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이 뚜렷하고 온도 변화가 심한 우리나라에서 농사를 짓는 농업인들에게 비닐하우스는 없어서는 안될 존재로 인식된다. 날씨에 상관없이 온도, 습도 유지 및 채광 조절 등으로 땅의 온기가 빠져 나가지 못하게 막아주는 비닐하우스는 작물의 성장을 조절할 수 있다. 비닐하우스를 만드는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일신화학공업이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의 농업용 필름 생산업체인 일신화학공업은 1980년대 비닐하우스의 대명사인 ‘학표 장수필름’(비닐하우스)을 출시해 한국 농업과 농촌 혁명을 가능케 한 1등 공신이기도 하다.
일신화학공업의 시초는 1962년 고(故) 임오순 명예회장이 서울 방산시장에서 창업한 비닐 판매점 ‘일신상회’로 돌아간다. 임 명예회장은 1967년 서울 전농동에서 100평 남짓한 공장에서 일신화학공업을 창업하며 ‘국내 최고의 필름업체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의 말대로 일신화학공업은 지난 50여년 동안 지속적인 기술 개발을 통해 시설원예용 필름, 포장필름, 산업용 필름, 전자재료용 보호필름 등 필름산업을 이끌며 비닐하우스 필름 시장에서 국내 점유율 업계 1위를 차지하는 성과를 이룩했다.
고(故) 임오순 명예회장의 아들 임동욱 일신화학공업 회장은 뉴햄프셔대학교 MBA 과정을 수료한 뒤 일신화학공업에서 전무이사와 대표이사 사장 등을 역임했다. 그는 선친이 강조했던 ‘자기 인생을 기업에 던져야 한다. 오직 한 길을 가야 한다’는 말대로 비닐(필름) 사업에만 집중했다. 이후 추수 후 볏단을 포장하는 팰릿 스트레치 필름을 개발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도 했다.
지금에서야 일신화학공업이 국내 업계 최고를 달리고 있지만 그 과정 속에는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 부회장 시절, 임동욱 회장은 농업용, 산업용 분야의 성장이 둔화되던 시기인 2000년대 초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고 있는 LCD 디스플레이 패널 등 전자재료용(DFR) 필름 시장에 뛰어들었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경영자로서의 책임감에서였다.
그는 100억원 정도를 투자해 공장을 짓고, 기계 설비도 도입하며 이 사업에 무려 3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했다. 하지만 이미 일본산 제품들이 자리잡고 있었고 일신화학공업은 중소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테스트조차 받기 어려워 힘든 시기를 보냈다.
하지만 2008년 닥친 금융위기로 환율이 급등하고 일본산 제품 가격이 폭등하면서 일신화학공업에도 기회가 찾아왔다. 급하게 전자재료용(DFR) 필름이 필요한 여러 기업들이 일신공업화학 제품을 이용하게 됐고 이후 대기업의 제품 수주가 이어졌다. 이를 통해 필름 분야에서 확고한 위치에 오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러한 어려움을 거친 임동욱 회장은 ‘2015년 대한민국 중소기업인대회’에서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축산용 곤포 사일리지 필름, 팰릿 포장용 스트레치 필름 등을 국산화해 한국 농업기술과 포장산업 발전을 선도하고 관련 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는 데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이외에도 해외시장 개척에 주력하고 각종 기부와 후원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적극적으로 실천한 점도 인정됐다.
한편 임동욱 회장은 “앞으로 외부의 변화와 고난에도 흔들리지 않고 100년, 200년 지속 발전하는 든든한 일신화학을 만들어 나가겠다”며 굳은 다짐을 이어나갔다. 그의 말대로 올해로 창업 54주년을 맞은 일신화학공업이 100년, 200년의 장수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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