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6-09-27 03:17
뉴스 > 연재소설
김규나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188] 이 고통, 왜 하필 나인가?
다만 사랑받고 싶었던 죄
김규나 필진페이지 + 입력 2024-10-11 06:30:10
 
 
검을 휘둘러 목을 베듯 왼쪽과 오른쪽에 있는 성상들을, 눈에 닿는 것·손에 닿는 것들을 차례로 때려 부쉈다. 오만하게 나를 내려다보던 흉상들이 맥없이 넘어지고 무너지며 부서지고 깨졌다. 점잖고 엄숙한 침묵의 성전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의 비명과 탄식이 터져 나왔다.
 
“이까짓 게 다 뭔데? 이것들이 인간의 마음을 위로한다고?”
 
두 팔을 휘두르며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나는 천둥과 번개의 신을, 창조의 신을, 부와 행복의 신의 목을 베었다. 신들은 처참하게 부서졌다. 포세이돈과 아폴론이 무너지고, 비슈누와 시바가 깨지고 조각났다. 죽음의 신조차 맥없이 굴러떨어졌다.
 
“죽는 거 아무것도 아니라고? 웃기지 마. 당신들은 죽지 않잖아. 당신들은 불멸하잖아!”
 
피를 토하듯 악을 쓰며 나는 신들을 저주했다. 하지만 데굴데굴 뒹굴면서도 신들은 껄껄 웃었다. 마리아도 웃고 부처도 웃고 예수도 웃었다. 잠시 놀라 소란을 피우던 사람들조차 냉정을 되찾은 듯, 내가 만들어 가는 아수라장을 냉정하게 지켜보았다. 나는 소름 끼칠 정도로 이성적이고 도도한 적막 한가운데 멈춰 섰다. 밟아도 죽여도 다 사라지지 않는 수많은 신들과 날 지켜보는 저 냉담하고 차분한 시선들이 끔찍했다. 하운은 홀 입구에 그대로 서 있는 것 같았지만 나를 말릴 생각은 없어 보였다. 나는 씩씩거리며 홀을 지나 은하계가 펼쳐져 있는 어둠의 방, 우주의 중심으로 뛰어 들어갔다.
 
“아악!”
 
나는 허공을 향해 칼을 휘두르듯 어둠을 가르고 찔렀다.
 
“아아악!”
 
그러나 때려 부술 것은 없었다. 칼에 베일 그 무엇도 없었다. 어둠과 허공은 내가 아무리 발길질하고 주먹을 휘두르고 때리고 베어 버려도 끄떡도 하지 않았다. 내가 무슨 짓을 하든 우주의 수백만 개의 별은 변함없이 반짝이며 제 궤도를 정확히 돌고 있을 뿐이었다.
 
그곳에, 검은 어둠 저편에 변함없이 내가 있었다. 분노를, 공포를, 시기와 질투를, 연민과 사랑을, 삶과 죽음을 어쩌지 못하고 울부짖는 짐승이 나였다. 나는 들고 있던 뱀의 머리를 화살처럼, 어둠의 투명한 과녁 한가운데를 향해 힘껏 집어 던졌다. 그러나 그것은 어둠의 끝에 닿지 못했다. 나의 분노와 슬픔과 소망은 허공에 떨어져 소리도 없이 사라졌다. 우주는 여전히 돌았다. 그 중심에 끄떡도 하지 않는 내가, 눈도 끔쩍하지 않는 내가 날 내려다볼 뿐이었다.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내가 뭘 잘못했는데? 그래. 이 새끼야! 믿어 줄 테니까 말해 봐. 내가 어떻게 해야 살 수 있는지 말해!”
 
나는 그 앞에 무릎 꿇었다. 쓰러지듯 엎드려 얼굴을 묻었다. 서러움이 용암처럼 목구멍을 밀고 솟구쳐 올라왔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알 수 없었다. 어머니가 그리웠을 뿐이었다. 아버지가 안아 주었으면 싶었다. 나의 마리아를 만나고 싶었다. 한 번만이라도 따뜻하게 사랑받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도 날 위로해 주지 않았다. 아무도 날 안아 주지 않았다. 그래도 잘 견뎌 낸 줄 알았다. 아니었다. 그동안 나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고 어떤 것도 극복하지 못했다.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광고
후원하기
  • 정기 후원
  • 일반 후원
  • 무통장입금: 하나은행 158-910019-39504 스카이데일리
  • 스카이데일리는 공공성에 기반해 독자가 만들어 가는 언론을 지향합니다. 정기 또는 일반 후원시 맞춤형 뉴스, 독자에게 할당하는 지면 서비스, 동행하는 홍보, 유상증자시 참여기회 제공(법인에 한함)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180
좋아요
129
감동이에요
5
화나요
160
슬퍼요
10
댓글 : 127
방문수(PC&모바일)
오늘(실시간) 16,928 ▶
어제 135,094 ▶
최근 7일 ▶
대한민국 명사들
대면 기회를 가져보세요.
팬클럽 가기
오늘자 스카이데일리



주요 섹션 기사
주소 : 서울시 서초구 방배천로2안길 82(방배동 463-18) 청송빌딩 3,4층 | 전화 : 02-522-6595~6 | 팩스 : 02-522-6597
종합일간지 등록번호 : 서울시 가50131,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시 아01703, 등록일 : 2011년 7월 18일
발행·편집인: 민경두, 편집국장 : 주경준, 사업자 번호 : 214-88-81099 후원계좌 : 158-910019-39504(하나은행)
copyrightⓒ2011, All rights reserved. Contact : skyedaily@skyedaily.com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진강
본지는 한국신문윤리위원회의 서약사로서 신문윤리강령을 준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