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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열의 스파이 세계]<26> 천의 얼굴을 가진 독일 간첩 듀케인
유동열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7-02 06:31:10
 
▲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 원장 
1941년 6월28일 미 연방수사국(FBI)은 미국에서 암약해 오던 33명의 독일 스파이를 체포했다. 이들은 뉴욕 맨해튼 이스트 85번가에 위치한 ‘리틀 카지노’라는 레스토랑 한구석에 자주 모여 미국을 전복시키기 위한 자신들의 스파이 활동에 대해 의기투합하며 전열을 가다듬고 회포를 풀었다. 이 조직의 수장은 천의 얼굴을 가졌다고 평가되는 듀케인(Frederick ‘Fritz’ Joubert Duquesne)이었다. 
 
그가 이끄는 ‘듀케인 스파이 링’의 구성원들은 미국에 성공적으로 잠입한 히틀러 지지자 33명(여성 3명 포함)이었다. 1942년 1월2일 미국 법원은 이들 33명 전원에게 유죄를 선고했으며 이들이 받은 형량은 총 300년이 넘었다.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스파이 사건이었다.
 
▲ 듀케인 스파이 링 멤버들이 출입했던 뉴욕 맨하튼 85번가의 리틀카지노 / 필자 제공
  
듀케인은 1877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동런던 케이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프랑스 위그노 교도로 남아프리카에 정착해서 농장 운영과 사냥을 하면서 살아갔다. 듀케인은 17살 때 학교을 다니기 위해 런던으로 갔다. 영국 옥스포드대학과 벨기에 브뤼셀의 왕립군사학교를 다녔다고 하나 학적은 확인되고 있지 않다. 그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영국군에 입대했다. 그러나 영국군의 남아공 초토화 정책으로 아버지의 농장이 파괴되고 그 과정에서 여동생이 죽고 어머니가 영국수용소에 끌려가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영국에 복수할 것을 결심한다.
 
1899년 이른바 제2차 보어전쟁(영국과 남아프리카 정착 보어족과의 전쟁)이 발발하자 듀케인은 고국으로 돌아와 보어족 특공대에 합류했다. 그는 영국군과의 전투 중 부상도 입었고 포로가 되었지만 탈출했다. 또한 모잠비크전투에서 포르투갈 군에게 포로가 되어 리스본 소재 수용소에 수감되었지만 탈출하여 프랑스 파리를 경유해 영국으로 갔다. 여기서 영국군에 입대해 1901년 영국군 장교로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배치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영국군 전략시설을 파괴하고 영국군 사령관 키치너 경을 암살하려다 체포되었다. 듀케인은 당시 ‘블랙팬서(Black Panther)’라는 코드명을 사용했다. 그는 사형당할 처지가 되었으나 보어군의 암호집을 제공하여 종신형을 받고 케이프타운의 수용시설에 투옥되었다가 버뮤다로 이송되었다.
 
듀케인은 버뮤다에서 극적인 탈출에 성공한 뒤 뉴욕에 도착해 뉴욕 헤럴드의 기자로 일했다. 그는 뉴욕에 있는 동안 여행 전문 특파원·전문 수렵꾼·소설가 등으로도 활동했다. 1904년 러일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여순항으로 파견되었고 리프 반란을 취재하기 위해 모로코에 파견되어 종군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듀케인은 1910년 시어도어 루스벨트(미국 제 26대 대통령·1901~1909)의 개인 수렵사격 강사가 되어 루스벨트의 아프리카 사냥 등을 수행했고 관련 기사를 써서 유명 인사가 되었다. 이러한 인연으로 1913년 12월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미국인들에게 애국심을 호소하는 강연자로도 활동했다.
 
▲ 체포 당시 듀케인의 모습
1914년경 듀케인은 독일계 미국인 사업가에게 포섭되어 독일 스파이가 되었다. 그는 남미에 있는 영국 상선 테니슨함과 순양함 햄프셔에 폭탄을 장착해 침몰시켰다. 그러나 엉뚱하게 1917년 뉴욕에서 보험 청구사기로 연방요원에게 체포되었다. 당시 영국은 공해에서의 살인(키치너 장군)·방화·해군성 문서 위조 및 왕실에 대한 음모 등의 혐의로 듀케인을 영국으로 이송할 것을 요구했고 이송이 결정된 상태였다. 그러나 듀케인이 오른쪽 다리가 마비된 것처럼 위장해 이송은 잠정 중단되었다. 2년간 다리 마비로 절름발이 행세를 하다가 1919년 여성으로 변장해 교도소 탈출에 성공한다.
 
1920년 듀케인은 돌연 보스턴에 나타나 은퇴한 영국 소령 프레드릭 크레이븐·베자 대령·피트 니아쿠드 등 위장 이름을 사용하며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와 영화 제작사 에이전트로 일했다. 또한 이 기간 동안 클레멩트 우드와 함께 ‘키치너를 죽인 사람(The Man who Killed Kitchener)’이란 소설을 썼고 영화 제작사에 판권을 매각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그는 ‘DUNN’ 이라는 코드명으로 작전을 수행했으며, FBI 파일에서는 ‘The Duke’로 호칭된다. 1932년에도 공해상 살인혐의로 경찰에 체포되었으나 공소시효 만료로 재판 중에 석방되기도 했다.
 
듀케인은 신출귀몰한 변장의 달인이었다. 러시아 백작·뉴욕 출판인·안경을 쓴 영국 신사·사자 가죽으로 만든 담배 주머니를 든 오스트리아 전쟁 영웅 등으로 위장했던 그가 체포된 것은 강압에 의해 독일 스파이로 포섭되었던 윌리엄 세볼드(William Sebold)의 제보 때문이었다. 히틀러 총통 집권 시 독일의 해외정보국 ‘압베르(Abwehr)’는 1939년 2월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독일을 방문한 독일계 미국인 세볼드를 긴급 체포하여 조국 독일에 협력할 것을 협박했다. 결국 독일 스파이로 포섭되었는데 스파이 교육 중 여권 재발급을 빌미로 독일 쾰른에 있는 미국 영사관을 방문했을 때 자신이 스파이로 포섭된 사실을 자백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결국 FBI에 통보되었고 그는 독일 압베르와 FBI의 이중스파이가 되었다.
 
▲ 듀케인의 스파이 33명
 
1940년 2월 압베르는 세볼드를 해리 소이어라는 인물로 둔갑시켜 뉴욕으로 침투시켰다. 세볼드의 임무는 미국에서 암약 중인 스파이들이 압수한 정보를 독일로 송신하는 무선통신의 책임자 역할이었다. 수집된 정보를 암호화해 단파 라디오로 전파하는 방식이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독일 스파이 명단을 손에 쥔 FBI는 독일 스파이 아지트 주변에 안가를 구축하고 감청과 미행을 무려 2년간 지속해 결정적 증거들을 확보했다. 그렇게 해서 1941년 6월28일 이른바 ‘듀케인의 스파이 링’ 연루자 33명을 체포하는 개가를 올렸다. 1942년 1월2일 독일 스파이 33명은 전원 유죄판결을 받고 총 합계 300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FBI의 후버 국장은 이 일을 가리켜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파이 검거라고 자평했다.
 
듀케인은 징역 18년을 선고받고 캔자스주 레븐워스 연방 교도소에서 복역했으며 13년 복역 후 건강 악화로 1954년 석방되었다. 그는 1956년 5월24일 7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역대 미국 당국이 검거한 스파이 중 최고 반열의 스파이가 사라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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