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체코 원자력발전기 건설 사업 수주에 성공하면서 국내 원전 생태계가 재도약의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사용후핵연료)처리 특별법이 여전히 국회에서 공회전하는 탓에 향후 수출 확대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원전 업계에서는 고준위 방폐장 없이 원전을 계속 운영하거나 새로 짓는 것은 ‘화장실 없는 아파트’를 건설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유한다. 원전 운영과 고준위 폐기물 영구 처리는 서로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도 친환경 사업 실적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는 녹색분류체계(택소노미)를 도입하면서 EU 택소노미의 투자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조건 중 하나로 2050년까지 고준위 방폐장 건립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고준위 방폐장을 마련하지 못할 경우 유럽 등 글로벌 시장에서 채권 발행 금리가 높아져 유럽 원전 수출에서도 불리한 환경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체코 수주의 경우 금융 지원을 체코에서 전담했기 때문에 EU 택소노미에 따른 영향은 없었다”며 “다만 향후 다른 EU 국가에 수출할 때 개별 상황에 따라 걸림돌로 작용할 수는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체코를 교두보로 네덜란드·스웨덴·폴란드·루마니아 등 유럽 시장으로의 K원전 본격 진출을 꿈꾸는 상황에서 고준위 방폐장 건립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한국은 고준위 방폐장을 설치할 근거를 담은 고준위 특별법이 여야 대치로 수년째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잠들어 있다. 21대 국회에서도 3건의 고준위 특별법안 등이 합의됐지만 저장시설 용량을 놓고 여당이 반대하면서 제자리걸음 했다. 회기 막바지에 가서야 여야가 극적으로 합의했으나 시간이 부족해 끝내 임기만료 폐기됐고 22대 국회로 넘어갔다.
이번 22대 국회에서도 여당에서 4건의 법안을 발의했으나 채상병 특검법 등 정쟁에 휘말려 제대로 된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고준위 특별법은 원전을 가동하면서 나온 사용 후 핵연료를 원전 외부에 저장하거나 영구적으로 처분할 수 있는 시설과 중간 저장 시설 등을 건설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사용 후 핵연료를 의미하는 고준위 폐기물은 현재 각 원전 안에 있는 수조인 습식저장조에 보관돼 있지만 오는 2030년부터는 이 같은 저장 방식도 포화에 이르게 된다. 당장 2030년 한빛 원전, 2031년 한울 원전, 2032년 고리 원전 등 순으로 수조가 가득 차게 된다.
원전 상위 10개국 중 (방폐장) 부지 선정에 착수하지 못한 국가는 한국과 인도뿐이다. 고준위 방폐장은 당장 건설을 시작한다고 해도 완공까지 37년이 소요되는 만큼 국내 전력 수급 불안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윤종일 카이스트 원자력및양자공학과 교수는 “한국 원전 체계가 EU 기준과 맞지 않는다면 향후 유럽 은행이나 금융권으로부터 파이낸싱을 얻고자 할 때 상당히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며 “고준위 특별법을 서둘러 통과시켜 국가적인 산업이 불이익을 받는 상황을 만들어선 안 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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