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에서 대승한 야당이 얼마 안 남은 국회 회기 중에 꼭 처리하겠다고 벼르는 법이 있다. 지난달 23일 국회 본회의로 직회부된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민주유공자예우법)이다. 현재 4·19유공자는 국가유공자법으로, 5·18유공자는 5·18유공자보상법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 밖의 민주화운동에도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 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민주화운동보상법)에 따라 금전 보상과 사면·복권 등 명예 회복 조치가 이미 취해졌다. 민주유공자예우법은 여기에 더해 민주화운동 유공자와 그 가족에게 의료와 양로 서비스를 지원해 주자는 법안이다.
본래 이 법은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73명이 2021년 3월26일에 발의했다가 ‘셀프 특혜’ 비판이 일어 3일 만에 철회됐다. 그런데 다시 국회 본회의에 회부되었다고 해서 알아보니 설훈 의원이 발의한 법안만 철회됐을 뿐 그 전에 발의된 우원식 의원 등 20인안은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 법안은 16대 국회부터 꾸준히 발의되어 왔다. 하지만 민주화운동을 국가보훈 영역에 포함시키는 데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부족해서 매번 폐기됐었다. 그러다 민주당이 총선에서 연거푸 대승을 거두면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만 없으면 그 어느 때보다 법안 제정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본래 발의안에는 주로 지탄받았던 취업 지원뿐 아니라 교육과 장기 저금리 대부 같은 것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 본회의 상정안에는 의료·양로 지원만 남았다. 예상 소요 비용도 교육·취업·대부 지원까지 다 포함해도 향후 5년간 연평균 20억 원 정도다. 우리나라 재정이 민주유공자에게 이 정도 지원을 못 해 줄 정도는 아니다.
문제는 그동안 예우를 안 해 준 것이 아닌데 또 혜택을 주라고 한다는 점이다. 이번 법안에는 의료·양로 서비스 지원만 있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일단 법이 제정되면 그다음부터는 유공자 단체들이 추가 혜택을 요구할 것이 불을 보듯 훤하다.
필자의 눈엔 그동안 언론이 주목하지 못했던 문제점도 들어왔다.
우선 민주화운동의 정의부터 문제다. 민주화운동보상법은 민주화운동을 ‘1964년 3월24일 이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문란하게 하고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권위주의적 통치에 항거하여 헌법이 지향하는 이념 및 가치의 실현과 민주 헌정 질서의 확립에 기여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회복·신장시킨 활동’으로 정의하고 있다. 민주화운동의 기산점을 1964년 한일협정 반대 시위 때로 잡은 것이다. 원래는 ‘1969년 8월7일 이후’라고 해서 3선개헌 반대 운동을 기산점으로 잡았다가 2004년 한나라당 이재오 의원 대표 발의로 1964년 이후부터로 개정된 것이다. 이재오 의원이 바로 한일협정 반대 시위 세대이니 이 역시 셀프 특혜 입법이다.
그러나 한일협정 반대 시위가 과연 민주화운동일까. 박정희는 비록 군사정변을 일으켰지만 1963년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투표로 당선되었다. 2위 윤보선 후보와 표 차이가 불과 1.55%에 불과한 박빙의 승리였지만 그 선거가 부정선거였단 말은 들어 보지 못했다. 한일협정 반대 시위는 4·19나 5·18, 6월 항쟁처럼 시민이 두루 참여한 것도 아니고 야당·대학생 등 엘리트 위주 시위였다. 물론 그 당시 계엄령이 선포되긴 했지만 그것 때문에 민주적기본질서가 문란해지고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당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이 점을 의식했는지 법안 제안서에선 ‘국민의 정서를 외면하고 굴욕적 한·일 회담을 강행하던 비민주적인 군사정권의 퇴진을 주장하는 대규모의 데모를 벌임으로써, 그 후 3선개헌 반대 운동, 유신체제 반대 운동 및 6․10 민주항쟁 등으로 이어지도록 하여 민주화운동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3선개헌 반대는 1969년 이후부터이니 시간적으로 비약이 심하다. 어쨌건 결국 한일협정 반대 시위 주동 인사들이 이미 세상을 떠난 박정희 대통령을 다시 한 번 확인 사살하면서 민주화운동 보상금을 수령하지 않았을까 싶다.
문제가 또 있다. 국회 검토보고서를 보면 도저히 민주화운동으로 보기 힘든 것들이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은 것으로 나온다. 2019년까지 무려 9844건이 민주화운동으로 인정을 받았는데 여기에는 1979년 남민전 사건, 1986년 제헌의회(CA)사건, 1989년 부산 동의대 사건과 1990년 3당 합당 반대 시위도 들어 있다. 그러나 남민전·제헌의회 사건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아예 뒤집으려는 반체제운동이었다. 동의대 사건은 경찰이 7명이나 희생된 폭력 시위였다.
3당 합당도 그 결과 지역주의가 심화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자유민주주의를 문란케 하고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건 도저히 수긍이 안 간다. 전수조사 해 보면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은 반체제운동·폭력시위가 더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각종 민주화운동보상법이 오히려 자유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하고 있지 않나 우려되는 것이다. 민주유공자법이 헌법상 금지된 사회적 특수계급의 창설을 도울 소지도 있다.
이런 식의 법 개정을 보수정당의 유력 인사가 주도했다는 것도 놀랍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안이했던 것이 보수가 소수파로 전락하게 된 이유가 아닐까 싶다. 우리 헌법은 인민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것임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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