어요. 청각세포가 손상된 거라 진동 변환을 제대로 못해서 다른 소리가 난거죠. 잠도 제대로 잘 수도 없어 상당히 괴로운 시간을 보냈죠”
 
무엇보다 그를 힘들게 한 것은 다른 사람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일상생활 자체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어려운 집안 사정을 알기에 부모님께 부담을 주지 않으려 장애 판정 직전까지 하루가 모자를 정도로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절망은 더했다.
 
“이렇게 열심히 살아온 나에게 이런 시련이 왜 닥쳤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가족도 친구도 다 싫었죠. 공감할 수 있는 병도 아니니까요. 만약에 치매 환자가 있다고 하면 아무리 가족이어도 6개월 정도는 돌보지만 그 이상은 짐이 된다는 얘기가 있잖아요. 제 병도 소리가 계속 들리는 병이기 때문에 신경이나 정신적으로 병이 올 수밖에 없어 평생 안정제나 수면제를 먹고 살아야 하는데 거기에서 오는 합병증도 무시할 수 없었죠. 남은 80년 동안 그 상태로 살 자신이 없는 것이 가장 두려웠어요”
 
무기력증 극복하고자 선택한 운동…준비 두 달 만에 ‘머슬마니아 그랑프리’ 차지
 
▲ 청각을 잃고 절망하던 이연화 씨는 운동으로 장애의 아픔을 극복했다. 하루 종일 운동에만 매진한 결과 두 달 만에 머슬마니아 대회에서 그랑프리를 차지했다. 사진은 머슬마니아 대회에 출전 중인 이연화 씨의 모습 [사진=로터스제이와이]
 
이 씨는 대학병원에서 일주일간의 입원 치료를 마치고 다른 병원에서 6개월간의 치료를 한 번 더 받았다. 약물 부작용으로 얼굴이 붓는 ‘쿠싱 증후군’을 겪기도 했다. 기적적으로 오른쪽 귀의 청력이 30% 가량 돌아왔지만 이미 손상된 세포라 올바른 소리로 변환하지 못해 이명은 더욱 심해졌다. 힘든 치료를 마쳤지만 이 씨는 무기력한 감정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장애판정을 받은 후 아무것도 하지 않았죠. 내가 돈을 얼마를 벌었고 어떤 프로젝트를 성공했고 같은 일은 아무 소용이 없었어요. 집에만 누워있는 생활이 계속됐죠. 어느 날 한 친구가 ‘하늘은 그 시련을 겪을 수 있는 사람에게만 시련을 준다. 지금 이 시련이 나중에 자서전을 쓸 때 너를 빛나게 해 줄 한 줄이 될 것이다’고 말해줬어요. 이 말을 들으니 원망만 하고 살 수 없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다시 일어서기를 결심한 그는 몸도 마음도 망가진 자신을 재정비하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운동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가벼운 근력운동 위주로 했다. 유산소를 하면 소리가 너무 커져서 숨쉬기가 힘들어져 근력에만 집중했다. 그는 두 달 뒤에 있을 ‘머슬마니아’ 대회에 나가는 것을 목표로 오로지 운동에만 매진했다.
 
“뭘 시작한 이상 목표가 있어야 하고 그 분야에서 최고가 돼야 한다는 욕심이 있어요. 그 때 트레이너 선생님이 머슬마니아 대회를 소개해줬죠. 2년 정도 준비를 해야 나갈 수 있다는 만류도 있었지만 오기가 생겨 두 달 후 열릴 대회 출전을 목표로 열심히 준비했죠”
 
그는 하루 종일 운동에만 매진했다. 몸을 예쁘게 보여주기 위해 워킹과 포즈 훈련도 병행했다. 대회를 준비하면서 비키니도 난생 처음 입었다.
 
“대회 당일가 제일 힘들었어요. ‘마지막이다’라는 생각이 들다보니 하이힐을 신고 무대에 서는 것조차도 엄청난 압박감으로 다가왔죠. 무대에 올랐지만 힘이 없어 포즈와 워킹을 힘차게 할 수 없어 천천히 진행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천천히 한 것이 남들과 달라 플러스 요인이 됐죠. 전화위복이 된거죠”
 
마침내 그랑프리의 영예를 얻었지만 이 씨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그에게 대회 수상은 노력하면 보상을 얻는 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동시에 다른 도전을 할 수 있는 동기 부여가 됐다. 이후 세계 대회 출전, 잡지 모델, 방송 활동 등 다양한 분야로 영역을 넓히기 시작했다.
 
“지금도 장애를 받아들이려고 적응하고 있어요. 사실 대회에서 수상을 하고 난 뒤에도 방송이나 연예 활동은 전혀 생각이 없었죠. 그러던 중 ‘나도 그냥 포기하고 살고 있었는데 연화 씨가 해내는 것을 보고 다시 살아갈 용기가 생겼다’는 말을 들었죠.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저처럼 아프다는 걸 알게 됐죠. 그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일반 사람들보다 빛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제 모습이 그분들에게 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앞으로 무엇이든지 최선을 다할 생각이에요”
 
[김민아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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