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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 119REO

“생명을 구하는 방화복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죠”

폐기된 방화복을 패션 아이템으로 되살리는 사회적 기업

기사입력 2022-01-20 23:45:00

▲ 119REO는 내구연한이 지난 소방장비를 활용해 일상에서 소방관을 기억할 수 있는 패션 아이템을 만들고 판매 수익의 일부를 암 투병 소방관에게 후원하는 업사이클링 브랜드다. 사진은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119REO 직원 홍설필 씨. 이승우 119REO 대표. 마케팅 담당자 김예진 씨. 119REO 직원 장우석 씨.[사진=남충수 기자] ⓒ스카이데일리
 
“소방관들이 입던 방화복을 받아보면 목숨을 걸고 싸운 현장이 느껴져서 마음이 숙연해져요. 방화복 뿐 아니라 소방 호스 등에도 그들의 값진 땀과 헌신이 담겨있죠. 방화복은 소방서에서 무상으로 제공받지만 소재를 제품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원단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들어요. 그런데도 119REO가 방화복을 이용하여 제품을 만드는 이유는 생명을 구했다는 귀한 가치를 살리고 싶기 때문이죠.
 
119REO는 내구연한이 지난 소방장비를 활용해 일상에서 소방관을 기억할 수 있는 패션 아이템을 만들고 판매 수익의 일부를 암 투병 소방관에게 후원하는 업사이클링 브랜드다. 
 
119REO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먼저 소방 현장에서 3년 동안 사용돼 폐기된 방화복을 확보한다. 폐기된 방화복을 수거해 세탁하고 분해 과정을 거쳐 원단처럼 만든 후 디자인에 맞게 재단하고 봉제를 거치면 방화복으로 된 가방이 만들어진다. 서울 종로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119REO 이승우(29) 대표와 직원들을 만나 이들의 특별한 작업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방화복에 담긴 것은 생명의 가치…동기 부여와 자부심을 줘요”
 
“제품을 만들다 보면 경제적인 논리가 많이 작용할 수밖에 없어요. 그렇지만 생명을 되살리는 가치에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불합리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귀한 가치가 들어 있으니 비용을 더 지불하는 거죠.”
 
수익의 일부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소방관들에게 전달된다. 현재는 소방관으로 일하다가 암에 걸려 투병 중인 소방관 지원에 집중하고 있다. 119REO의 이러한 취지에 공감해 제품을 구매하는 고객도 많다며 이 대표가 설명했다.
 
“암 투병 소방관분들께 기부금을 전달하면 이분들이 사회적으로 잊혀졌다는 생각을 잊고 사회가 아직 나를 응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힘이 많이 난다고 하더라고요. 암 투병 소방관들끼리 네트워크가 형성돼서 서로를 돕기도 하고요. 이런 선순환 네트워크가 구축되는 것에 참 감사하다고 생각해요.”
 
“제품을 구매하시는 분들을 저희는 후원자님이라고 해요. 구매 후기를 보면 기부가 돼서 좋다는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길을 가다가 저희 제품을 보면 이렇게 멋있는 분이 길을 가시는구나 생각하죠.”
 
▲ 119REO는 수익을 소방관들에게 환원하고 소개 가공을 지역 자활에 맡기는 등 사회 공헌에 힘쓰고 있다. 사진은 이승우 대표. ⓒ스카이데일리
 
119REO에서 근무하는 홍성필(27) 씨는 대학 선배인 이승우 대표가 하는 일을 조금씩 돕다가 같이 일하면 좋겠다고 생각해 아예 정식 직원으로 들어왔다.
 
“학교 다닐 때부터 동아리 방에서 대표님이 하는 일을 많이 봤어요. 그때부터 관심이 있었는데 취업 준비를 하면서 백화점에 뭘 설치하는 일을 도왔어요. 1박2일 정도 같이 일을 했는데 엄청 보람차더라고요. 여기서 일하면 사회에 힘을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사회적 기업에서 일한다고 해서 일하는 것이 크게 다르지는 않아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다 착한 사람들이니까 분위기가 좋다는 정도가 다르다면 다른 점이죠. 그렇지만 내가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은 것 같아요.”
 
김예진 씨(21)는 119REO에서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다. 예진 씨는 일할 때 지속적으로 동기부여가 되는 점이 가장 좋다고 말했다.
 
“돈 버는 것도 버는 거지만 재미있고 행복한 일을 하면 좋잖아요. 요즘 유튜브에서 방송을 진행하면서 소방관분들의 이야기를 듣는데 우리가 매일 입고 다니는 옷으로 만들어 줘서 너무 좋다고 얘기해주세요. 이럴 때 큰 보람을 느끼죠. 더 많은 사람들이 저희의 의미있는 제품에 대해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119REO는 소재를 가공하는 과정에서 지역의 자활(장애인들이나 기초 수급자들이 국가의 지원금을 받으며 근무하는 보호작업장)에 맡기고 있다. 이를 통해 지역의 폐자원을 재활용하면서 지역 일자리를 창출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방화복이 불에 타는 소재가 아닌데도 반은 타서 오는 경우도 있어요. 이런 걸 보면 소방관분들의 땀과 노고가 피부로 느껴져요. 자활 근로자분들도 방화복을 세탁하고 분해하면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셨다고 해요. 이런 얘기를 들었을 때 너무 보람차더라고요.”
 
“암 투병 소방관 문제는 남 일이 아닌 내 일…더 많이 돕고 싶어요”
 
119REO는 암 투병 소방관에게 기부금을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됐다. 이 대표가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의미 있는 일을 찾던 것이 계기였다.
 
