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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공작원 김동식 회고록-죽기 위해 살아야 하는 운명
[평양에서 왔습니다] <29> 혹독한 대학 4년 결실… 드디어 공작원이 되다
김동식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4-01 06:30:00
▲ 김동식 前남파공작원‧대북전략컨설팅 대표
 
 
졸업시험, 그리고 시험을 통해 배운 인생
 
특공대 전투 사격 훈련을 마치고 대학으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돼 1985년 새해가 밝았다. 극한 훈련을 견뎌내는 체력을 바탕으로 여러 테러 기술과 특공 전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사상적 무장까지 다지며 4년을 이겨 낸 나는 1985년 2월 국가 졸업시험을 보았다.
 
북한에서의 시험은 모두 주관식이다. 필기시험과 구두(구술)시험을 동시에 봐서 평균 점수를 내는 방법으로 평가한다. 물론 평상시 수업 태도도 종합적으로 감안해 최종 점수를 준다. 당시 국가 졸업시험 과목은 김일성혁명역사·김일성 및 김정일 노작·정보학·비합법전술·특공전술 등 5개 과목이었다. 나는 5개 과목 가운데 김일성혁명역사 과목만 10점 만점에 9점을 받고 나머지 4개 과목은 모두 10점 만점을 받았다.
 
김일성혁명역사 과목은 첫 번째로 시험을 봤기 때문에 다른 과목보다 공부도 많이 했고, 시험도 잘 보았기 때문에 충분히 10점을 받을 수 있었는데 9점을 받은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당시 내가 최종 졸업성적증에 기재되는 김일성혁명역사 과목 점수를 9점 받은 것은 졸업시험 성적이 아니라 2·3학년 때 김일성혁명역사 과목 담당 교수와 과제 발표 문제를 놓고 몇 번 언쟁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최종 점수를 깎은 것이었다.
 
어떤 친구는 자기 점수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며 담당 교수를 찾아가 따지고 싸웠다는 얘기도 들렸지만, 나는 자존심이 상해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당시 나와 같이 졸업한 김정일정치군사대학 19기 동기생 170여 명 가운데 5개 과목 모두 10점 만점을 받은 10점 최우등생이 3명이었다. 나는 김일성혁명역사 과목(9점) 하나 때문에 결국 10점 최우등생 집단에 끼지 못해 상당히 아쉬웠다. 그러나 나는 시험 점수가 곧 그 사람의 모든 능력을 평가하는 절대적인 척도는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위안을 삼았다.
 
또 김일성혁명역사 과목 평가에서 10점이 아닌 9점을 받고 보니 공부를 잘해서 시험을 보고 그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머리 좋고 공부 잘하고 일 잘하는 것 못지않게 대인관계를 잘 맺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교훈도 얻었다.
 
1월부터 2월 중순까지 졸업시험이 끝나면 보통 2월 말에 졸업하는데, 우리 19기생은 바로 대학을 졸업하지 못하고 3월 초~5월 말의 3개월간 대학 교직원용 아파트 건설 노동에 동원되어 일을 했다. 당시 평양시 용성구역 중심부에 김정일정치군사대학 교수들이 살 아파트 짓는 데 동원된 것이다.
 
이 기간에 평양 시내 관광을 했다. 그때 대성산유원지에 놀러 갔다가 안전원(경찰)들과 몸싸움을 하기도 했다. 싸움이라야 동기생 서너 명이 1개 소대 정도 되는 안전원들을 일방적으로 때린 것이다. 그 사건이 곧바로 중앙당 조직지도부에 보고되어 대학에서 며칠 동안 사상투쟁을 했다. 아울러 당시 우리를 인솔했던 교관은 그 책임을 지고 처벌받아 6개월간 무보수 노동을 하기도 했다.
 
대학 4학년생 노동당에 입당하다
 
나는 대학 4학년 과정을 거의 마무리하던 무렵인 1985년 2월 국가 졸업시험 기간에 노동당 후보당원으로 입당했다.
 
