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는 길고양이 개체 수 증가에 따른 소음, 위생상 문제, 기물파손 등 주민 불편 초래 및 이로 인한 캣맘과의 갈등 심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양이 중성화사업 실시요령’ 개정안을 고시했다. 하지만 길고양이 중성화 수술 대상에 2kg 미만의 고양이와 임신묘, 수유묘 등을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파악돼 논란이 일고 있다.
동물보호단체는 시대를 역행한 탁상행정이라며 분노를 표하며 농식품부의 ‘고양이 중성화사업 실시요령’ 개정안 전면 철회를 촉구했다. 동물의 기본적 생명권 보호와 생태환경에 대한 실상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채 오로지 사람중심의 민원해결만을 위한 비인도적일 뿐 아니라 공존의 가치를 훼손하는 처사라는 지적이다.
농식품부 ‘길고양이 중성화사업 개정안’…합법적인 길고양이 대량학살
지난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농축산부(농식품부) 길냥이 학살 중성화 개정안 반대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글이 올라왔다. 청원은 농식품부의 길고양이 중성화사업 개정안이 2kg미만의 고양이와 임신묘, 수유묘 등을 중성화 대상에 포함시켜 정부가 길고양이 대량학살을 저지르고 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해당 청원은 7일 기준 1만1297명의 동의를 얻었다.
청원인은 “살아있는 환경과도 같은 길고양이는 먹이나 계절·환경적 요인으로 자연적 개체 수 조절이 이뤄지고 있다”며 “그러나 인간과 길고양이가 공존하기 위해 정부는 예산을 투입해 길고양이 개체 수를 조절해왔고 최근 개정안은 2kg 미만의 고양이와 임신묘, 수유묘 등을 포함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
이어 “가정에서 키우는 반려묘 같은 경우 2kg이 안되면 중성화 수술이 불가능한데 정부는 길고양이들은 죽어도 상관없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며 “아울러 혹서기와 혹한기는 건강한 길고양이도 힘겹게 버티는 시기인데 이에 상관없이 사계절로 TNR을 확대한다는 것은 합법적으로 길고양이를 대량학살한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청원인은 길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그 생명의 가치까지 함부로 대하는 것은 인간이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라고 강조했다. 이 개정안이 통과될 시 수술 후 회복하지 못한 채 골목 깊숙한 곳에서 죽어가는 길고양이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길고양이도 생태계의 일원이다. 길고양이와 행복한 공존을 하기 위해 가장 중요시 되는 것은 길고양이 개체 수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길고양이 개체 수 유지를 위한 현실적 대안으로는 TNR(Trap-Neuter-Return) 정책이 꼽히는데 이는 길고양이를 잡아서(Trap) 중성화수술을 하고(Neuter) 다시 살던 곳에 돌려보내는(Return) 방법이다. TNR된 고양이는 왼쪽 귀 끝을 0.9cm가량 자르는데 이는 중성화수술을 받지 않은 고양이와 구분 짓기 위한 국제표준 표식 방법이다.
TNR이 길고양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이유는 고양이가 영역동물이기 때문이다. 무차별적으로 길고양이를 잡아들이면 오히려 빈 영역에 새로운 길고양이가 자리를 잡게 된다. 안전하게 중성화 수술을 받은 고양이가 다시 영역으로 돌아가게 되면 추가 번식이 없고 발정으로 인한 소음도 줄어들게 된다.
이에 지자체와 시민단체들은 TNR을 실시하고 있다. 이는 무방비하게 확산하는 길고양이 개체 수를 효과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실제로 서울시에 따르면 TNR 사업을 통해 길고양이가 6년간 54%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7월 농식품부는 더 효과적인 길고양이 개체 수 조절을 위한다며 현재 시행하고 있는 ‘고양이 중성화사업 실시요령’을 재검토 했다. 우선 사업시행자의 범위를 동물병원 등으로 한정하던 것을 폐지하고 포획·방사 사업자와 중성화 사업자를 통합해 선정·관리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몸무게 2kg 미만의 고양이나 임신묘, 수유묘 등이라도 수의사의 판단 하에 중성화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장마철·혹서기·혹한기 등 외부환경 요인이 있더라도 고양이의 생태·습성에 맞는 안전한 중성화사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했다.
중성화 수술 도중에는 봉합사를 필수 사용하도록 했으며 생체 접착제를 보완적으로 활용하도록 규정했다. 포획한 개체 및 그 동물의 방사 시 특이사항 등을 동물보호관리시스템 내의 길고양이 중성화사업 관리 카드에 기록하도록 했다.
