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취재팀=조성우 차장|박찬균·이창현·허경진 기자]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한 6·25전쟁은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맺어지면서 마무리됐다. 약 3년간 지속된 전쟁은 우리 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특히 전쟁으로 고향을 떠난 실향민들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지역에서 힘겨운 삶을 살아가야 했다. 6·25 전쟁 당시 임시수도였던 부산과 대구에는 그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6·25 전쟁 피란민 대거 몰린 부산…관광명소·음식 등 피란 문화 흔적 고스란히
6‧25 전쟁 당시 수도 서울이 북한의 손에 넘어가자 정부는 남쪽에 위치한 부산을 임시수도로 지정했다. 이후 수많은 인파가 전쟁을 피해 부산으로 몰려들었다. 특히 1·4 후퇴 당시 레인빅토리호에 탑승한 많은 실향민이 부산에 정착하게 됐다.
6·25 전쟁이 끝난 지 70년이 흘렀지만 임시수도였던 부산에는 아직까지도 전쟁의 상흔이 곳곳에 남아 있다. 전쟁을 피해 고향을 떠나온 실향민들이 터전을 잡은 감천문화마을도 그 중 한 곳이다. 지금이야 한 해에 185만명 가량이 찾는 유명 관광지이지만 6·25 전쟁 직후 이곳은 판자촌, 빈민가였다.
옥녀봉에서 천마산에 이르는 산자락을 따라 길게 늘어선 계단식 주거지는 당시 실향민들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실향민들은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인적이 드문 산비탈에 집을 짓고 살아야만 했다. 넉넉하지 못한 공간에 많은 인원이 살아야 했던 탓에 좁은 공간에 집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부산시 중구 해관로 61번지 일원에 위치한 40계단 문화관광테마거리 역시 오늘날 문화와 예술의 거리로 각광을 받고 있지만 실향민들의 삶과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곳이다. 40계단은 1909~1912년 사이에 조성된 복병산 일부 주택가와 해안가 매립지를 연결한 통행로다. 실향민들은 매일 40계단을 오르내리며 일터에 나가고 식수를 길어 나른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에는 주거 이외에도 다양한 실향민 문화가 남아 있다. 부산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자리 잡은 밀면도 그 중 하나다. 밀면은 북한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이 고향음식인 냉면 재료를 찾다가 감자나 메밀을 구할 수 없어 구호품인 밀가루로 대신 만든 데서 유래했다.
실향민 중에는 부두 노동자가 많았는데 냉면은 식감이 질긴 반면 밀면은 부드러워 인기가 많았다. 시원한 육수에 적신 쫄깃쫄깃하면서 탱탱한 면발을 자랑하는 밀면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부산에 살고 있는 실향민 1세대 구문원 씨(95)와 아내인 조영자 씨(83‧여) 역시 부산의 판자촌에서 처음 터전을 잡았다. 평안북도 룡천군이 고향인 구 씨는 “감천마을, 초량 등에 실향민들이 많이 살았다. 일자리가 있는 부둣가 근처에도 실향민들이 판자촌을 형성하고 살았다”며 “실향민 친구들과 밀면 등을 먹으며 이야길 나누곤 했는데 이제는 살아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구 씨는 부산이 실향민이 정착하기 비교적 용이한 지역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부산에는 부두가 많아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비교적 쉬웠다”며 “별다른 기술이 없는 실향민들이 부두에서 일을 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33일간의 임시수도 대구… 실향민 삶의 터전이 된 전통시장
6‧25 전쟁 당시 33일 동안 대한민국의 임시수도였던 대구시에도 실향민 문화가 많이 남아있다. 대구 중구 향촌동은 1906~1907년 대구읍성이 헐리고 1911년 성곽과 누각이 사라진 자리에 새로 생겨난 동네다. 이곳엔 6‧25 전쟁 후 전국 각지의 실향민들이 몰려들었다.
특히 6‧25 전쟁을 피해 내려온 문화예술인들이 이곳에 자리 잡으며 문화와 예술에 대한 열정을 쏟기도 했다. 당대를 대표하던 구상, 조지훈, 이중섭, 이상범, 김동진 등이 이곳에 거주하며 숱한 일화를 남겼다.
8‧15 광복 당시 귀국한 동포들에 의해 만들어진 교동시장은 6‧25 전쟁 직후 이곳에 실향민들이 몰려들면서 미군 PX에서 흘러나오는 구제품과 화장품 등이 활발하게 거래된 곳이다. 실향민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교동시장은 1956년 정식허가를 받았으며 1980년대까지 호황을 누렸다.
공정갑 대구교동시장 상인연합번영회 회장은 “피란민들에 의해 형성된 교동시장은 옛날에 미군부대 PX에서 흘러나온 군수품 등을 많이 판매했다”며 “양키시장, 도깨비시장 등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아직까지 살아있는 실향민 1세대 분들이 몇 있다”고 말했다.
대구에도 역시 실향민들의 추억이 서린 음식이 많이 남아있다. 대구의 명물이 된 납작만두가 대표적이다. 납작만두는 6‧25 전쟁 당시 북한 피란민들이 밀가루 피에 넣을 것이 마땅하지 않아 당면을 넣고 납작하게 만두흉내만 내 빚은 데서 시작됐다. 가난한 시절 배고픔을 달래주던 최고의 음식이었다.
따로국밥 역시 대구의 피란 문화를 상징하는 음식으로 알려진다. 6‧25 전쟁 당시 대구는 전국에서 피난 온 사람들이 대거 몰렸다. 피란민들은 시장 바닥에서 국밥을 사먹으며 한 끼를 때우곤 했는데 아무리 피란길이라고 해도 교양 있는 양반집 출신과 여자들은 국에 밥을 말아 먹는 것을 익숙해 하지 않았다. 그래서 밥과 국이 따로따로 나오는 따로국밥이 탄생했다.
향촌동 일대에서 따로국밥 가게를 운영하는 김순자 씨(73‧여)는 “따로국밥은 6‧25 전쟁 이후 피란민들에 의해 전국적으로 알려진 대구의 자랑스러운 전통문화다”며 “밥과 국이 따로따로 나와 붙은 이름으로 소고기, 선지, 갖가지 양념을 넣고 푹 끓인 건강식이다”고 말했다.
[허경진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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