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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일의 문학푸드
트로트의 인기 뒤에 숨은 스토리텔링의 힘
픽션은 삶의 거대한 난제를 푸는 가상현실의 장
이정일 필진페이지 + 입력 2020-05-03 17:30:00
▲ 이정일 인문학 칼럼니스트
 요즘 트로트의 인기가 엄청나다. 코로나 사태로 한창 힘들 때 트로트는 다른 어떤 장르보다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었기 때문이다. 패션이건 음악이건 트렌드가 바뀔 때는 이유가 있다. 계절이 바뀌듯 유행도 바뀌지만 여기에는 어떤 패턴이 있다. 새로운 트렌드의 이면에는 그것을 지탱하는 뼈대가 있는데 그것이 스토리텔링이다.
 
재능은 가졌지만 그 재능을 제대로 펼칠 기회를 잡지 못하던 청년들이 자신의 숨은 재능을 펼치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오디션 프로마다 이런 이야기가 숨어 있다. 영국과 미국의 ‘브리튼즈 갓 탈렌트(Britain's Got Talent)’나 ‘아메리카즈 갓 탈렌트(America's Got Talent)’ 같은 프로그램에서 재능이 뛰어난 출연자는 골든 버저를 받는다. 생방송까지 직행하는 티켓을 받은 것이지만 그 순간 평생을 따라다닐 이야기를 얻게 된다.
 
이야기는 우리의 일상 속 곳곳에 숨어 있고 이런 이야기를 누구보다 활발하게 활용하는 것은 비즈니스에 밝은 사람들이다. 한국에선 프로 레슬링의 인기가 사라졌지만 미국에선 여전히 인기가 높다. 경기 전 모습을 보면 두 명의 선수들이 으르렁거린다는 말이 맞을 정도로 입씨름을 한다. 하지만 전문가는 이 모든 것이 스토리텔링 기법을 따른 것이라고 말한다.
 
신은 이야기를 사랑하여 인간을 만들었다는 말이 요즘은 마음에 와 닿는다. 사람들이 빠져드는 영화나 드라마에는 이야기가 주는 힘이 있다. 요즘 <부부의 세계>가 뜨거워서 시청률도 높지만 기사 조회 수도 높다. 이 드라마에 출연한 한 여배우 SNS에는 악플이 엄청나게 달리고 있다고 한다. 픽션과 실제를 혼동한 것이지만 그만큼 이야기가 주는 힘이 엄청나다는 걸 보여준다.
 
코로나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드라마에 빠져드는 사람이 늘어난 것은 분명하다. 자가 격리를 하는 동안 드라마를 몇 개씩 마스터한 지인을 만났다. 밥 먹는 시간을 빼놓고 밤낮이 바뀌는 줄도 모를 만큼 이야기가 끄는 힘은 엄청난 것이다. 이런 이야기에 끌리는 이유는 픽션이 쾌감을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야기가 쾌감을 주는 이유는 여럿일 테지만 그중엔 일상의 압박에서 잠시나마 해방될 수 있다는 것도 크다. 『왕좌의 게임』은 소설과 드라마 모두 흡입력이 엄청나다. 물론 픽션 속에도 갈등과 투쟁과 긴장과 죽음의 고통으로 가득한 상상의 세계가 있지만 우리는 이야기에 빠져든다. 주인공이 우리 대신 이 모든 것을 감내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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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가 살던 기원전 4세기에도 그리스 사람들은 연극이 주는 힘에 빠져 들었다. 셰익스피어가 살던 16세기에도 마찬가지다. 무성영화가 나오던 일제 강점기 시대에도 사람들은 변사가 풀어주는 이야기에 웃고 울었다. 이야기는 단순히 쾌감만 주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는 쾌감 외에도 우리에게 주는 것이 많다.
 
오래 전 일이지만 일본에서 사린 가스 테러가 일어났을 때 무라카미 하루키가 옴진리교 사람들을 취재한 뒤 이런 결론을 내렸다. “픽션을 읽어 본 경험의 부재가 엘리트 과학도를 광신자로 만들었다.” 픽션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다양한 경우의 수를 보여준다. 독자는 캐릭터의 경험으로 이동하면서 동일한 사건을 여러 다른 각도로 살펴보게 된다.
 
조너선 갓셜이 『스토리텔링 애니멀』에서 설명하듯 픽션은 삶의 거대한 난제를 시뮬레이션하는 강력하고도 오래된 가상현실 기술이다. 사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차이는 크지 않지만 그 작은 차이가 픽션을 읽어본 경험의 유무로 벌어지곤 한다. 픽션을 즐겨 읽는 사람이 논픽션을 즐겨 읽는 사람보다 사회적 능력과 공감 능력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는다고 한다.
 
다 아는 이야기이지만 변화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토론하는 자리에서 한 말을 들으니 그 역시 이야기가 갖는 힘에 공감하고 있다. 정치인이 아무리 거창한 꿈을 갖고 있어도 자신의 이웃, 동료, 지역사회, 심지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야만 그가 꿈꾸는 이야기로 대중을 움직일 수 있다고 한다.
 
우리 역시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야기가 주는 힘도 알게 되었다. 인도에서 제국주의 영국을 몰아낸 것은 총이 아니었다. 차별에 눈을 뜨게 한 이야기였다. 우리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우리 사회도 진보하려면 우리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역사를 보면 그런 변화의 이야기는 20대가 가장 많이 만들어냈다. 위기의 때에 트로트라는 새로운 스토리텔링으로 우리 시대를 위로한 청년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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