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중국어(한문)에서 ‘자연’이란 서술문 ‘스스로(自) 그러하다(然)’에 불과했다. 훗날 ‘생긴 그대로’ ‘자연스러운’ ‘자연히’ 등 수식어(형용사·부사)로도 쓰였으나 명사가 된 것은 네이처(nature)의 번역어로 굳어진 19세기 말 이후의 일이다.
90년대 한 가수가 노래했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때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그렇다, 자연은 인류가 그것의 일부일 때 인류에게 보이지 않았다. 탐구·개발의 대상이 되고 천부인권의 기반인 서구 자연법(natural law) 개념의 통용 후 ‘자연’은 비로소 명사가 됐다.
한편 중국어에선 예나 지금이나 인간(人間)은 ‘세상’을 의미한다. 고전 중국어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산스크리트어의 흔적이며 불교용어로 보급된 이래 1천수백 년간 동북아시아에서 그렇게 쓰였다. 근대 일본에서 시작된 ‘인간=사람’ 용법은 한국·일본에서만 쓰인다.
20세기 들어 다수의 일본산 한자어들이 한문 어휘의 전통적 함의·어감을 변화시켰으나 중국어 속 人間만은 옛 쓰임 그대로 ‘세상’일 뿐이다. 사람(人) 사이(間)가 사람이라는 뜻이 되려면 즉자(即自·존재로서의 주체)와 대자(對自·바라봐지는 주체)를 구분한 서구 근대 철학적 발상이 필요했다.
1930년대 일본에서 ‘닝겐(人間)’이 ‘히토(人)’의 문어적 표현이 된 배경으로 당시 유행한 독일철학을 꼽을 수 있다. ‘존재와 시간’으로 유명한 20세기 철학자 M. 하이데거에 따르면 사람은 매순간 새롭게 구성된다. 시간의 개입 없이 존재할 수도 이해될 수도 없는 존재다. 과거와 현재 사이의 나, 그 ‘무수한 나와 나 사이’가 바로 ‘사람으로서의 나’인 것이다.
自자는 갑골문에서 원래 (얼굴 위) 코를 가리키다가 훗날 ‘자기 자신’을 의미하게 된 반면, 人자의 갑골문은 두 손을 맞잡아 앞으로 들어 올린 채 허리를 공손히 구부린 자세(읍·揖)를 본떴다고 해석된다. ‘예의를 아는 생명체’가 동북아 문명이 파악한 인간관의 원형인 셈이다.
이후 약 2000년 지나 삼국지연의의 시대 배경인 3세기쯤이 되면 사람 人자는 서로 기댄 두 개의 획으로 굳어진다.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삶의 본령을 환기시켜 준 재해석이다. 한자는 이렇게 생각이 더해지거나 왜곡되기도 하면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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