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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호원의 성경&정치·경제

제대로 된 ‘전두환’ 평가가 역사에 기록되기를

5․18 발포 명령자 누구인지 증거로 규명된 건 없어

당시 명령체계에서 빠졌던 고인…공과 평가받아야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11-27 13:22:27

▲ 안호원 칼럼니스트·목사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로마서 12 : 2>
 
제11대(1980~81), 제12대(1981~88) 대통령을 지낸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연희동 자택에서 운명을 달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날은 33년 전 ‘5공 청산’ 과정에서 떠밀리듯 강원도 백담사 칩거에 들어간 날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현대사를 관통한 전 전 대통령의 삶은 어찌 보면 명(明)보다는 암(暗)에서 주로 조명됐다고 볼 수 있다. 1961년 5.16군사혁명, 1979년 12.12 군사쿠데타, 1980년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 조치, 내란사건 무기징역 확정 후 사면 등 굴곡진 역사의 고비마다 등장했다. 군인으로선 육군대장, 정치인으로서는 대통령으로 정점을 찍었지만, 퇴임 후 싸늘한 여론 속에 여러 차례 법정에 서는 등 치욕의 삶을 살았다.
 
이제 그 주역인 전 전 대통령이 90년의 삶을 마감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망자가 된 전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빌 뿐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유언에서 “통일을 맞이하고 싶다”며 “전방에 한 줌 흙으로 묻히고 싶다”고 했다. 전 전 대통령 역시 2014년 발간 한 회고록에 “북녘 땅이 바라다 보이는 전방의 어느 고지에 백골로라도 남아 있으면서 기어이 통일의 그날을 맞고 싶다”는 메모를 남긴 것으로 알고 있다.
 
노태우 전두환 두 전직 대통령은 누구보다도 더 많이 나라를 사랑하고 통일을 바라던 분들이다. 그럼에도 한 달 먼저 서거한 노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전 전 대통령 역시 아직까지 묻힐 곳을 찾지 못했다는 사실에 인간적으로는 마음이 아프고 분노가 치민다.
 
사람이 태어나서 마지막 통과하는 관문이 죽음이고, 이에 따르는 의례가 상례이다. 대부분의 사회에서는 죽음을 단순히 인간의 생물학적인 활동의 정지가 아니라 인간의 영혼이 현세에서 타계(他界)로 옮겨간다고 믿는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에는 일반적으로 살아온 망자(亡者)에 대한 삶에 대해 덕담과 함께 명복을 빌어주는 게 그동안 우리 사회가 지향한 유교적 관례였다.
 
굳이 돌아가신 날 이렇게 ‘망자’의 영욕(榮辱)의 삶을 말하겠다면서 어찌 영(榮)의 부분은 한마디도 없고 욕(辱)의 부분만 찔러 난도질을 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무엇을 바라는 것일까. 지금 이 나라 대한민국 집권 세력이 벌이는 광기의 정치 때문이다.
 
정치의 중심은 호남과 광주로 찍혀있다. 아직도 사실이 밝혀지지 않고 상흔이 지워지지 않은 ‘5.18 광주사태(5.18광주민주화운동)’다. 광주 시민단체 등은 전 전 대통령이 끝내 5.18 때의 유혈 진압에 대한 사죄도, 용서도 빌지 않고 마지막까지 반성을 안 하고 떠났다며 분노를 터뜨렸다. 이런 분위기가 고조되자 청와대는 “끝내 역사의 진실을 밝히지 않고 진정성 있는 사과가 없었던 점에 대해서 유감을 표한다” 며 “청와대 차원의 조화와 조문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정치권 역시 광주의 눈치를 보며 여야를 막론하고 모두 전 전 대통령 빈소 조문을 가지 않았다. 각 당 대선주자들조차 전 전 대통령의 빈소 조문을 하지 않았다. 장세동과 박철언 등 5·6공 인사들만이 나흘간 쓸쓸한 빈소를 지켰다. 그나마 예비역 장성 모임 ‘성우회’ 회장단이 전 전 대통령 빈소를 다녀간 것으로 확인됐다. 이종옥 회장(육사 24기·예비역 대장)을 비롯한 성우회 회장단은 25일 오전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전 전 대통령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20여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5.18에 대한 진상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몰매 맞을 것을 각오하고 한 마디 한다면 5.18 광주 유혈 진압사태의 책임을 물어 전 전 대통령을 ‘살인마’로 단정 짓고 죄인 취급하는 것은 아직 이르다. 법적으로 증거가 확실하게 드러난 게 없기 때문이다. 현재는 추측일 뿐이다.
 
