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제3자 변제’ 방식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 배상 해법을 공표했다.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재원을 조성해 2018년 대법원의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에게 일본 피고 기업 대신 판결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4년여 지속돼 온 강 대 강의 대치 국면을 풀기 위한 것으로 ‘간접 배상’의 형태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혜택을 받은 우리 기업들이 피해자에 대한 법적 배상금을 먼저 갚아 주는 것으로, 징용 배상 판결을 받은 일본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 등이 게이단렌 회비나 기여금을 내는 형식으로 참여할 예정이다. 이에 두 나라 재계를 대표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이 ‘미래청년기금(가칭)’을 공동 조성한 이후에 운영하는 방안이 잠정 확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가에 따르면 일본은 1998년 ‘21세기 한·일 파트너십’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식민 지배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진심 어린 사죄를 표명한다”는 입장을 계승한다는 수준의 사과를 할 것으로 예측된다. ‘역사적’이며 ‘도덕적’인 정당성 또한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오부치 전 총리는 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진심 어린 사죄’의 뜻을 표명했으며 김대중 전 대통령 또한 이에 화답해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미래 지향적인 관계로 나아갈 것을 강조했다.
다만 이것이 피해자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징용 피해자들이 강하게 요구했던 일본 전범기업들의 직접적인 배상·사과가 빠져 있어 실리는 있더라도 명분이 떨어진다는 점이 있다. 야권 또한 전범기업의 자산을 강제 매각하는 정공법을 택하지 않고 간접 배상이라는 백기투항식 해결법을 제시했다며 비판 공세에 나섰다. 야당은 벌써 ‘굴욕 외교’ ‘졸속 협상’ ‘저자세 외교’라며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최악의 경우 피해자들이 수용하지 않으면 재협상에 나서야 하는 상황도 올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이번 조치는 징용 문제에 발목 잡혀 있는 양국 관계를 언제까지나 내버려 둘 수 없다는 판단에 의한 것이다. 앞서도 노무현정부 때 문재인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 정부 대표로 참여한 민관위원회를 통해 정부 예산으로 징용 피해자 7만2631명에게 6184억 원을 지급한 바 있으나 해결되지 못한 문제였다.
문재인정부 때 최악의 상황으로까지 치달았던 한·일 관계를 복원시키는 건 윤석열정부의 시급한 과제이기도 하다. 윤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일본은 이제 군국주의 침략자가 아니라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협력자”라고 했을 정도로 양국 관계 개선에 대해 강한 의지를 내비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현재 한국은 미증유의 경제 위기와 안보 위기라는 폭풍에 휩싸여 있다. 실제로 우리 경제를 떠받쳐 왔던 두 축인 수출과 소비 지표가 바닥을 향해 고꾸라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의 7차 핵실험 위험의 수위가 턱 밑까지 올라왔다는 게 중론이다. 전통적 한·미 동맹을 중심으로 일본의 손을 잡는 삼각 동맹의 공통분모를 지켜 내야 한다. 현재 한·일 양국은 나날이 심화되는 글로벌 정세의 불확실성 하에 놓여 있으며 각국이 모두 대내외적 리스크에 노출돼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근간으로 이웃국가로서 기술과 안보 우위를 획득하기 위한 협력과 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반성없는 과거에 기반해선 건전한 미래가 없다’고 주장하며 일본과의 협력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겐 과거에 연연할 여유가 주어져 있지 않다. 과거사에 발목 잡힌 한·일관계에서 한 차원 급을 높일 동력이 필요하다. 새로운 관계를 구축할 미래의 키는 ‘징용공 배상 문제’의 해결에 놓여 있다. 일본 또한 윤 대통령의 ‘대승적 결단’에 화답해 후세대를 위한 번영과 공존의 메시지를 내놓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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