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협상을 하는데 우리는 영어 단어를 많이 쓰잖아요. 별생각 없이 영어 단어를 썼더니 상대방이 정색을 하고 북남간의 신성한 대화를 하는데 왜 미제말을 하냐고 하더라고요. 유의하겠다고 하고 넘어갔는데 대화를 하다 보면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잖아요. 회담 하면서 몇 년을 봤더니 나중에는 자기들도 영어를 써요. 이들도 사람이구나 싶었죠.”
현재 대한민국의 국가 안보는 평화 분위기와 위협이 동시에 공존하는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가 꾸준히 북한과의 대화를 추진하고 종전 선언까지 논의하고 있지만 동시에 북한은 계속해서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미중갈등이 심해지며 두 강대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에 한국국가전력연구원 통일전략센터 사무실에서 문성묵 센터장(66)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문 센터장은 약 20년간 남북회담에 참여해온 국방·안보 전문가다.
공병 장교 꿈꾸던 사관생도, 남북 실무회담 수석대표까지
문 센터장은 육군3사관학교 13기로 입사해 군인의 길을 걸었다. 대한민국 국방부 국방·안보정책과장, 북한정책과장, 국방장관 특별행정안보보좌관, 국방부 군비통제차장을 거쳤다. 이후 준장으로 전역한 문 센터장은 여러 대학교에서 겸임교수를 지내고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을 맡으며 국방·안보 분야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문 센터장은 어린 시절 현역 군인이었던 작은아버지를 보면서 군인의 꿈을 키웠다. 문 센터장은 해병대 정훈감을 지낸 작은아버지를 보면서 막연히 군인이 멋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시절 위문 편지를 썼던 것도 군인의 길을 걷는 데에 영향을 줬다.
“국민학교(초등학교) 때 위문 편지를 쓰는데 매번 답장을 써주던 분이 있었어요. 그분이 장교였는데 몇 년동안 그분과 편지를 주고 받았고 군에서 나오는 홍보물도 보내주셨죠. 그때부터 군에 대한 관심과 마음이 커졌던 것 같아요. 그분이 월남전에 참전하면서 학교에 직접 찾아오셨는데 1년 동안 쓸 수 있는 학용품을 한아름 선물로 가져오셨어요. 그때 입고 오신 장교복이 너무 멋있더라고요.”
“직업 군인의 길을 걷고 싶어서 처음에는 사관학교에 진학하려고 했어요. 사관학교 가려면 공부를 많이 해야 했죠. 그런데 제가 공고를 다녔는데 당시 공고에서는 입시 공부를 그렇게 많이 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꿈을 접고 건축설계사 사무소에 취업해서 일했죠.”
건축설계사로 일하던 문 센터장의 눈에 우연히 경찰서에 붙어있는 3사관학교 단기과정 포스터가 들어왔다. 군인의 꿈을 버리지 않았던 문 센터장은 직장에 사표를 내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3사관학교에 합격한 문 센터장은 전공을 살려 공병 장교가 되기를 원했다. 공병 장교로 근무하며 경력을 인정받고 대학 편입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문제가 생겼다.
“제가 3사관학교 13기였는데 제 기수에서만 공병 장교를 안 뽑았어요. 제 다음 기수에서는 공병 장교를 뽑았는데 하필이면 제가 갔을 때만 안 뽑더라고요. 그래서 보병으로 임관해서 소대장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 3사관학교 교수를 졸업생 장교 중에서 뽑는다고 하더라고요. 평소에 공부 욕심도 있고 해서 신청을 했죠.”
다시 공부를 하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합격해 3사관학교 교수로 일하던 문 센터장에게 다시 한번 전환점이 찾아왔다. 제도가 바뀌면서 교수로 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문 센터장은 사학을 전공했는데 생도 과정이 없어지고 교육 기간이 1년으로 줄어드니까 사학 전공 교수 수요가 줄어들었다. 다시 야전으로 나간 문 센터장은 전방에서 중대장으로 복무하고 소령까지 진급했다.
그러나 계속 공부가 하고 싶었던 문 센터장은 육군 대학에 진학한 후 국방대학원 석사 과정을 신청해 국제관계학을 전공했다. 이후 육군본부에서 복무하다가 박사과정까지 마친 문 센터장은 국방부 정책실 군비통제관실 실무자로 일했다. 군비 통제란 군비 경쟁으로 인한 긴장을 낮추기 위해 서로 병력이나 무기도 줄이면서 서로 간의 신뢰를 쌓고 충돌 가능성을 줄이는 것을 말한다.
문 센터장이 국방부에서 근무하기 시작했을 때는 남북 기본합의가 이뤄지는 시기였다. 문 센터장은 기본합의를 이행하기 위한 군사분과위원회에서 실무를 담당했다. 그 후 약 20년 동안 관련 분야에서 일하며 여러 차례 남북협상에 참여했다. 문 센터장에게 실제로 만나본 북한군은 어떤 느낌이었는지에 대해서도 들었다.
“북한군을 만나기 전에는 긴장을 많이 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북한군 하면 뿔 달린 도깨비를 생각할 정도로 이미지가 안 좋았거든요. 처음 수석 대표를 맡아서 회담에 나갔는데 상대가 북한군 대좌 유영철이라는 사람이었어요. 선배들이 유영철이는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사람이라고 했어요. 실제로 만나봤더니 자기 재량권이 없어서 그런지 빡빡하고 유연하지 못한 느낌이 들어요. 어떤 빈틈도 보이지 않겠다는 강박 같은 것도 보이고요. 그래도 어떻게 협상은 잘했던 기억이 나네요.”