군 복무를 한 사람은 군의 지휘체제를 안다. 전 전 대통령이나 당시 신군부의 입장에서 의도적으로 그런 학살을 계획적으로 시도할 이유 자체가 전혀 없다고 본다. 실제로 전 전 대통령에게 5.18의 어두운 그림자만 없었다면 지금 고인의 평가는 어마어마하게 달라졌을 것이다.
 
전 전 대통령은 임기 중에도 나름 5.18과 호남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알고 있다. 실제로 고인은 5.18의 비극에 직접적인 책임은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전 전 대통령은 임기를 마치고 5공 청문회에 불려가고 이런저런 법적 소송에 휘말리게 됐을 때도 자신의 책임을 부인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리고 “5공 국정 전반에 관한 한 모든 것은 본인 책임이고 나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책임이 없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그런 전 전 대통령이 굳이 5.18 유혈사태만은 비겁하게 자기 책임을 모면하려고 거짓말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전 전 대통령은 엄청난 고초를 겪을 것이 뻔한 데도 해외 도피를 거부하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비난과 법적인 책임을 피하지도 않았다. 그런 그가 5.18에 대해서만은 자신이 평생 지녀온 소신과 원칙을 저버렸을 것이라고 보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노 전 대통령과는 다르다. 전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군인이었다. 그래서 군인다운 명예심과 자세를 평생 잃지 않았다고 본다. 5.18 관련 단체들은 전 전 대통령이 죽을 때까지 5.18과 관련해서 사과하지 않았다고 비난하지만 이건 양심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자 모욕이다.
 
전 전 대통령은 ‘서울의 봄’ 당시 군부 실세였고 그런 점에서 간접적인 정치적 책임은 면하기 어렵다. 그러나 적어도 5.18 진압의 정식 지휘체계에서는 빠져 있었다고 본다. 군대 조직체계에 대해 아는 사람이라면 그런 식의 월권(정식 지휘체계 밖에 있는 전두환이 개입해서 5.18 강경진압을 지시하는 등) 행위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후 숱한 조사에서도 전 전 대통령이 5.18 진압에 직접 개입했다는 증거는 나온 적이 없다.
 
그렇다면 적어도 무죄 추정의 원칙은 전 전 대통령에게도 적용되는 게 맞다. 사실 전 전 대통령 말년의 광주 재판도 필자가 알기로는 형사소송의 법적 원칙을 벗어나는, 탈법에 가까운 것으로 안다. 원래 형사소송은 피의자의 거주지 법원이 맡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전 전 대통령에게만은 그런 원칙이고 뭐고 무시당한 채 가장 불리한, 편견과 적의로 가득 찰 수밖에 없는 광주의 법원에서 수모를 받으며 재판을 받도록 했다.
 
그래서 전 전 대통령 측에서도 이런 점을 들어 법원 이관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건 엄밀히 말해서 잔인한 인권유린이자, 탈법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사실상 법치가 무너진 나라가 아닌가. 이런 불법과 탈법을 주도한 자들이 망자인 전 전 대통령을 욕하고 비난하는 게 말이나 되는 건가. 그 잘난 인권 개념이 전 전 대통령에게만은 적용되지 않는다는 건 인권이 허접한 정치질의 도구일 뿐이라는 걸 스스로 자백하는 것 아닌가. 전 전 대통령은 자신이 저지른 과오에 대해서는 사과했다. 하지만 자신이 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책임질 수 없다는 자세였다. 고인은 그런 점에서는 옳았다. 광주 시민단체나 정치권에서는 비록 고인이 피의자 신분일지라도 양심의 자유를 모욕하지 말고 억지 사과와 자백을 강요하지는 말아야 한다. 
 
야당 윤석열 대선 후보는 말 한마디에 전두환 옹호자로 곤욕을 치렀지만 전두환 정권 시대에 한국 경제는 저유가 저금리 저달러에 힘입어 이른바 ‘3저(低)호황’을 누렸다.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잇달아 유치하며 국민의 시선을 돌리려는 시도도 이어졌다. 고인의 명예가 회복되고 진실이 밝혀져 제대로 된 평가가 역사에 기록되기를 바란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않으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라디아서 6 : 9>
 
(※ 전문가 칼럼의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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