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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진단]-아산 정주영 20주기
“근면·성실·신용 바탕, 정주영 ‘불굴의 도전정신’ 되살리자”
‘정주영학’ 창시자 정대용, 위대한 경제거인(巨人) 정주영을 말하다
“일자리 안정, 기업의 사회적 책임 다해…포기하지 않는 삶 배워야”
오창영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1-03-22 13:50:58
▲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사진)은 한국 경제사에서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근면함과 성실함으로 ‘현대’라는 기업을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키워냈다. [사진=아산 정주영 20주기 추모위원회]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영면에 든 지도 벌써 20년이 흘렀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가난을 이기고 기업을 키우기 위해 평생을 땀 흘려 일한 정 회장은 오늘날 우리나라의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일궈낸 한국 재계의 거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정 회장은 한국 경제사에서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불모지에서 근면함과 성실함으로 ‘현대’라는 기업을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키워냈다. 현대는 이제 범현대가로 모습을 바꿔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 각국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현대가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하기까지 정 회장이 달성한 업적 이면에는 불굴의 도전 정신이 있었다.
 
25여년 간 정주영 연구·강연 “정주영 회장 저돌적인 도전 바탕엔 치밀한 심사숙고”
 
“정 회장을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은 다소 무모하다는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저돌적이면서도 진취적으로 도전해 성공을 쟁취해 온 승부사라고 평해요. 그러나 정 회장은 도전적이기에 앞서 매우 치밀한 분이었어요. 사업 하나를 추진할 때도 허투루 결정하지 않았죠. 비용을 최소화하면서도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사업성과 타당성을 집요하게 분석해 결정을 내렸어요. 정 회장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그 도전을 성공으로 만들기 위해 치밀하게 심사숙고하는 인물이었던 거죠.”
 
이른바 ‘정주영학’ 전문가로 정평이 나 있는 정대용 숭실대 벤처중소기업학과 교수는 정 회장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1997년 ‘정주영 창업론’ 강연을 시작으로 25여년 간 정 회장이 걸어온 발자취와 업적, 기업가 정신 등을 연구하고 강연해 온 그가 지켜본 정 회장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정 회장은 ‘메이드인 코리아’를 만들어 낸 분이에요. 6·25 한국 전쟁 이후 우리나라 경제를 견인한 것은 경공업이었어요. 그러나 1960년대 말에 이르러 경공업이 포화 상태에 이르게 돼요. 국내 대다수 기업들이 국내 시장만 쳐다보고 앞다퉈 경공업에 뛰어들었기 때문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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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 회장은 달랐어요. 앞으로 우리나라가 발전하기 위해선 중화학 공업 등과 같은 국가 기산 산업을 키워야 한다고 깨달은 거죠. 그래서 정 회장은 건설·조선·자동차 사업 등에 본격적으로 도전하게 돼요. 정 회장이야말로 우리나라의 수출 주도 경제를 탄생시킨 장본인인 거죠.”
 
 
▲ 정 회장은 조선업에도 관심이 많았다. 진입장벽이 높고 사업 위험도 큰 업종이지만 많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고 관련 산업도 함께 키울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강력한 권유에 힘입어 정 회장은 마침내 1970년 3월 현대건설에 조선사업부를 만들고 조선소 건설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 [사진=아산 정주영 20주기 추모위원회]
 
1915년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아산리에서 6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정 회장은 소 판 돈 70원을 들고 가출해 인천에서 막노동을 시작했다. 이후 쌀가게에 취직해 일하다 3년 만에 가게 주인으로부터 쌀가게를 넘겨받기도 했다. 이렇게 돈을 모은 정 회장은 1940년 ‘아도서비스’라는 자동차 정비업체의 사장이 된다. 아도서비스는 정 회장의 성장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오늘날 글로벌 완성차 업체로 발돋움한 현대자동차의 시발점이 된 것이다.
 
미군 일감을 수주하며 자동차 수리업은 날로 번창했지만 정 회장은 건설업이 한 번에 훨씬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음을 깨닫고 1947년 현대건설의 전신인 현대토건을 세웠다. 이후 건설은 현대그룹의 핵심 사업으로 자리 잡게 된다.
 
