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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열의 스파이 세계]<27> KGB 67년치 비밀공작 폭로한 ‘미트로킨 아카이브’
유동열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7-09 06:31:00
 
▲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 원장 
1992년 3월24일 나이 지긋한 한 신사가 유럽 북동부 발트해에 위치한 라트비아공화국의 수도 리가(Ryga) 주재 영국 대사관에 들어가 ‘권위 있는 사람’과 만나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대사관 직원의 안내를 받고 젊은 여성요원을 만난 그는 본인의 신분을 밝히고 핵심 기밀 일부를 제시하며 망명의 뜻을 밝혔다. 그의 주장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한 요원은 즉각 본국에 보고했다. 망명을 받아들이겠다고 하자 그는 4월9일 자료를 가지고 대사관을 다시 방문해 본국에서 급파된 영국 비밀정보부(SIS·일명 MI6) 조사팀과 만났다.
 
그는 KGB 파일에서 발췌한 것으로 보이는 2000쪽 분량의 정보가 들어 있는 봉투 10개를 건네주었다. 영국·미국 등 전 세계에서 암약하는 수백 명의 KGB 요원 명단(암호명)과 기밀 연락처가 나열되어 있었는데, 대부분의 경우 신원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상세했다. 세계 스파이사(史)를 뒤흔들 만큼 경천동지(驚天動地)할 기밀자료들이었다.
 
이 노신사가 바로 1917년부터 1984년까지 소련 정보기관 KGB(국가보안위원회)의 비밀공작을 낱낱이 정리·분석한 ‘미트로킨 아카이브’(The Mitrokhin Archive·2000)의 주인공이다. 그는 앞서 미국 대사관에도 망명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한 상태에서 크게 낙심하다 영국 대사관을 찾은 것이었다. 미국은 제 발로 걸어 들어온 ‘초대형 보물’을 내팽개쳤고, 영국은 그 보물의 진가를 신뢰하고 망명을 받아들여 엄청난 횡재를 한 격이었다. 후에 미국은 영국 정부에 사정사정하고 상당한 반대급부까지 제공한 끝에 겨우 이 자료에 접근할 수 있었다. 순간의 잘못된 판단이 스파이 역사의 흐름을 주도할 기회를 날려 버린 사례다.
 
▲ 바실리 미트로킨은 KGB 기록보관소 자료 내용을 머리에 기억했다가 퇴근 후 자필로 기록해 보관했다. 필자 제공
  
바실리 미트로킨(Vasily Nikitich Mitrokhin)은 1922년 러시아 랴잔주의 유라소보에서 태어났다. 1941년 카자흐스탄 SSR지역 대학에 입학하여 역사와 법학을 전공했다. 모스크바의 고등외교아카데미에서 3년간 교육을 마치고 1948년 소련 정보기관인 MGB(KGB의 전신)의 해외정보 장교로 임명받았다. 1956년 해외 근무 중 작전 실패로 본부에 소환되어 KGB 제1국장실 소속 기록보관소 내근직으로 발령받았다. 기록보관소에는 KGB가 침투시킨 전 세계 소련 스파이 네트워크와 이들이 수집한 비밀정보 자료, 암살·테러·전복 등 비밀공작 자료, 평가 자료 등 수십만 개에 달하는 파일이 보관되어 있었다. 그는 이때부터 각종 기밀자료를 제한적으로 접할 수 있게 되었다.
 
1972년 6월 KGB가 새 청사로 이전하자 미트로킨은 기록보관소의 자료를 무려 12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새 청사로 옮기는 작업을 담당하게 된다. 기록보관소에 소장된 30만 개 이상의 파일을 확인하고 봉인하여 옮기는 작업이다. 미트로킨은 이 파일들을 검토한 후 재분류하고 배치해서 밀봉 컨테이너에 담아 이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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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정권의 잔혹상과 1968년 소련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에 환멸을 느낀 미트로킨은 언젠가 기밀자료를 활용할 때가 있을 것이라 믿고, 자신이 접한 자료를 머리에 담아 퇴근 후 자필로 기록해 보관했다. 주말이면 그는 다차(dacha·주말농장)로 가서 가능한 한 많은 양을 타이핑했다. 그리고 이 자료들을 알루미늄 케이스에 담아 다차 곳곳에 묻어 두었다. 이 분량만 해도 2만5000쪽에 이르렀다. 이 자료들은 후에 ‘미트로킨 보고서’의 토대가 되었다.
 
1984년 KGB 은퇴 후 미트로킨은 자신의 자료를 공개할 기회를 갖게 될 것이라고 믿었으나 영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가 1991년 소련이 붕괴되자 기회가 찾아왔다. 1992년 그는 라트비아에서 휴가를 보낼 수 있는 허가를 받았고 이때 기밀 샘플을 가지고 몰래 영국 대사관을 찾았던 것이다. 
 
이후 영국 MI6 특수요원 6명이 모스크바에 잠입해 미트로킨의 주말농장 땅속 등 여러 곳에 분산 보관해 둔 6개의 우유통 트렁크를 발굴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1992년 9월7일 마침내 미트로킨과 그의 가족 및 자료가 영국에 무사히 도착했다.
 
영국 정보당국은 2만5000쪽에 달하는 방대한 자료를 분석하면서 경악했다. 당시 멜리타 노우드라는 87세 영국 할머니가 20대에 KGB에 포섭돼 40여 년간 영국의 원자폭탄 관련 기밀을 소련에 넘겨 온 스파이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미국에서 활동한 KGB 요원과 협조망 1000여 명의 명단도 새로 공개되었다. 여기에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시절 부통령을 지낸 헨리 윌리스도 있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소련이 생산한 무기의 절반 이상이 미국에서 빼낸 설계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헨리 키신저 미 국무장관의 전화가 실시간 도청됐으며 거의 모든 미국 방산 계약 시설에 스파이가 배치됐다. 또 냉전 기간 동안 프랑스의 고위 정치인  35명이 KGB에서 일했다고 적혀 있다. 서독에서는 KGB가 주요 정당·사법부·경찰에 침투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각국에서는 이에 기반하여 스파이 소탕 작전이 전개되었다.
 
1995년 MI6은 소련의 반문명적 비밀공작을 알리기 위해 미트로킨의 기록 일부를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이때부터 영국 보안부(MI5)의 공식 역사가이자 케임브리지대  역사학자 크리스토퍼 앤드류(Christopher Andrew)가 미트로킨과 공동으로 책을 저술하기 시작해 1999년 ‘미트로킨 아카이브’를 발간했다. 미트로킨의 망명은 1999년까지 비밀로 유지되었다. 2000년 영국 의회의 정보·보안위원회(ISC)는 2000년 ‘미트로킨 조사보고서’를 공식 채택하고 공개했다.
 
▲ 미트로킨은 케임브리지 대학 역사학자 크리스토퍼 앤드류(Christopher Andrew)와 공동으로 ‘미트로킨 아카이브(The Mitrokhin Archive)’를 저술했다. 필자 제공
  
2004년 1월23일 미트로킨은 8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가 사망한 직후인 2005년에 ‘미트로킨 아카이브’ 제2권이 발간되었다. 미트로킨 보고서의 원본을 보관하고 있던 영국의 처칠기록보관소는 2014년 미트로킨의 자필 노트 사본을 공개했다. 미트로킨은 1999년 BBC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행동에 대해 “나는 이 사악한 비밀공작의 엄청난 전개 과정을 보여 주고 싶었고, 양심의 기초가 짓밟히고 도덕적 원칙이 잊혀졌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밝히고 싶었다. 나는 이것을 러시아 애국자로서의 내 의무로 여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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