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현 서울통상 대표는 겨울 초입이 되면 마음이 바빠진다. 길거리 노숙자들에게 마음이 쓰이기 때문이다. 전 대표는 6~7년 전부터 사비를 털어 노숙자 겨울나기를 지원하고 있다. 어느 해부턴가는 여름철도 속옷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페이스북 이웃들도 하나 둘 십시일반 도와서 지금은 제법 규모가 있는 봉사활동이 됐다. 과거에는 침낭, 장갑, 목도리 등을 사서 지원했지만 몇 해 노하우가 쌓이다보니 노숙자들이게 가장 필요한 게 뭔지를 알게 됐다.
침낭은 겨울나기에 필수품인 것 같지만 부피 때문에 들고 다니기 힘들어서 시장에 되팔아 버린다. 장갑, 목도리는 늦가을이면 스스로가 준비한다.
노숙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핫팩. 뼛속까지 파고드는 칼바람 속에서 그나마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것이 핫팩이다. 하루에 대여섯 개 씩 한 겨울을 날 수 있을 정도로 지원해 주는 게 목표다. 전 대표가 페이스북에 노숙자 지원 글을 올리면 독지가들이 제법 움직인다. 후원금이 모이면 물건을 사서 자원봉사자들과 직접 거리로 나선다.
자원봉사자들은 시청, 을지로, 광화문, 종각 등 4개 지역 지하철 역사를 중심으로 노숙자들에게 물품을 나눠준다. 올해는 핫팩과 넥워머 등을 준비할 예정이다. 처음에는 누군가 유통기한이 임박한 빵을 지원 할 테니 필요한 곳에 전해달라고 해서 시작한 일이다. 그래서 빵을 들고 나간 곳이 서울역과 서부역을 연결하는 다리였다.
현장에 나가 본 결과 먹는 것 보다 더 심각한 일이 잠자는 문제였다. 박스만으로는 피할 수 없는 추위가 다리 위를 꽁꽁 얼게 만들었다. 그래서 침낭과 장갑, 목도리 등을 지원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여름이면 속옷을 지원해 청결을 도왔다. 전 대표는 “누굴 돕는 일도 중독이 되는 같다”며 “올핸 핫팩과 넥워머, 그리고 현금 5000원을 드리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앞으로 계속하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노숙자 빵 나눠주다가 사비 털어 해마다 자원봉사
전 대표는 유통업을 한다. 생활잡화와 식료품 등 팔 수 있는 모든 것을 취급한다. 주특기는 팔지 못하고 쩔쩔매는 제품을 게 눈 감추듯 팔아 치우기다. 전대표의 유통업 경력은 25년 쯤 된다. 스포츠용품을 하던 선배가 사업이 어려워져 못 팔던 고글 수십 만 개를 2주 만에 팔아치운 ‘전설’을 가지고 있다.
선배에게 창고에 쌓여 있는 고글을 팔아보겠다고 트럭 3대를 불러 싣고 나왔다. 처음엔 스포츠용품점에 100~200개씩 팔았다. 한 점포에서 명동 K안경원이란 곳을 찾아가 보라고 했다. K안경원은 당시 3대 안경점으로 유명했다. 삼풍백화점, 신세계백화점과 명동점 3곳을 운영하는 곳이었다.
K안경원 측에서는 전 대표에게 재고가 몇 개나 있냐고 물었다. 10만개 쯤 있다고 하니 놀라면서 각 점포당 1만개씩 3만개를 주문했다. 개당 1000원 씩, 3000만원어치를 한꺼번에 팔았다. 전 대표는 “계약을 하고 나오는 데 다리가 후들거렸다고 했다. K안경원 주인은 남대문 쪽 안경점을 소개해줬다. 그렇게 해서 또 5000개를 팔았다. 일일이 셀 수가 없어 지금도 정확한 개수를 모르지만 수십만 개는 족히 됐다고 한다.