“정 회장이 벌인 건설 사업 중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것은 단연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항 건설이에요. 당시 임원들은 주베일 산업항 건설 사업에 대해 입찰 받는 것을 크게 반대했다고 해요. 당시 현대건설로서는 매우 버거울 정도로 사업 규모가 컸었거든요. 일각에선 20세기 최대 공사라고 할 정도였어요. 그러나 정 회장은 주베일 산업항 개발 사업을 반드시 입찰 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어요. 정 회장은 오일 달러를 버는 중동의 사업을 수주해야 기업의 수익뿐만 아니라 국부도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했죠.”
 
“당시 정 회장은 ‘돈을 벌려면 돈이 가득한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한다’며 임원들을 설득했다고 해요. 그렇게 도전한 사업 입찰에서 정 회장은 수주 확률을 높이려고 최저가로 입찰했고 실제로 수주에도 성공해요. 이는 국가 경제에 엄청난 밑바탕이 됐어요. 최저 입찰가였는데도 현대건설이 당시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받은 계약금만 우리나라 한해 예산의 4분의 1 수준에 달했어요. 엄청난 규모의 자금이 우리 경제에 투자되면서 국가 안정에 크게 기여하게 된거죠.”
 
정 회장은 조선업에도 관심이 많았다. 진입장벽이 높고 사업 위험도 큰 업종이지만 많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고 관련 산업도 함께 키울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게다가 1970년대 정부가 중화학 공업 육성 전략을 추진키로 하면서 정 회장의 조선소 건설 의지도 더욱 공고해지기 시작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강력한 권유에 힘입어 정 회장은 마침내 1970년 3월 현대건설에 조선사업부를 만들고 조선소 건설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
 
▲ 정대용 교수(사진)는 정주영 창업론 강의를 개설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 회장을 직접 만난 적이 있다고 했다. 그 때 만난 정 회장은 단순히 이윤을 창출하는데 그치지 않고 직원들의 일자리 안정과 사회적 책임까지 챙기는 소신까지 두루 갖춘 인물이었다고 했다. ⓒ스카이데일리
 
“당시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에선 국가가 조선소 건설 자금을 지원할 수 없었어요. 결국 정 회장은 외국에서 돈을 빌릴 수밖에 없었죠. 정 회장은 영국의 바클레이즈 은행으로부터 차관을 도입키로 하는데 해당 은행은 추천서가 없으면 융자해 줄 수 없다고 얘기해요. 이에 정 회장은 영국 유명 조선 컨설팅 회사인 A&P 애플도어의 롱바텀 회장을 만나 추천서를 써 줄 것을 부탁해요.”
 
“당시 롱바텀 회장은 ‘한국 정부의 보증도, 현대라는 기업의 상환 능력도 모두 의심스럽다’며 퇴짜를 놨어요. 그러자 정 회장은 바지 호주머니에서 당시 500원짜리 지폐를 꺼내 롱바텀 회장에게 보여줘요. 당시 500원짜리 지폐에는 거북선이 도안돼 있었어요. 정 회장은 거북선을 가리키며 ‘이것 보시오. 이것이 우리의 거북선이오. 당신네 영국의 조선 역사는 1800년대부터라고 알고 있소. 그런데 우리는 벌써 1500년대에 이런 철갑선을 만들어 일본을 혼낸 민족이오. 우리가 당신네보다 300년이나 조선 역사가 앞서 있소. 우리의 잠재력은 고스란히 그대로 있소’라며 롱바텀 회장을 설득하죠. 그렇게 추천서를 받게 된 정 회장은 영국에서 4300만달러의 자금을 조달하는 데 성공해요.”
 
정 회장은 아직 조선소도 짓지 않은 상태에서 ‘그리스 선박왕’ 리바노스를 설득해 26만톤급 초대형 유조선 2척 발주 계약을 따내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리바노스는 정 회장에게 단 2년 6개월 안에 선박 2척을 모두 건조하라는 조건을 내건다. 그 길로 정 회장은 울산으로 달려간다. 조선소를 건설하면서 동시에 선박을 만들기 위해서다.
 
“정 회장은 ‘반드시 다 지어진 조선소에서 선박을 만들어야 된다는 법이 있냐’며 조선소 건설과 선박 건조에 박차를 가해요. 이에 방파제를 쌓아 만든 임시 도크에서 초대형 유조선을 만들죠. 그러나 당시 회사 내부에선 기한 내에 선박을 건조할 수 있겠냐는 의심이 커져 가요. 이에 정 회장은 우리가 잘하는 것을 배를 만드는 데에도 적용하면 된다고 설명해요.”
 
