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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초]-황현승 화가

“서정의 마지막 파수꾼으로 남고 싶어요”

“그림은 몸 움직임의 직접적인 흔적… 만남과 교감, 사랑과 같아”

허경진기자(kjheo@skyedaily.com)

기사입력 2021-06-15 00: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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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현승 작가(사진)는 탄탄한 사실주의 화풍으로 출발했으며 지금은 더욱 자유롭고 고졸해진 필체로 대상에 숨겨진 내적 아름다움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사진=이종원 기자] ⓒ스카이데일리
 
“부모님께서는 제가 말과 글을 배우기 전부터 늘 뭔가를 그렸다고 말씀하셨어요. 학창시절에도 직업으로 ‘화가’를 꿈꿨던 적은 없어요.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고, 뭔가를 그리거나 글을 쓸 때 마음이 편안했죠. 제게는 오히려 ‘화가’라는 말이 부자연스러운 호칭이었던 것 같아요. 우리가 자기소개를 할 때 굳이 ‘인간’이라는 말을 자기 이름 앞에 붙이지 않잖아요. 자연스레 됐고 또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서 계속 그림을 그려왔을 뿐인데 어느 때부터 사람들이 ‘화가’라고 저를 부르더군요.”
 
황현승 작가(40)는 8회의 개인전과 부산비엔날레, 세종문화회관미술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주도립미술관, 서울옥션, 가나아트센터 등 다수의 단체전 그리고 Art seasons gallery, Art on gallery, ION art gallery, Hue gallery 등 여러 해외 갤러리 전시에 참여했다. 현재는 서울 종로구 ‘ART B PROJECT(아트비프로젝트)’ 갤러리에서 황 작가의 개인전 ‘METAPHOR(은유)’가 열리고 있으며 이달 말까지 이어진다.
 
황 작가는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평범한 것을 비범한 이미지로 바꿔 놓는다. 그는 우리가 무감각하게 받아들이는 정립의 세계를 시적 감수성이라는 안티테제를 통해 바라보고 주관적으로 굴절된 이미지에 다시 객관적 질서를 부여해 범속한 대상을 한 편의 시로 변모시킨다. 그의 작품 기저에 흐르고 있는 강력한 시적 메시지는 작금의 화단에서 보기 드문 탁월한 미적 성취로 평가된다. 황 작가는 어린 시절 탄탄한 사실주의 화풍으로 출발했으며 지금은 더욱 자유롭고 고졸해진 필체로 대상에 숨겨진 내적 아름다움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삶의 모든 순간이 소중한 것처럼 모든 작품은 고유하고 동등해”
 
황 작가는 일반적인 선입견과는 달리 자신을 대표하는 작품 혹은 가장 선호하는 작품 등을 꼽지 않는다. 작품들에 서열을 부여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또 작품에 대한 작가의 해석이나 설명을 예상했던 기자의 기대를 비껴감으로써 관람객의 입장에서 그림과의 직접적이고 새로운 경험의 가능성을 활짝 열어두었다.
 
“대표적인 작품은 따로 없어요. 제 안에 들어오는 이미지 중 어떤 이미지를 그림으로 옮길까를 고민할 때 그 과정에서 뭐가 더 진실한 순간인지 숙고하는 순간이 있잖아요. 그렇게 담은 이미지라서 모두 소중하죠. 삶의 모든 순간이 제 나름으로 소중한 것처럼요. 흔히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면 도드라져 보여서 중요한 줄 알았던 순간이 사실은 별로 중요한 순간이 아니었고, 정말 중요했던 건 어떤 작고 은밀한 순간들이었음을 깨닫게 되잖아요. 제 그림은 모두 그런 비밀스러운 순간과 그때의 감정에 대한 이야기들이라서 제각기 고유하고 또 동등하다고 생각해요.”
 
“저도 제가 그린 이미지가 무엇인지 잘 몰라요. 그래서 저는 제 그림을 보는 분들에게 해드릴 말이 없어요. 제 그림은 이미 정해져 있는 의미가 없기 때문에 무엇을 어떻게 보라는 방법을 알려드릴 수도 없고요. 그냥 열려 있는 이미지 앞에서 자신을 열어 놓으시면 될 것 같아요. 그러면 이미지가 말을 할 거예요.”
 