원래 북한에서 고등중학교를 졸업한 학생이 대학에 입학(‘직통생’이라 함)하는 경우 아무리 대학 성적이 좋아도 대학 재학 중에 노동당에 입당시키는 경우가 없다. 그러니까 대학 재학 중에 입당할 수 있는 것도 김정일정치군사대학만의 특권이고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조선노동당 총비서 추대 6돌을 맞아 2003년 10월9일 평양 봉화예술극장에서 인민보안성 청년 전위들의 경축야회가 열리고 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당시 김정일정치군사대학 19기 동기생 170여 명 가운데 노동당에 입당한 학생은 10% 정도였다. 내가 소속된 소대에서는 나와 소대장 강용구·부소대장 박세현·1분대장 김대성 등 4명만 입당했다. 나는 2월 중순 소대에서 추천을 받아 대학 초급당위원회 심의를 거쳐 노동당 작전부 당위원회에서 최종 심사를 받고 후보당원으로 입당했다.
 
그런데 노동당원 입당 심사 과정에 노동당 규약에 제시된 당원의 권리와 의무, 그리고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 원칙’(10대 원칙)은 무조건 한 글자도 틀리지 않게 통째로 외워야 하는 건데 건성으로 외웠다가 중앙당 작전부 사로청(청년동맹) 심사 과정에서 틀리게 답변해 담당자로부터 난생 처음 심한 욕을 먹은 적이 있다.
 
그렇게 심한 욕을 먹으니 오기가 생겨 하룻밤을 꼬박 새우면서 그것들을 모두 외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북한에서는 노동당에 입당시킬 때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후보당원으로 먼저 입당시켜 1년간의 조직 생활을 통해 검증한 다음 정당원으로 입당시킨다. 처음에 후보당원으로 입당하기가 어렵지 일단 후보당원이 되면 특별한 잘못을 범하지 않는 한 1년 뒤 거의 정당원으로 입당한다. 따라서 일단 후보당원이 되면 정당원이 다 된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나도 대학을 졸업하고 공작원으로 임명된 다음 해인 1986년 2월 정당원 자격 심사를 받고 정당원으로 입당했다.
 
최종 면접,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다
 
내가 동기생들과 평양 용성 구역에서 교직원 아파트 건설 노동을 한창 하고 있던 5월 중순 어느 날, 중앙당 작전부와 연락부·조사부 등 대남공작부서 인사담당 간부들이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을 방문해 전체 졸업생들을 상대로 1:1 면접 심사를 했다. 이때의 면접 심사는 나에게 있어 공작원이 되느냐 못 되느냐 하는 마지막 관문인 셈이었다.
 
당시 나는 대학에 입학할 때 데려다주면서 “4년 후에 봅시다”는 한마디를 남기고 떠났던 중앙당 연락부(현재 문화교류국) 인사담당 부과장과 면담했다. 면접 당시 그는 대학 4년간 나의 생활과 학업·훈련 성적, 건강 상태와 앞으로의 결심 등을 간단히 물어본 다음 돌아갔다.
 
사실 연락부에서 선발해서 위탁교육을 시키다가 다시 데려가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아 졸업 직전에 진행하는 면담은 굉장히 신경 쓰인다.
 
나보다 1·2년 선배 중에도 대학에 입학할 때는 연락부에서 선발해 위탁교육생으로 들어왔는데 졸업할 때는 연락부에서 데려가지 않고 그냥 작전부 산하 연락소에 전투원으로 배치된 사례가 여럿 있었다. 물론 이것은 공작원으로 임명되느냐 안 되느냐의 문제보다 당연히 가야 할 곳에 가지 못한다는 것, 결과적으로 공작원으로서의 자질이 부족해 인정을 받지 못했다는 자존심의 문제이기 때문에 더욱 신경이 쓰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따라서 졸업 전에는 자신의 진로 문제가 어떻게 결정될지 몰라 상당히 신경을 쓰기 마련이며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것은 나 혼자 신경 쓴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고 시간만이 해결해 줄 수 있는 일이었으므로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그 후 5월 말에 대학 졸업식을 했다. 그날 비로소 대학 교무과 지도원으로부터 내가 연락부 공작원으로 정식 임명되었다는 것을 통보받게 되었다.
 