문 센터장은 군에서 오랜 시간 일했다. 시간이 지나며 남북 관계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문 센터장에서 군에서 느끼는 남북관계의 변화에 대해서도 물었다.
“김대중 정부가 햇볕 정책을 추진하고 대화가 이뤄지고 금강산 관광도 하고 하면서 평화가 온 건가 싶은 분위기가 있기도 했어요. 나중에는 북한이 적이냐 아니냐에 대한 논란도 있었고요. 그렇다고 군이 흐트러지면 안 되고 흐트러지지 않게 노력하고 있어요. 남북간에 수많은 합의가 있었지만 그게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잖아요. 북한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항상 대비 태세를 갖추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최근 정부에서 북한과 유화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선전하면서 국민의 안보 의식이 많이 흐트러졌어요. 물론 안보의 문제가 없고 평화가 온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잖아요. 연구원에서 월간지도 내고 국방 FM에서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는데 제가 쌓은 경험과 지식이 국민들의 안보관이나 안보 의식을 조금이라도 제고하는 데에 기여했으면 좋겠어요. 여기에 욕심을 더 부리면 저희 연구소가 안보 정책에 기여하는 싱크탱크로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었으면 해요.”
북핵·미중갈등 대처 위해 한미동맹 강화 필수…종전선언은 가능성 낮아
문 센터장에게 대한민국의 국방 안보 현안을 물었다. 문 센터장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맞설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뭐니 뭐니 해도 북핵 문제겠죠. 나라를 지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위협에 대비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거예요. 북한은 지속되는 핵실험을 통해 핵미사일 역량을 고도화하고 있어요. 김정은이 8차 당대회에서 전술핵무기도 개발하고 핵추진 잠수함도 개발한다고 하고 있죠. 우리는 핵무기가 없고 미국으로부터 핵우산을 통해 보호받고 있어요.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한미연합을 공고히 해서 억제력을 확보해야 해요.”
“그런데 정작 북한이 비핵화를 한다는 명분으로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해버렸잖아요.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지휘소 연습을 한다고 하는데 이걸로 충분하다고 말하긴 어렵죠, 대대급 이하의 훈련은 하지만 키리졸브 훈련 같은 대규모 훈련은 못 하고 있어요. 우리가 북한의 위협에 충분히 대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문 센터장은 미중 갈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문 센터장은 미국과 중국이 극렬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한미동맹을 더욱 공고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 미국과 중국이 전방위적인 갈등을 빚고 있어요. 안보 분야를 넘어 경제 분야까지 중국이 마음대로 하지 못하도록 동맹을 강화하고 있는데 우리는 중국과의 경제 의존도 때문에 확실하게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미국에 우리 편이라는 확신을 심어주지 못한다면 과연 계속 한국을 방위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그쪽에서 들 수도 있어요.”
“그런데 중국은 어떤가요. 경제 분야에서 영향력과 협력 관계가 크다고 하지만 중국이 우리를 지켜줄 수 있는 나라냐고 하면 아니란 말이죠. 중국은 기본적으로 자기 말을 안 듣는 나라에는 거침없이 압박을 가하는 나라고 전 세계를 중화 세계로 만들려고 하는 나라죠. 중국은 지금도 호시탐탐 한반도의 종주권을 다시 쥐려고 시도하는 나라에요. 믿고 의지할 수 나라가 아니에요.”
문재인 정부가 꾸준히 추진하고 있는 종전 선언에 대해서도 물었다. 문 센터장은 현실적으로 종전선언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적으며 종전선언이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종전선언은 근본적으로 6.25 전쟁과 관련이 있어요, 전쟁 당사자인 남한, 북한에 더해 미국과 중국이 해당되는데 한미만 해도 입장 차이가 있는 편이에요. 여기에 북한 입장은 어떠냐 하면 북한이 요구하는 게 이중기준이랑 적대정책 철폐에요. 요약하면 핵 개발을 인정하고 한미동맹 폐지하란 거거든요. 우리가 들어줄 수 없는 것들이잖아요. 여기에 미중 관계는 최악이고요. 많이 어렵죠.”
“종전 선언만 하면 평화가 오고 핵도 내려놓고 대화가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사람도 있는데 평화가 말로만 되는게 아니에요. 그리고 정부가 말로는 종전 선언은 정치적 선언이고 종전 선언을 해도 정전 협정은 그대로 유지된다고 하거든요. 굉장히 모순되는 거죠. 오히려 북한에게 유엔부 사령부 해체나 주한미국 철수 등을 요구할 빌미만 될 수 있어요.”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의 국가안보 정책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물었다. 문 센터장은 정부 차원에서 안보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 안보는 생명과 같은 문제에요. 경제는 더 잘사냐 못사냐의 문제지만, 안보는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잖아요. 지금 국방 안보와 관련된 현안들이 녹록하지 않은데 대선 후보들만 봐도 안보를 강조하시는 분이 없어요. 정치인들이 국가 안보를 더 중시해줬으면 좋겠어요. 안보가 바로 서야 국가도 안정되고 나아가 통일이나 국제 평화 기여까지 나아갈 수 있으니까요.”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