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정보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 9개 금융공공기관의 비정규직 비율은 3.93%(976명)으로 집계됐다. 항목상 ‘비정규직’으로 분류되지 않은 무기계약직은 비정규직의 4.5배인 18.27%(4527명)이었고 용역·파견 등도 12.74%(3156명)에 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재임기간 중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했다. 이어 지난해 7월에는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정규직 전환 움직임을 본격화했다. 금융공공기관인 IBK기업은행 역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착수했다. 한 발 더 나아가 기존 비정규직으로 분류돼 있지 않았던 파견·용역 근로자들의 정규직화까지 추진하고 나섰다. 청원경찰, 청소원, 운전기사 등이 대상이었다. 기업은행의 이러한 움직임은 친노동을 지향하는 문재인정부의 정책 코드에 발맞춰나가겠다는 의지로 해석됐다. 그런데 최근 기업은행을 두고 겉만 그럴싸한 친노동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추구한다고는 하지만 정작 실상은 이름만 정규직인 새로운 형태의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스카이데일리가 IBK기업은행의 파견·용역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생긴 갈등을 취재했다.
|
국책은행인 IBK기업은행(이하·기업은행)이 친노동을 지향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 비정규직 근로자 등을 기만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겉으로는 문재인정부의 정책 코드에 발맞춰 친노동을 지향하면서도 정작 뒤로는 ‘반(反)노동’ 행위을 일삼고 있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논란은 파견·용역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촉발됐다.
국책은행 기업은행, 문재인정부 친노동 코드 발맞춘 파격행보 ‘호평’
노동부, 노동계 등에 따르면 문재인정부는 지난해 7월 연구원, 집배원 등 상시·지속적인 업무에 종사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을 골자로 한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이번 가이드라인을 통해 사회 양극화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비정규직에 대한 저임금·고용불안 등의 문제를 해결해 노동존중사회를 구현하겠다는 방침이다. 공공부문에서 비용절감을 위해 비정규직을 늘리는 악순환을 차단하겠다는 의지도 피력했다.
국책은행인 기업은행 역시 문재인정부의 정책 방향에 맞춰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정규직 전환을 추진했다. 특히 지난해 9월에는 은행권 최초로 청원경찰과 청소원, 운전기사 등 파견·용역 근로자에 대해서도 정규직화를 추진한다고 밝혀 여론의 조명을 받았다. 정부가 제안한 범위를 넘어서는 친노동 행보에 노동계 안팎에서 긍정적인 반응이 주를 이뤘다.
기업은행은 지난해 9월 노사전문가 협의기구를 구성하고 파견용역 근로자 정규직 전환을 위한 방법과 절차 등을 위한 논의에 착수했다. 노사협의를 위한 노사대표단도 구성했다. 노다대표단은 청원경찰, 경비, 관리, 미화, 사무보조, 조리, 운전 등 각 직군별 대표들이 주축이 됐다. 청원경찰 측 대표는 600여명이라는 인원수를 고려해 지부를 대표하는 단장 1명과 본사 측 경비 인력을 대표하는 간사 2명으로 구성됐다. 현재까지 14차례 회의를 진행했다.
“용역 자회사 설립 후 정규직 채용, 정규직 가면 쓴 비정규직과 다를 바 없어”
최근 그동안 노동계 안팎의 호평을 받았던 기업은행의 파견·용역 근로자 정규직 전환 행보를 둘러싼 잡음이 일고 있다. 기업은행이 직접 고용이 아닌 따로 자회사를 설립하는 방식으로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결국 기존 은행 직원들과 동등한 조건이 아닌 상대적으로 열악한 조건의 정규직 채용이 불가피하다는 게 파견·용역 근로자들의 반응이다.
기업은행의 꼼수 정규직 채용을 지적한 주체는 청원경찰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기업은행이 노사 합의 과정에서 노동자 전체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고 대표자와 날림식으로 협의를 맺었다고 주장했다. 지방의 기업은행 지점에서 청원경찰로 근무 중인 이영미(여·가명) 씨는 가장 문제로 꼽히는 것은 ‘단장과 청원경찰 노동자 간의 소통 부족’이라고 털어놨다.
이 씨에 따르면 청원경찰 노동자들은 노사협의를 위한 소통창구로 인터넷·모바일 커뮤니티 개념의 ‘네이버 밴드’를 이용하고 있다. 회의내용이나 진행상황 등을 올리고 서로의 의견을 공유하고 있다. 밴드에 가입한 노동자는 약 100여명 정도다.
이 씨는 “최근에 노동자들 사이에 단장이 자회사 안에 사인을 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어떤 것도 안내를 받은 것이 없었다”며 “이에 일부 사람들이 단장에게 직접 물어보니 사인을 한 게 사실이라고 답했다”고 귀띔했다.