“소방관분들이 정말 감사한 분들이잖아요. 이런 분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당시 소방서를 다니면서 인터뷰를 했어요. 한 달에 120명 정도의 소방관을 만났죠. 소방관을 하면서 불편한 건 없는지, 힘든 건 없는지를 물어보는데 대부분 지금 나쁘지 않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마지막에 만난 분이 동료가 암으로 사망했는데 이 사람한테 일어난 일이 합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니 그 이야기를 들어봤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故 김범석 소방관이라는 분인데 이분의 유가족을 만나게 됐죠.”
 
故 김범석 소방관은 5년 동안 1021회의 소방 현장을 나갔고 이 중 751회가 일반 구조 현장, 270회는 화재 현장에 있었다. 소방관으로 근무하던 故 김범석 소방관은 어느 날 혈관육종암에 걸렸다.
 
“암 중에서도 코드 번호가 여러 개 있는데 이분이 걸린 코드 번호가 국내에 두 명이 있었어요. 한 명은 故 김범석 소방관님이고 다른 한 명은 소방관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공무원 연금공단에 신청했더니 다른 사람은 소방관이 아니니까 소방관이라는 직업과 관계없이 걸린 질병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공무상 상해로 인정은 못 받고 병에 걸렸으니 출근을 못해서 잘리게 된 거죠. 이분이 결국 소방관 지위를 잃고 돌아가시게 됐는데 내 아들한테만큼은 그냥 병에 걸려 죽은 아빠가 아니라 소방관 아빠로 기억됐으면 좋겠다는 유언을 남겼어요.”
 
故 김범석 소방관의 아버지는 아들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소송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119REO를 만났다. 119REO 구성원들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이든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저희가 인터뷰하면서 장비가 부족하지는 않은니 여쭤보니까 어떤 분이 우린 장비가 부족하지 않다면서 폐기되는 방화복을 저희에게 주셨어요. 그래서 이걸 폐기하는 대신 잘 가공해서 제품으로 만들면 우리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아이디어가 나왔어요.”
 
▲ 119REO는 소방관으로 근무하다 암에 걸렸지만 공무상 상해를 인정받지 못한 故 김범석 소방관의 사연을 듣고 나서 암투병 소방관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며 시작됐다. 사진은 故 김범석 소방관 사진 앞에 서 있는 이승우 대표. ⓒ스카이데일리
 
큰 뜻을 품고 시작했지만 처음에는 방화복을 구하는 문제에 부딪쳤다. 지금은 기부 업력을 바탕으로 인정받을 수 있지만 그런 것이 없을 때는 소방서에서 방화복을 제공해 줄 리 없었다.
 
“처음에는 거의 문전박대를 당했어요. 잡상인 같은 게 아니라는 것부터 증명해야 했죠. 다행스럽게도 저희가 기부금을 전달 드릴 단체인 재향소방동우회에서 나서서 대신 방화복 등을 모아주겠다고 했어요. 거기서 알음알음 방화복을 모아오면 그걸 직접 세탁하고 분해해서 공장으로 가져갔죠.”
 
“이때는 물량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자본도 펀딩해서 돈을 모으면 발주할 생각이었는데 공장에 가서 몇 개 만들지 모르고 돈도 없지만 좀 만들어 달라고 하면 누가 해주겠어요. 그래도 저희가 암 투병 소방관을 돕겠다는 취지를 말씀드리니까 고맙게도 공감하고 도와주시는 분이 많더라고요.”
 
이때까지만 해도 기부를 위한 활동이었기 때문에 수익금은 전액 기부했다. 119REO가 사업으로 발전하게 된 계기는 2018년 故 김범석 소방관의 유족에게 기부금을 전달하면서였다.
 
“그때 운이 좋아서 펀딩도 많이 모이고 김범석 소방관 법안도 발의가 됐어요. 故 김범석 소방관 아버님께서 돈이 목적이 아니라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한 일이고 돈은 필요 없으니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에게 주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다른 두 분에게 기부금을 전달 드렸는데 결국 두 분 모두 돌아가셨어요.”
 
“두 분이 돌아가시는 과정을 겪다 보니 이 일이 정말 남의 일 같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우리가 더 큰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같은 문제가 발생하고 또 돌아가시는 분이 생길 텐데 이걸 내버려 두면 나중에 너무 부끄러울 것 같아서 창업을 하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어요.”
 
이 대표는 제도적으로 암 투병 소방관을 지원할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공무상 상해를 본인이 입증해야 하는 제도는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지금 국내 법은 암에 걸리면 그게 일하다가 생긴 것을 입증해야 주는 형식인데 지금 당장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는 분도 있잖아요. 암에 걸린 사람이 현장에 가서 출동 기록도 떼고 그 현장이 얼마나 유해한지 입증해야 하는데 누가 화재 현장에 가서 벤젠이 몇 퍼센트 있고 이런 걸 신경 써요. 더욱이 시간이 지나서 화재 현장이 정리되고 나면 확인할 수도 없고요.”
 
마지막으로 119REO의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물었다. 119REO는 지금은 암 투병 중인 소방관 몇 분에 집중하고 있지만 규모가 커지면 암 투병 소방관 전체에 대해서도 지원을 확대할 생각을 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암 투병 소방관이 320명 정도로 파악되고 있는데 그 중 저희가 기부금을 전달한 건 10여분에 불과해요. 물론 저희가 320명을 다 지원하기보다는 국가가 나서줘야겠지만 지금은 도움의 손길이 닿지 않는 분들을 먼저 챙겨야겠죠.”
 
“소방관 중에는 암 외에도 외상형 스트레스 장애같이 다른 문제를 겪는 분들이 많아요. 저희 사업의 규모가 커지면 이러한 분들도 챙기면서 전체적인 소방관들의 권리와 처우 개선을 돕고 싶어요.” 
 

 [양준규 기자 / jgyang@sky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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