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한코로나로 우리 사회가 힘들지만 한국은 참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패스트푸드점에서나 봤던 ‘드라이브 스루’ 시스템을 코로나 진단에 활용해 엄청난 속도로 일처리를 해내고 있다. 순발력 있는 인재가 있기 때문이다. 케이팝에선 BTS가, 영화에선 기생충이, 성악에선 조수미가 놀랍지만, 인재는 다른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요즘 트로트를 보면서도 그런 느낌을 받고 있는데 조명섭이란 청년이 특히 그렇다.
우리는 대개 소심하고 평균적인 인생을 살고 있다. 사소한 일에 발끈 화를 내고 답답하고 힘든 현실에 갇힌 듯해 짜증도 낸다. 그럴 때 노래방을 찾거나 술을 마시며 일탈을 꿈꾼다. 살짝 흥분되고 살짝 설레고 때론 후련함을 꿈꾸지만 현실이 따라주지 못해 캠핑이나 먹방을 보며 대리만족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이가 있는 분들은 이럴 때 어떻게 하고 있을까?
답은 여럿일 테지만 그중 하나는 분명 트로트이다. 송가인 열풍으로 시작된 트로트의 열기가 뜨겁다. TV 프로 「미스터트롯」의 출연자들은 그 실력이 놀랍다. 요즘은 나이가 있는 어른들도 유튜버가 되려고 하고 있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곤 한다. 가족을 위해서 살았던 만큼 이젠 자신을 위해서도 살아야 한다는 걸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그 때문일까. 요즘 트로트에 빠져 지내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웃을 일이 없는 요즘 가수 조명섭 때문에 웃기 때문이다. 이제 겨우 스물 두 살의 청년이 높이 빗어올린 올백 머리, 정갈한 양복과 넥타이, 옛스런 말투를 구사한다. 그는 대중들에게 웃음을 주고 아픈 곳을 치유하는 의사 같은 가수가 되겠다고 했었는데, 지금 그의 말이 현실이 되고 있다. 팬들은 고급스런 목소리에 때 묻지 않은 인성에 흠뻑 빠져 있다.
유튜브를 찾아 그의 노래를 들어보니 더욱 놀랍다. 현인이 부른 「신라의 달밤」을 들으며 트로트가 아름답다는 생각을 처음 느꼈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선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을 보는 듯하고, 또 1950년대를 살던 가수가 백투더 퓨처 속 타임머신을 타고 지금 시대로 온 듯하다. 그가 내뱉는 인생론도 예사롭지 않아서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가 된다.
이제 스물을 갓 넘긴 청년이 할아버지 할머니뻘 되는 어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인간의 뇌는 단순하지 않다. 우리의 뇌는 납득이 되고 공감이 될 때 반응하기 때문이다. 격하게 반응하는 것은 분명 공감이 가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놀랍다. 사람들의 마음을 읽는 힘을 가수는 어떻게 갖게 되었을까 궁금하다.
뛰어난 가수들에게서 보듯이 신은 재능을 거저 주는 경우는 없는 것 같다. 가수 조명섭의 삶도 예외가 아닌 것이 그는 7세부터 9세까지 하체 장애가 있어서 누워서 지냈다고 한다. 가정 형편도 어려워서 어린 그는 마음 붙일 곳이 없었다. 12살 때 우연히 뉴스에서 「신라의 달밤」을 들었는데, 그 멜로디와 가사가 위로가 되었다고 한다.
12살 시절 우연히 듣게 된 노래에 감동을 받았던 조명섭이 현인의 대표곡―「신라의 달밤」, 「고향만리」, 「굳세어라 금순아」, 「꿈속의 사랑」, 「럭키 서울」 등―을 부르기 시작하자 그 작은 날갯짓이 한국사회라는 큰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주고 있다. 나비효과가 정녕 틀린 말이 아니란 걸 실감한다.
한 청년이 트로트란 장르에 대한 개념을 바꾸고 있다. 예전엔 나이든 어른들만을 위한 장르에 불과했지만 이젠 누구나 부를 수 있는 새로운 장르의 노래로 부상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가수 현인도 일제 강점기에 성악을 공부했고 탱고, 맘보, 샹송, 칸초네 같은 서구 리듬을 도입해 삶의 고단함에 지친 국민들을 위로했는데, 이것이 청년 조명섭의 삶과도 맞닿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요즘 한국은 코로나로 힘들다. 신천지라는 이단이 이 힘겨움을 더해 짜증도 나지만 그래도 지친 시민들에게 흥겹고 경쾌한 목소리로 위로를 주는 좋은 가수들이 있다는 것이 힘이 된다. 조명섭을 찾는 대중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힘든 사람들이 많다는 뜻일 것이다. 조명섭이 희망이 되었듯이 우리 모두 역시 먹구름 속 누군가에게 무지개 같은 사람들이 되자. 구름 사이를 뚫고 나오는 빛줄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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