황 작가의 풍경에는 사람과 빛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그는 이에 대해 어떤 아름다운 풍경을 찾아 나서는 것은 아니고 살아가면서 문득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모습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와 관련해 한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 황 작가는 모든 작품은 동등하기 때문에 대표적인 작품은 따로 없다고 말했다. 사진은 ‘ART B PROJECT’ 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황현승 작가의 작품들. ⓒ스카이데일리
 
“훼손된 관계와 일상을 뒤로 하고 멀리 여행을 떠난 적이 있어요. 이국에 머물며 내 안에서 다시 빛을 발견하려 했지만 다친 마음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죠. 어느 화창한 날 공원에 있는 사람들을 보는데 한순간 강렬한 빛 안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이 새삼 아름다워 보였어요. 한 사람 한 사람이 마치 견고한 보석처럼 작은 신처럼 빛 안에서 반짝이고 있었죠.”
 
“사람의 존재적 불완전이나 삶의 근원적 부조리에도 나를 향해 계속해서 오고 있고, 이미 가까이 존재하는 빛을 발견하고 그 안에 머무는 한 희망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림 안에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림의 진정한 중심은 사람들을 둘러싸고 있는 가득한 빛이에요. 그림 속 사람들이 빛 안에 자신을 위치시키기까지 어떤 어려움을 딛고 걸어왔는지 상상해보면 빛의 밝음 속에서도 밀려오는 아련함이 있어요. 타자와 삶을 향한 그 아련함이 새로운 이해와 사랑의 시작이 아닐까 해요.”
 
황 작가는 인생은 기본적으로 암울하고 비극적인 요소가 많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인생임에도 때론 사람이 풍경 속에서 아름답고 세상은 빛으로 찬란한 그런 순간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인생이 비극적인 기조 내에 있지만 그 안에 숨어있는 빛을 발견해서 사람들에게 전달해주고 싶었다고 전했다. 그가 그리는 풍경은 단순히 풍경이 아니라 사람이 주인공이고 사람들을 둘러싸고 있는 빛이 주인공이다.
 
“지금 이 자리까지 오기까지의 과정을 물으셨는데 사실 제가 있는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도 잘 모르겠어요. 제가 선 자리는 보이지 않고, 저는 계속 걸어가고 있어요. 힘든 것은 과거에 있지 않고 늘 현재에 있죠. 시적 감수성이 깨어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 가장 진실하고 낮은 자리에 항구적으로 마음이 머물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힘들어요. 매순간이 투쟁인데, 극복이 완결의 형태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극복의 방법도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죠.”
 
현재에 충실하며 매 순간 깨어 있고자 노력하는 작가… “서정의 마지막 파수꾼으로 남고파”
 
▲ 황 작가(사진)는 사랑을 위해서는 사람과 사람이 몸으로 직접 만나야만 하는 것처럼 손으로 그린 그림은 직접 만나야만 교감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고 말했다. ⓒ스카이데일리
 
“지난해 코로나로 개인전이 한 번 취소됐어요. 그래서 이번 전시회는 지난 2년 동안의 이야기가 한 자리에 모인 셈이죠. 시기마다 제가 천착했던 대상이 달라서 다양한 작품을 만나실 수 있을 거예요. 앞서 말씀 드렸듯이 모든 이미지는 열려 있으니 보시는 분들 각자 자신을 끌어당기는 이미지 앞에 서서 이미지와 자신만의 대화를 나누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저마다 자신만의 의미를 발견하실 수 있다면 그림을 그린 사람으로서 몹시 기쁠 것 같아요.”
 
황 작가는 손으로 그리는 그림을 사랑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것은 인간의 전인격적인 행위이고, 인간의 몸이 하는 일이고, 몸의 움직임의 직접적인 흔적이기 때문에 애정이 있다고 설명했다. 사랑을 위해서는 사람과 사람이 몸으로 직접 만나야만 하는 것처럼 손으로 그린 그림은 직접 만나야만 교감할 수 있다는 점도 좋다고 덧붙였다.
 
“화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자신에게 정직하고, 끝까지 치열하게 사유하고, 진심으로 하고 싶어서 견딜 수 없는 것을 해나가시라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그런데 이런 말은 이미 모두 다 아시는 이야기, 삶의 전반에 대한 이야기일 뿐이죠.”
 
“앞으로의 꿈과 목표는 없어요. 대신 현재에 더 충실하면서 매 순간 깨어 있고자 노력할 뿐이에요. 먼 미래에는 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소수의 사람만 지속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결코 사라지진 않을 거예요. 모든 사람이 손으로 그리기를 그만둔다고 해도 저는 서정의 마지막 파수꾼으로 남고 싶어요.”
 
[허경진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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