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투기세력을 잠재우고 급등하는 강남지역 집값의 거품을 걷어내기 위해 정부는 지난해부터 강력한 규제 대책을 연이어 내놨다. 그러나 정부 규제는 오히려 강남 집값을 높이는 결과만 낳고 말았다. 치솟는 강남 집값으로 인해 실수요자들을 중심으로 그동안 저평가됐던 강북권 뉴타운 일대에 관심이 모아지기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집값이 저렴하고 각종 개발호재로 입주 후 생활 인프라가 갖춰지면 도심 속에서 한적한 주거생활을 영위하기에 적합하다는 판단이 작용된 결과로 분석된다. 그런데 최근 서울의 한 뉴타운에서는 높은 기대감을 가지고 입주를 결정한 입주민들 사이에서 잡음이 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논란이 불거진 장소는 고양시 택지개발지구(삼송·지축)와 맞닿아 있는 은평뉴타운이다. 이곳 주민들은 은평구에서 추진하는 광역자원순환센터 건립을 거세게 반대하고 있다. 아파트 단지 한복판에 향후 은평구·마포구·서대문구 등 세 지역의 재활용 쓰레기를 처리하는 시설이 들어서게 되면 쾌적한 주거 환경 조성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또 혐오시설로 분류되는 재활용 쓰레기 처리 시설이 들어서면 집값 하락도 불가피하다며 재산권 침해 가능성을 문제 삼고 있다. 스카이데일리가 은평구 광역자원순환센터 부지 및 은평뉴타운·고양시 택지지구 등을 찾아 쓰레기 처리 시설 건립 추진에 대한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을 직접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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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적한 환경 하나 믿고 입주했는데 단지 한 복판에 쓰레기처리장 건립이 웬 말”
은평구 광역순환자원센터 건립 사업은 총 498억원 사업비를 투입해 지하 1층, 지상 1층 규모의 재활용쓰레기 처리시설을 건립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2016년 건립 타당성조사 및 기본계획 수립용역을 마치고 지난해 국비 지원을 위해 서울시·환경부로부터 투자심사 과정을 거쳤다.
사업부지는 은평구 진관동 소재 한국지역난방공사 삼송지사 옆에 자리하고 있다. 자원순환센터는 기존 노후화된 수색 재활용집하장을 대신해 재활용 폐기물을 처리한다. 이곳 재활용선별시설로는 마포구·서대문구의 재활용 쓰레기도 들어오게 되는데 세 지역구를 통합한 자원순환센터를 통해 쓰레기 처리의 효율을 높이겠다는 복안이다.
오는 8월 착공에 들어가 2020년 9월 준공 예정이었으나 사업은 계획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급기야 2021년 9월 준공으로 사업 계획이 일부 변경됐다. 쾌적한 주거생활을 기대하며 인근 아파트 단지에 입주한 주민들의 거센 반발 때문이다. 주민들은 주거 밀집지역 한 가운데 쓰레기 처리시설을 마련한다는 것은 상식 이하의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지축지구 입주를 앞두고 있는 홍윤정(40·여) 씨는 “아무리 집에서 분리수거를 잘 한다고 해도 음식물이 묻어있던 쓰레기들을 선별하는 시설이기 때문에 악취나 해충 등이 가장 우려가 된다”고 말문을 열었다.
홍 씨는 “예산이 부족해서 완전 지하화를 할 수 없어 지상 1층 규모로 지으면서 첨단시설을 도입해서 깨끗하게 운영하겠다는 말을 믿을 수 있겠냐”며 “환경영향평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법적 논리로 은평뉴타운을 비롯해 삼송·지축지구 등 10만명이 살 동네에 기피시설을 넣는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발상이다”고 말했다.
은평뉴타운에 거주하고 있는 강현철(55·남) 씨는 “꼭 필요한 시설이라는 건 공감하지만 앞으로 여기서 10년을 살지, 20년을 살지 모르는데 쓰레기장을 옆에 두고 아이를 키우라는 건 기본적인 생활권을 보장해주지 않는 처사다”며 “이미 10년 전부터 원주민들의 민원이 계속 됐다고 하는데 달라진 게 없다는 걸 이사 와서 알았다”고 토로했다.
향후 자원순환센터가 들어서면 이곳에서는 하루 기준 150t에 달하는 재활용품을 비롯해 생활 폐기물 130t, 대형폐기물 25t 등 약 300t가량의 쓰레기를 적환하게 된다. 주민들은 쓰레기를 나르는 수십여대의 운반차량이 주거단지를 오갈 경우 일대 소음공해는 물론 비산먼지 등의 피해도 우려했다.
