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병원 진료비를 사전에 공개하자는 이른바 ‘진료비 사전공시제’ 도입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펫팸족들의 증가로 인해 동물병원 진료비가 점차 양육비용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다 동물병원마다 진료비 편차가 심한 점도 펨팻족들의 의료비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진료비 표준화’, ‘진료비 사전공시제’ 등을 담은 법안들이 국회에 제출돼 있지만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어 국회 통과 여부는 미지수다.
수술 한 번에 수백·수천…펫팸족 90% "진료비 부담 느낀다“
반려동물 양육 가구는 지난 2010년 전체가구의 17.4%에서 지난해 29.4%로 급증해 약 511만 가구에 달하고 있다. 우리나라 4가구 중 1가구는 반려동물을 기르고 있는 셈이다. △1인 가구 증가 △고령화 △미혼 추세 등으로 인해 반려동물 양육가구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찮다. 버려지는 반려동물은 2011년 약 9만6000마리에서 2018년 12만1000마리로 크게 증가했다. 한국소비자연맹 조사결과에 따르면 반려동물 양육인의 지출항목 중 병원비 부담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나 동물병원 진료비가 유기동물 발생의 한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한국소비자연맹이 올해 3월~4월 동물병원 이용자 63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최근 1년간 동물병원 진료횟수는 평균 5.3회, 1회 평균 진료비는 11만1259원으로 조사됐다. 진료비에 부담을 느낀다는 응답자는 약 90%에 달한 반면 부담되지 않는다는 응답자는 0.6%에 불과했다. 특히 진료비 부담이 큰 진료항목으로 △검사(혈액, X-ray 등) 19.8% △중대질병(암, 심장비대증 등) 12.3% △만성질환(피부, 신부전 등) 11.8% 등 고가의 진료항목을 꼽았다.
동물병원의 진료비 정보도 ‘깜깜이’ 수준이다. 동물병원 선택 전 진료비를 비교한다는 의견은 78.9%인데 반해 비교방법은 △커뮤니티(29.6%) △인터넷 검색(28.2%)에 의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진료비를 비교하지 않는 이유로 △진료비 정보를 알기 어려워서 36.9% △전문적인 내용으로 비교자체가 어려워서 25.5%로 응답해 펫팸족들의 진료비 정보 접근성이 매우 떨어지는 것으로 지적됐다.
동물병원에서 진료비 정보를 제공받은 시점도 ‘진료 후’라고 답한 응답자가 70.8%에 달했다. 이마저도 항목별로 상세하게 영수증을 받은 경우는 27.9%에 그쳤고 나머지는 병원 측에서 총액만 알려주거나 구두로 알려주고 있었다.
진료비 폭탄 등 부작용을 호소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경기 부천시에 거주하는 A씨는 노화로 인해 시력장애를 앓고 있는 반려견 치료비로 매달 40여만원을 지출하고 있다. 진료비가 더 저렴한 동물병원을 찾으려 인터넷을 검색해 봤지만 관련정보를 찾지 못해 포기했다. 직장 때문에 일일이 다른 동물병원을 방문해 진료비를 문의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 반려견 진료비의 적정성에 대한 의문을 접었다.
서울 중구에 거주하는 B씨는 반려견의 탈장수술과 입원비로 지출한 병원비가 300여만원에 달했다. 서울 서초구에 사는 C씨는 반려견이 항문낭 파열 수술을 받은 후 부작용으로 재수술을 받으면서 3개월 동안 1000여만원의 병원비를 지불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동물병원 진료비 정보에 대한 소비자와 동물병원 간 비대칭이 심각한 수준이다”며 “진료비 정보를 사후에 안다고 해도 진료비를 지불하지 않을 수 없는 만큼 진료비 정보는 사전에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반려동물 진료비와 관련한 팸팻족들의 부담과 불만도 매우 높은 수준이다. 동물병원 이용 시 불만사항으로 △사전고지 없음(14.5%) △과잉진료(13.6%) △과다청구(12.3%) △진료비 편차(11.8%) 등 진료비 관련 사항이 대부분을 차지해 진료결과에 관련한 불만(오진 9.2%, 효과없음 5.6%, 부작용 4.2%)보다 훨씬 높았다.
공시제 도입 요구 목소리 커져…수의업계, “외국에 비해 비싸지 않아” 반박
특히 동물병원 진료비 정보제공 만족도는 2.7점(5점 만점)으로 매우 낮았다. 동물병원 개선사항 역시 △진료비정보 게시(21.7%) △부당·과잉진료 신고센터 운영(16.8) △진료비 비교사이트·앱 필요(13.7%) 등을 꼽았다. 반면 진료비 정보가 사전에 제공된다면 받게 될 ‘도움정도’는 4.7점으로 매우 높았다. 응답자의 45.1%는 세부항목별 금액과 처지내용 정보를 원했다.
지출항목 중 동물병원 진료비에 대한 펫팸족들의 부담도는 4.4점으로 사료비(3.0), 간식비(2.8), 미용비(3.2), 용품구입비(2.9) 보다 월등히 높았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진료비 과다청구, 진료비 사전 미고지, 과잉진료 등 진료비 관련 불만이 많고, 소비자들이 진료비에 부담을 많이 느끼고 있다”며 “진료비 사전 고지와 세부항목별 금액과 처치내용 등 자세한 정보를 제공받길 원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설명했다.
또한 “지난 1999년 동물의료수가제 폐지로 동물병원 간 자율경쟁을 통한 진료비 감소 효과보다는 동물병원마다 천차만별인 진료비로 인해 소비자의 경제적 부담이 늘어나고 있다”며 “소비자가 진료비를 예상할 수 있고 경제적 부담을 완화 할 수 있는 진료비 표준화 도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수의업계는 우리나라 동물병원 진료비가 외국에 비해 높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동물복지 선진국인 미국·독일 등은 물론 동남아 국가들과 비교해도 진료비가 높은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건강보험제도에 따라 의료기관 이용 시 환자부담금이 낮기 때문에 이를 동물병원과 단순비교 하면서 동물병원의 진료비 수준이 높다는 인식이 생겼다는 주장이다.
유기동물 발생원인 중 하나로 동물병원의 높은 진료비가 지목된데 대해서도 △반려동물 양육자의 월평균 지출은 12만원인 반면 진료비는 이중 1만3000원에 불과하다는 점 △유기동물의 92%는 건강한 동물이라는 점을 들어 사실과 다르다고 설명하고 있다.
우연철 대한수의사회 전무는 “동물은 사람과 달리 말을 하지 못하고, 질병상태를 숨기는 본능 때문에 정확한 진료를 위한 각종 검사는 필수적이다”며 “진료 과정에 따른 예후도 확실하지 않아 추가 진료 예상도 어려워 과잉진료를 한다는 인식이 있다”고 밝혔다.
‘깜깜이’ 진료비로 인한 펫팸족들의 불만이 높아지면서 ‘진료비 사전공시제’ 도입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경남연구원 이혜진 연구위원은 동물병원 진료비 관련 보고서를 통해 “반려동물 양육환경을 조성하는데 있어 가장 큰 문제는 동물병원 진료비다”며 “진료비는 반려동물가구에게 가장 부담이 되는 부분이며, 진료비 자체도 높지만 동물병원 간의 가격편차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동물병원 진료비 공시제를 통해 소비자의 부담이 완화되고 동물병원 간의 진료비 편차를 감소시키는 효과가 예측된다”며 “지금까지 무방비 상태로 방치돼 온 동물병원 진료비의 체계를 바로 잡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진강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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