“당시 현대는 건설업에서 강점을 보였어요. 이를 선박 건조에 반영해 건물을 세우듯 조각난 철판을 이어 붙여 골격과 외관을 만들고 배관을 연결하자고 설득해요. 또 발전소를 건설하듯 배 안에 터빈을 설치하면 된다고도 하죠. 선박을 건물과 동일하게 인식하고 건물을 지을 때처럼 배를 만드는 이른바 ‘쉽빌딩(shipbuilding)'을 실제로 구현한 거죠.”
 
▲ 정 회장 서거 20주기를 맞아 범현대가에서 다양한 추모 행사를 열었다. 그 중에서도 현대중공업그룹은 현대예술관 미술관에서 추모 사진전을 개최해 정 회장의 발자취를 따라 포기를 모르고 끊임 없이 도전한 그의 정신을 소개하고 있다. ⓒ스카이데일리
 
이에 1974년 정 회장은 조선소 준공과 동시에 리바노스에게 초대형 유조선 2척을 넘기는 유례 없는 업적을 성사시켰다. 이를 통해 현대조선은 1975년 세계 최대의 선박 제조 능력을 갖춘 조선소로 발돋움하게 된다.
 
‘성공한 기업가’ 대신 ‘부유한 노동자’ 추구…“공동체 모두 함께 살자”
 
우리나라 경제사에 커다란 업적을 새긴 정 회장은 성공을 거듭한 신화적인 기업인으로 회자되곤 한다. 이 과정에서 정 회장은 단순히 이윤을 창출하는데 그치지 않고 직원들의 일자리 안정과 사회적 책임까지 챙기는 소신까지 두루 갖춘 인물이었다고 정 교수는 평가했다.
 
“살아 생전 정 회장은 ‘성공한 기업가’로 불리기보다는 ‘부유한 노동자’로 불리는 걸 더 좋아했어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 회장임에도 불구하고 직접 현장을 살피며 직원들을 격려한 분이었죠. 기회가 될 때마다 직원들과 팔씨름, 배구 등을 함께 했고 신입사원 수련회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해 씨름을 하기도 했어요. 술자리에서는 20대들이 즐기는 최신 노래를 배워와 부르며 젊은 직원들을 감탄케 했죠.”
 
“중동에서 수주한 사업에 우리나라 노동자들과 장비들이 엄청나게 투입됐을 때 일이에요. 오랜 기간 이어진 공사가 어느덧 끝에 다다르게 됐는데 문제는 노동자들이 한국에 돌아왔을 때 일자리가 없다는 점과 공사에 투입된 장비를 더 이상 활용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이었어요. 정 회장은 고심하다 새로운 사업을 발굴하기로 결심해요. 충남 서산 간척지 사업에 이들 노동자와 장비를 투입키로 한 거죠. 이 사업으로 총 길이 7.7km의 바다를 막아 약 4660만평의 간척지를 조성하게 돼요. 식량 자급률을 높일 수 있는 간척 농지가 탄생하는 순간이죠.”
 
“이렇듯 정 회장은 개인의 부를 창출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분이 아니었어요. 공동체의 모든 일원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했죠. 만약 정 회장이 이윤만 추구하는 기업인이었다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을 처지에 놓인 노동자들과 쓸모 없어진 장비들을 활용할 수 있는 신규 사업을 발굴할 수 있었을까 의구심이 들어요. 이타적인 면모를 갖춘 정 회장만이 고안해 낼 수 있는 사업이었던 거죠.”
 
정 교수는 정주영 창업론 강의를 개설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 회장을 직접 만나게 됐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당시 정 회장은 자신을 주제로 한 과목이 생겼다는 말에 매우 기뻐하셨어요. 그러나 이미 병색이 짙었던 터라 강의실에 직접 나올 수 없어 매우 아쉬워하셨죠. 만약 정 회장이 직접 연설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면 젊은이들에게 큰 귀감이 돼 제2의, 제3의 정주영이 탄생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아요.”
 
“근면·성실과 신용을 바탕으로 오늘의 현대를 일군 정 회장의 도전 정신과 긍정적인 마음은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는 것임에 틀림없어요. 어려우면 포기를 선택하고 마는 오늘날 젊은이들이 위기 앞에서 더 이상 좌절하지 말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포기하지 않는 정 회장의 크나큰 마음을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오창영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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