지축지구 입주 예정자인 김진철(40대·남·가명) 씨는 “다른 재활용선별시설을 보면 운반 차량이 쓰레기를 깔끔하게 운반하지 못해 도로가 더럽혀지고 악취가 심하게 난다고 하더라”며 “최소 수십여대의 운반차량이 새벽시간데 오가게 되면 악취는 물론 미세먼지에 소음까지 잠도 편하게 잘 수 없게 될 게 뻔하다”고 하소연했다.
또 다른 주민 황수정(36·여) 씨는 “외국에서는 쓰레기 처리장을 주택단지 10km 이내에는 짓지 않는다고 하더라”며 “구청에서는 이미 2000년 도시계획단계에 사업부지가 지정됐다며 받아들이라는 입장인데 은평뉴타운, 삼송, 지축 등 차례대로 입주를 마치는 등 당시와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고 말했다.
이어 황 씨는 “지축지구가 모두 입주를 마치면 자원순환센터와는 1k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초·중·고등학교가 들어선다”며 “게다가 500m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주거단지가 마련됐는데 곧이곧대로 사업을 밀어붙이겠다는 건 졸속행정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쾌적한 환경, 편리한 교통 등 집값 상승 호재 가로막는 재활용쓰레기장 건립 결사반대”
은평구 광역자원순환센터는 고양시 삼송·지축택지개발지구와 불과 50~200여m 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그동안 교통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탓에 다소 소외돼 왔던 이곳 지역은 남북경협 및 교통호재 등이 맞물리면서 주택 수요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점차 높아지는 추세다.
은평뉴타운과 삼송지구 사이 알짜 입지를 자랑하는 지축지구의 경우 일대 지역 평균분양가가 가장 높은 지역으로 꼽힌다. 지난해 7월 분양한 ‘지축역반도유보라’의 경우 3.3㎡(평)당 평균분양가가 1480만원대였다. ‘고양 지축지구 중흥S클래스’는 평당 평균 1501만원에 분양가가 책정됐다. 지축지구에 들어서는 전용 84㎡ 주택형은 평균 분양가가 5억원대에 달한다.
삼송지구 ‘삼송호반베르디움22단지’ 전용 84㎡는 2012년 당시 매매가가 3억원 후반대였으나 올해 5억원대로 올랐다. 같은 평형대의 ‘삼송2차아이파크’의 경우 2015년 입주 당시 4억원대에 거래가 이뤄졌으나 올해 6억원대로 매매가가 상승했다. 불과 2년여 만에 2억원 이상의 시세차익이 발생한 셈이다.
주민들은 각종 호재로 집값이 꾸준히 오르는 분위기가 재활용처리시설이 들어서게 되면 한 풀 꺾일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생활권 침해로 집을 파는 이들이 늘어나는 동시에 매입 수요는 줄어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는 어렵사리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룬 서민들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게 인근 지역 주민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삼송지구에 거주하고 있는 김형주(40대·남) 씨는 “서울보다 집값이 싸다고는 하지만 은평뉴타운을 비롯해 삼송·지축지구 일대 단지는 분양가만 4~5억원대에 달한다”며 “내 집 하나 겨우 가진 서민들인데 재활용처리시설 때문에 불편해서 집을 판다고 해도 서울에서 집을 구할 수도 없는 돈이다”고 말했다. 김 씨는 이어 “이미 정해진 사업이니까 못 살겠으면 나가라는 식의 행정으로 답답할 따름이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이상진 은평기피시설백지화투쟁위원회 위원장은 “은평뉴타운을 비롯해 삼송·지축지구는 70% 가량이 서울로 통근하는 젊은 부부들이 많은 지역이다”며 “쓰레기장을 가까이에 둔 채로 2~3살 어린 자녀를 키워야 하는 상황에 대해 지자체가 어떤 대화나 충분한 설명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주민들은 반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해당 시설이 주거권이나 재산권 등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자료도 없지 않냐”며 “대체 사업지를 마련하고 은평구 광역자원순환센터 건립 사업을 전면 백지화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두영 은평구청 청소행정과 팀장은 “실질적으로 악취가 심한 음식물처리시설이 아니라 재활용선별시설이고 실내에서 선별 작업이 이뤄지기 때문에 악취가 주거단지까지 멀리 확산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17년이나 걸린 사업이고 꼭 필요한 시설이기 때문에 최신설비를 도입해 안전하고 쾌적하게 만들고 반대하는 주민들을 지속적으로 설득해 나가겠다”고 설명했다.
기피시설 건립과 관련해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재활용선별시설이 악취가 심하지는 않지만 일대가 더러워질 수 있기 때문에 주민들이 기피하는 건 당연하다”며 “이미 예정된 사업이고 주거단지와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자칫하면 집값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가령 철골구조로 건물을 지어서 주차장, 주민공동시설 등과 재활용선별시설을 함께 개발하는 등 주민들 삶의 질을 높이면서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주민과 지자체가 함께 마련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배수람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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