농식품부 “수정안 재검토해 추후 다시 심도 있는 논의할 것”
농식품부가 내놓은 ‘고양이 중성화사업 실시요령’ 개정안에 대해 전국 길고양이보호단체 연합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전국길고양이보호단체연합(전길연)은 개정안을 전면 철회할 것을 촉구하며 이는 동물보호에 역행할 뿐 아니라 중성화사업의 목적에도 위배되는 졸속행정이라고 규탄했다. 또한 생명공존을 위한 사업이 동물학대가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전길연 임시대표를 맡고 있는 황미숙 목포고양이보호연합 대표는 “수유 중인 고양이를 포획해 중성화 수술을 진행하고 회복기 없이 24시간 만에 다시 방사해 수유하도록 한다는 조항만 보더라도 수유묘를 수술 대상에 포함시킨다는 것 자체가 비인도적인 발상이다”며 “방사 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수유가 원만하게 되리라 생각하는 것은 현실을 전혀 모르는 탁상 정책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예주 부산고양이보호연합 대표 역시 개정안에 대해 “이는 동물보호정책이 아니라 동물 말살정책이다”며 “전문가들도 우리 주장에 뜻을 같이 했고 ‘국경없는 수의사회’에서 받은 전문가의 의견서를 첨부한 대국민 성명서를 공동행동에 참여한 단체들을 통해 SNS에 공개했다”고 밝혔다.
이원복 한국동물보호연합 대표는 2kg 미만의 길고양이 중성화 수술을 금지하는 것은 오래전부터 동물단체들이 요구해온 최소한의 마지노선이라며 농식품부는 수의학적이고 과학적·동물복지적인 측면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현재 길고양이 개체 수 조절이 안 되고 있는 것은 2kg 미만의 길고양이를 중성화하지 못해서가 아니다”며 “정부가 중성화 사업을 체계적이고 과학적이고 계획적으로 해야 하는데 주민이 민원을 접수하면 민원에 대응하기 위한 땜질 처방식으로 하고 있어 개체 수 조절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이어 “농식품부 측에서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밝혔지만 동물보호단체 입장에선 이러한 개정안 자체가 정부의 야만적인 시각을 드러낸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특히 수유묘나 임신묘를 개복수술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는 새끼 고양이뿐 아니라 어미 고양이의 생명과도 직결되는 문제로 농식품부의 개정안은 철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지난달 26일 농식품부 동물복지정책과 주관 하에 ‘고양이 중성화 사업 실시요령’ 고시 개정안을 검토하는 화상 토론회가 개최됐다. 본 토론회에는 대한수의사회, 국경없는 수의사회, 관련 연구용역 담당, 농림축산식품부 동물복지정책과 담당 주무관과 사무관, 한국고양이보호협회, 동물자유연대, 동물권행동 카라, 전국길고양이보호단체연합이 참석했다.
토론회에서는 이번 ‘고양이 중성화사업 실시요령’ 개정안에서 쟁점이 됐던 △중성화 대상 범위 △중성화 시기 △방사 후 처치 △기타 동물 보호·복지를 고려한 안전하고 효과적인 중성화사업 방안에 대한 내용을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됐다.
구체적으로 체중 2kg 이하인 길고양이와 수유묘, 임신묘, 환묘 등은 중성화 대상에서 제외시켜야 하며 △포획 시 체중 확인 △포획 후 12시간 이내 수술 △TNR 사업시기에 혹한기·혹서기 제외 △TNR 후 처치 최소 3~5일 후 방사 △수술 직후 진통제·2주간 항생제 필수 △TNR 정보의 세세한 기록 등을 골자로 한다.
농식품부는 “전국적으로 길고양이를 돌보는 지역단체가 이렇게 많은 줄 몰랐고 그들의 전문성에 대해서 놀랐고 새로이 알게 되는 계기가 됐다”며 “전국길고양이보호단체연합에서 제시한 수정안을 재검토하도록 할 것이며 추후 다시 회의 날짜를 정해 심도 있는 논의를 하겠다”고 밝혔다.
조은영 서대문구길고양이동행본부 대표는 “내년 TNR예산이 11억원에서 34억원으로 늘어나는데 중성화 대상의 수를 늘리기보다는 후 처치에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며 “가능하다면 각 지자체에서 중성화 후 처치실을 만들고 수술비도 현실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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