이어 “대부분 노동자들의 의견을 묻지 않은 것 뿐 아니라 자회사로 가면 어떤 근무 조건, 급여 조건이 있는지 조차 설명하지 않았다”며 “밴드에 가입한 인원도 사실 전체 노동자 중 일부에 불과해 노사협의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모르는 사람도 태반이다”고 설명했다.
이 씨는 직접고용이 이뤄지지 않으면 기존 열악한 처우를 벗어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특히 경비 업무 외에 다른 부수적인 업무에 내몰리는 상황이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청원경찰은 은행에서 경비만 해야 하고 그 외 고객안내나 은행 업무 지원은 불법 파견 개념이나 다름없지만 상대적으로 ‘갑(甲)’의 입장인 은행에서 시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경비 외 업무를 안 한다고 하면 은행이 용역회사에 전화해 다른 사람으로 교체해달라고 할까봐 불안하기 때문이다”며 “직장을 잃을 수 도 있는 데 누가 거절하겠느냐”고 지적했다.
일부 청원경찰 근로자들 사이에서는 근로자 대표와 기업은행 사측 간에 협약 의혹도 일고 있다. 이 씨는 “처음에는 단장이 이런 불법 파견을 증명할 증거를 모으라고 독려해 열심히 모았지만 어느 순간 자회사로 결정으로 입장을 선회했다”고 강조했다.
“처음에는 회의 내용도 밴드를 통해 잘 공유했지만 얼마 전부터인가 회의 결과에 대해 ‘변동 사항이 없어 할 말이 없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단장이 기업은행과 손을 잡은 것이 아니냐는 의심도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기업은행의 자회사 설립을 통한 파견·용역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내용은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게재된 상태다. 지난 16~18일 동안 총 네 차례의 청원 글이 게재됐다. 게시글을 올린 작성자는 “정부 가이드라인은 ‘직고용’과 ‘자회사’ 모두 논의하라고 했지만 처음부터 은행 측은 자회사를 강조했다”며 “파견용역 대표단 선출과정, 외부전문가 배정 등도 문제인데 특히 변호사는 기업은행 고문변호사 출신이라 근로자들의 입장을 제대로 반영할 지 의문이다”고 주장했다.
이어 “경비직군 약 800여명의 의견수렴 없이 단장과 몇 명의 의견과 동의만으로 은행 측의 자회사 안에 사인까지 했다”며 “노사합의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는 정부 가이드라인에 반해 행해지는 고용전환이고 고용안전과 처우개선이라는 정책의 목표에서 어긋나버리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근로자 간 갈등 조장하는 기업은행, 겉으론 친노동 뒤론 반노동”
노사협의회에서 청원경찰 측 대표자는 근로자들의 주장을 강력 부인했다. 오히려 본사 측 경비인력을 대표하는 2인과 일부 지부 청원경찰 노동자들이 의도적으로 자신을 비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청원경찰 측 단장 김모 씨는 “물론 직접고용이 되는 것이 가장 좋은 시나리오다”며 “하지만 은행측 노조에서 찬성을 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해 직접고용을 주장하다가 자회사로 방향을 돌렸다”고 설명했다.
그는 은행과의 계약이 많이 남은 점도 직접고용을 계속 주장하기 어려웠던 이유 중 하나로 꼽았다. 김 씨는 “기업은행과의 계약이 내년 12월까지인데 계속 직접고용을 주장하면 이 일을 계속 하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강조했다.
김 씨는 “2주에 한 번 있는 노사협의회에 참석하는 것도 부담스러웠다”며 “사측이 정한 시간은 평일 오후 2시인데 이 회의에 참석하려면 근무 시간 중에 가야해 근무지를 계속 비워 둬야했다”고 털어놨다.
김 씨는 자신도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김 씨에 따르면 그는 단장을 맡은 이후에 두 차례의 인사이동을 겪었다.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지점이동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에 비춰볼 때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통상적으로는 은행 측에서 용역회사에 근무자 변경을 요청한다. 그는 휴가를 낸 청원경찰의 빈자리를 메우는 ‘대직’을 한 후 현재 근무하는 지점으로 이동했다.
화살은 근로자들의 갈등을 조장하는 기업은행 사측을 향하는 분위기다. 다른 공공부문에서 시도하지 않았던 파견·용역 근로자들의 정규직 전환으로 생색을 냈지만 정작 뒤로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는 지적이 노동계 안팎에서 일고 있다. 겉으로는 친노동을 지향하면서도 뒤로는 반노동을 일삼고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기업은행은 “노조가 대표를 직접 선출해서 협의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자세한 내부적인 내용까지 사측에서 알기는 어렵다”며 “아직 자회사 안으로 최종 결정 난 것은 아니고 협의를 진행하고 있지만 어느 정도 진행됐는지 말하기는 곤란하다”고 말을 아꼈다.
[김민아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