이후로는 일단 주문만 받았다. 혼자서 주문 받고 배달하기가 버거웠기 때문이다. 그러고선 하루 날을 잡아 용달을 빌려서 거래처를 돌았다. 당시 용달 하루 일당이 3만원 하던 때인데, 10만원을 줬다. 2주 만에 판매대금 2억 원을 만들어서 선배에게 가져갔다. 선배는 깜짝 놀라며 “진정한 영업체질”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선배는 2억 원에서 200만원을 뗀 나머지를 사업자금하라며 돌려줬다. 그 자금을 시드머니로 해서 오늘의 서울통상을 만들었다. 한번은 테일러메이드 골프채를 트럭 4대분을 운 좋게 팔아 치웠고 물건을 만들어 놓고 못 파는 회사 제품이 그이 손에 들어오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고글 수 십 만개 2주 만에 완판…사업 밑천 만들어 유통 시작
전 대표는 페이스북에서 ‘전재현마켓’이란 생활소품 판매그룹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이미 페이스북에서 ‘전재현=신뢰’라는 등식을 완성시킨 신용의 대명사가 됐다. 매장에서 취급하는 제품 서너 개씩 남은 것을 페이스북 친구들과 저렴하게 나눠 쓰는 곳이다. 김장철이 오면 고춧가루를 내놓고 미세먼지가 심할 때는 마스크를 슬쩍 올려놓는다. 파티시에 아들이 오너로 있는 빵집 ‘곳간’의 쿠키와 식빵도 살짝 선보인다.
전 대표는 문인 벗들이 많다. 전 대표 자신도 페이스북을 통해 올렸던 생활 속 단상을 모아 <민들레를 밟지 않는 걸음으로>라는 시집을 낸 시인이다. 전 대표의 시어는 생활 밀착형이다. 관념적이지 않고 실존적이다. 혹자는 그것을 ‘몸시’라고 하고 필자는 ‘생활시’라고 이름 붙였다. 일테면 이런 식이다.
<탓>이사를 가야겠다 / 사무실에서 집에 오는 길 / 꽃집이 떠오르질 않는다 / 뭐 이따위 동네가 있담 / 오늘이 아내를 만난 지 / 사십육 년 되는 날 / 빈손으로 왔다 / 내일은 좀 멀리 가자.
일상 대화처럼 툭 던지는 언어 속에 연륜이 차곡차곡 잘 담겨 있다. 시집 <민들레를 밟지 않는 걸음으로>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 위에 핀 민들레를 바라보는 경이롭고 따뜻한 마음이 읽힌다. 사람들은 물론 개나 고양이조차 보도블록 틈새에 난 민들레를 밟지 않고 지나는 모습을 보고 경탄해 마지않았다고 했다. 그의 생활시에는 일상의 부조리, 무겁지 않은 꾸짖음, 일종의 해학, 잘난 척에 대한 질책 등이 은근히 담겨져 있다.
<입맛>난 황조기 구워 쌀밥에 얹어 먹는게 입에 맞더라 하는 놈 하고 / 쇠고기는 참숯불에 구워 육즙이 나올 때 그때 먹어야 제맛이라는 놈 하고 / 밥상머리 앉으면 반찬타령 하는 놈 하고 / 이렇게 세 놈 잡어다 삼일 밤낮 굶겨 봤으면 좋겠다 / 저런 놈들이 한겨울에 후식으론 이란산 석류나 / 쪼끔 먹는다고 염장을 지르지 / 야 이놈들아 / 나도 저거 맛있는 줄은 안다 / 자고로 / 먹는 것 입는 것 타령 하는 놈관 / 큰일을 도모하지 말랬다더라
<밥집>밥집 한다며 / 몇 푼 싸다고 / 좋은 쌀 안 쓰며 / 배고픈 이 / 밥 좀 더 달래면 / 천원 더 받는다 / 밥집답지 않다
페이스북 글 모아 시집 출간…속 시원한 ‘생활시’ 화제
음식점 이야기를 주로 쓰는 필자가 “먹는 거 타령 하는 놈이라 글 보고 좀 찔렸다”고 말하자 “이참에 백파 홍성유 같은 글을 쓰라”고 격려해줬다. 지난 28일 종로구 인사동에서 전 대표를 만났다. 얼마 전 경기도 마석까지 함께 지하철을 타고 가서 저녁 식사를 하고 온 터라 반가움이 더했다. 좋은 사람과는 자주 만나면 마음이 그런가 보다.
그 마음이 전해졌는지 “다달이 한번쯤 보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월례회가 만들어졌다. 다음번은 역삼동에 있는 남도 음식점으로 정하기까지 했다. 어떤 생활의 지혜를 배울지 자못 기대된다. 멋진 백발의 중년, 건강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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