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IT 대란’의 세계적 파장 속에 직격탄을 맞은 항공계가 마비 상태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주요 항공사들이 전산시스템을 상당 부분 복구해 서비스를 재개했으나 완전 정상화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전망이다. 국내 이동시 항공편을 주로 이용하는 미국에선 이번 사태의 체감도가 각별할 수밖에 없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미 사이버보안업체 크라우드스트라이크의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관련 문제로 지구촌 약 850만대 기기가 영향을 받았다고 20일(현지시각) 밝혔다. 이날 MS는 블로그에서 “크라우드스트라이크 업데이트가 850만대 윈도 기기에 영향을 미쳤다”며 “전체 윈도 기기의 1% 미만”으로 추정했으나, 1%도 안 되는 윈도 기기로 이런 수준의 파장을 낳았다는 게 새삼 세상을 경악시켰다.
MS와 크라우드스트라이크가 아마존웹서비스 및 구글 클라우드 플랫폼과 협력해 문제해결의 최적 방식을 모색 중이라고 한다. 크라우드스트라이크는 악성 소프트웨어 랜섬웨어 공격(데이터·PC 등을 암호화한 뒤 대가 요구)을 막아 줄 소프트웨어의 공급업체다. 세계 500대 기업 등이 이 업체 것을 쓴다.
항공편 추적사이트 플라이트어웨어엔 20일 오후 2시(미 동부시간) 기준 전 세계 항공편 1만992편 취소·2만5079편 지연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미국발·미국행이거나 미국 내에서 이동하는 항공편의 취소·지연은 각각 1432·4281편이었다. 미 주요 항공사인 유나이티드항공과 델타항공이 이날 저마다 성명을 통해 자사 서비스 대부분의 재개를 알리면서도 이번 대란의 여파가 이어질 수 있음에 양해를 구했다.
유럽에서 가장 붐비는 공항의 하나인 영국 런던 히스로공항도 이날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독일 DPA통신 역시 150편 운항이 취소됐던 베를린공항의 재개와 전날 내려진 야간비행 금지 조치 해제로 이날 오전 19편이 이륙했음을 전했다. 전날 히스로 공항발 167편이 취소되자 도버항구가 크게 붐볐다. 유럽대륙의 관문이자 런던과 가까운 곳이기 때문이다. 프랑스행 페리 이용객들로 북새통이었다는 소식이다.
20일 CNN방송에 따르면 상황이 풀리기만 기다리다 공항에서 밤을 지새운 여행객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항공편 운항이 순차적으로 재개됐지만 워낙 대규모 취소·지연 탓에 수요가 몰려 대량의 ‘순서 대기’를 빚었다. 미국에서만 수천 명이 공항에서 쪽잠을 자며 기다려야 했다.
한편 테슬라 생산 라인의 일시 정지 등으로 일론 머스크는 19일 사티아 나델라 MS 최고경영자가 관련 글을 엑스에 적자 “이것이 자동차 공급망에 발작을 일으켰다”는 댓글을 달았다. 이어 엑스의 다른 댓글에 ‘크라우드스트라이크 삭제’를 선언했으나 회사명을 거론하진 않았다. 현재 테슬라·엑스·스페이스X·뉴럴링크·xAI 등의 경영자 내지 소유주인 머스크는 “안타깝게도 우리 공급업체들과 물류회사들 다수가 그것(크라우드스트라이크)을 사용한다”고 덧붙였다.
몇몇 기업의 기술시장 장악 속에 사소한 기술적 오류조차 대규모 혼란으로 이어질 구조적 취약성이 심화됐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초연결사회에 대한 우려가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소수 기업의 기술 독과점이 문제의 심각성을 키운다는 지적이다.
편리하고 효율적인 초연결사회의 역설적 최대 재앙으로 기억될 이번 사태를 겪으며 향후 대책 마련 노력이 절실해졌다. 자연생태계에서 종(種)의 다양성이 멸종 방지를 위한 궁극의 최선책이듯 기술생태계의 다양성 또한 화두가 될 것이다.
호주의 사이버보안 전문가인 트로이 헌트는 엑스 게시글을 통해 “기본적으로 Y2K(2000년 사이버위기 공포)와 관련해 걱정했던 게 이번에 일어났다”고 짚었다. 이번 IT 대란이 비록 해킹 등 사이버 공격에 의한 게 아니었다 해도 원하면 얼마든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게 증명된 셈이다.
그레고리 팰코 미 코넬대 공학과 조교수는 Y2K 때와 이번 사태의 다른 점으로 “소수 기업의 기술시장 장악이 훨씬 더 확고히 자리 잡았다는 것”을 들며 “극소수의 회사에만 의존해 모두 동일 기술을 쓰다 모두가 동시에 다운된 셈”이라고 꼬집었다. 앤 뉴버거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사이버·신흥기술 담당 부보좌관은 이날 IT 대란 관련 질문을 받자 세계가 한 몸인 보안시스템의 위험성, 사고 발생 시 대처 방법 등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때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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