나를 면접했던 연락부 부과장은 그날 저녁 벤츠 승용차를 타고 와서 나와 함께 4년간 같은 소대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생활했던 친구 명수와 나를 태우고 평양시 중구역에 있는 연락부 산하 중구 1호 초대소로 갔다.
 
이렇게 나는 전투원양성반에서 위탁교육을 받은 후 연락부 공작원으로 정식 임명되었고 그때부터 공작원으로서의 본격적인 생활이 시작되었다.
 
돌이켜보면 김정일정치군사대학 4년 과정은 체제와 이념을 떠나 지금까지의 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뜻깊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대학 생활 4년을 통해 내가 얻은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그 어떤 어려운 일이 닥친다 해도 얼마든지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과 강한 의지·자생력 등을 배양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은 이후 나의 모든 생활에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밑천이 되었다.
 
▲아들이 묻고 아버지가 답하다
 
※ 2021년 11월 육군 현역으로 입대 후 대한민국 국민의 4대 의무 중 ‘국방의 의무’를 성실히 마친 아들과 내가 직접 나눈 대화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아들이 묻고 아버지가 답’하는 형식으로 본 연재의 각 회차 마무리를 대신하려 한다.
 
아들 : 전향하신 후 아버지께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임무 중 접선했던 고정간첩, 아버지를 함정에 빠뜨렸던 ‘봉화1호’ 혹은 아버지가 느끼기에 불순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아버지에게 먼저 연락을 해 온 적은 없었나요? 아무리 괜찮다고 하시지만 사실 엄마나 저희들은 아버지의 신변 안전에 대한 걱정을 완전히 떨쳐 버리기가 힘듭니다.
 
아버지 : 내가 전향해서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오는 동안 공작 임무 수행 중 접선하거나 포섭했던 사람(고정간첩)들이 찾아오거나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연락해 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 아마 그들이 나를 찾아오지 않은 것은 자신들이 했던 간첩 행위를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나를 만난다는 것은 곧 자신들의 간첩 행위를 인정하는 것이 될 뿐만 아니라 그들 입장에서는 나를 ‘배신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거야. 배신자를 만나면 자신들도 배신자로 취급받을 수 있으니까….
 
다만 나를 죽음의 함정에 빠뜨린 남파 공작원 ‘봉화1호’(자운 스님)는 다른 사람(대공 수사 관계자)들을 통해 나를 만났으면 좋겠다고 연락을 해 온 적이 몇 번 있었어. 처음에 그가 나를 만나고 싶다고 했을 때는 점잖게 거절했는데, 그 후에도 계속해서 여러 번 나를 만나고 싶다고 연락해 오더라고….
 
하도 그래서 나중에 “도대체 봉화1호가 나를 만나고 싶다고 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더니 단순히 자기 가족의 안부를 알고 싶다는 것이 이유였어. 그래서 내가 이렇게 얘기했지.
 
“당신 가족만 중요하냐? 나는 당신 가족보다 내 가족이 더 중요하다. 그런데 내 가족은 내가 검거된 후 숙청되었다. 그런데 내가 검거된 결정적인 이유는 내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당신 때문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검거되는 과정에서 사랑하는 내 조원 광남이가 희생됐다는 것이다. 광남이가 사망했을 때 서너 시간 동안 내가 얼마나 슬프게 울었는지 모른다. 그 친구가 왜 죽었나? 바로 당신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당신을 만나면 나도 사람인지라 나도 모르게 욱해서 당신에게 폭행을 가할 수도 있다. 그러면 당신은 연세가 많기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내가 졸지에 살인자가 될 거 아니냐. 그러니까 우리 서로 만나지 않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내가 비록 전향해서 대한민국에 살고 있지만, 내가 전향해서 사는 것과 당신과는 관계없는 별개의 문제니까 더 이상 나를 만나려고 하지 마라. 나도 만나고 싶지 않으니까….”
 
그랬더니 더 이상 ‘봉화1호’에게서 만나자는 연락이 오지 않았고, 지금으로부터 3년 전엔가 그가 사망했다는 얘기를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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