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취재팀=임현범 부장|강주현·이지영·엄도현 기자] 최근 정부가 남북교류협력법 위반뿐 아니라 공유수면법과 항공안전법의 위반 혐의까지 추가해 대북전단(삐라) 살포 단체를 경찰에 고발하고 청와대는 이에 대한 입장을 직접 발표했다. 북한이 전단에 실린 내용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이를 빌미로 우리나라를 향해 강력한 대응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북한이 삐라 살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배경에는 민심 동요로 인한 지지기반 붕괴 우려가 자리하고 있다. 삐라에는 강력한 선동정치를 통한 우상화·신격화를 체제 기반으로 삼는 북한 내에서 김정은 체제를 송두리째 흔들 만한 내용이 다수 실려 있기 때문이다. 북한에 있어 삐라는 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강력한 무기인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북한 역시 우리나라를 상대로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들만한 여론공작을 끊임없이 자행해왔다. 과거 삐라와 동일한 방식으로 이뤄지던 여론공작 행위는 최근엔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지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 SNS 등을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여론을 몰아가는 행위가 자행되고 있다.
“얼굴 없는 중국인들이 대한민국 여론을 좌지우지한다”
올해 2월 26일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차이나 게이트’라는 제목의 글이 대한민국 사회를 뜨겁게 달궜다. 자신을 조선족이라고 소개한 작성자는 한국에 중국 공산당에서 직접 지휘하는 한족 유학생과 조선족의 조직적인 대규모 여론 조작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해당 글의 작성자에 따르면 중국 발(發) 여론조작 세력이 온라인을 중심으로 성별·지역·세대 갈등을 조장하며 대선과 총선에 대한 여론전까지 좌지우지한다.
해당 게시글이 대중의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우리나라 국민들 사이에선 직접 진위여부를 확인하려는 움직임까지 생겨났다. 무작위로 혹은 현 정부를 지지하는 목소리를 내는 SNS 이용자들에게 반(反)중국 성향의 사이트 링크를 보냈고 링크를 ‘실수’로 열람한 사람들 중 일부가 “나는 개인이오(나는 공산주의를 반대하지 않는 평범한 중국인을 의미)”라는 말과 함께 자취를 감추는 등의 정황이 나타나기도 했다.
자신을 ‘전(前) 조선족’이라고 밝힌 한 네티즌은 ‘난 개인이오’라는 말에 대해 일종의 ‘자기보신’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조선족과 중국인은 반중성향 사이트에 접속했던 기록이 남으면 공안에 의해 조사가 진행된다. 그리고 조사결과 개인이 반중성향 사이트에 접속했을 때는 며칠 정도의 조사기간을 지나고 풀려나는 경우가 많지만 집단적 행동임이 의심되면 신변을 위협받을 수도 있다.
이 네티즌은 게시글에서 “자신들이 당국의 지령을 받고 댓글 작업 중이고 작업 과정에서 실수를 해 그것이 밝혀진다면 당국의 이미지를 손실시키는 중범죄가 된다. 그렇기에 자신은 당국과 관련 없는 ‘개인’이라고 밝히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논란은 끝내 사실여부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채 의혹으로만 남게 됐다. 해당 의혹을 제기한 네티즌들이 공론화를 위해 노력했지만 정확한 물증이 없어 수사기관이 직접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친북정권 옹호, 상대세력 비방 등 북한 여론공작 세력 놀이터 된 대한민국
‘차이나 게이트’보다 앞선 지난해 9월 26일 영국 옥스퍼드 대학이 발간한 ‘세계 허위 정보 질서: 2019년 조직적 소셜미디어 조작 목록’에 따르면 중국의 ‘사이버 전쟁’을 위한 상설조직이 200만명 규모에 달한다. 중국은 그동안 웨이보 등 자국 내 SNS에 초점을 맞춰 여론 조작 활동을 벌여왔지만, 최근 해외 소셜 네트워크에도 눈을 돌려 지역적 패권과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해당 보고서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바로 북한이다. 보고서는 북한 역시 SNS 여론조작을 통해 다른 나라의 선거에 부정개입한 나라들 중 하나로 분류했다. 북한은 주로 정권을 옹호하고 상대방에 대한 비방과 허위 정보 확산에도 개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저역량 국가’ 중 세 번째로 높은 순위를 기록했고 약 200명 규모의 상설부대가 있는 것으로 추산됐다. 또한 3개 이상의 국가기관이 SNS 여론 조작에 개입하고 있으며 자동 전파 프로그램을 이용하지 않고 직접 사용자가 개입하거나 해킹한 계정을 통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은 여론을 쥐고 흔드는 것뿐만 아니라 해킹 등 직접적인 피해를 입히는 방식을 취하기도 한다. 올해 2월 16일에는 북한의 해커 조직이 지난해 하반기 태영호 의원(전 영국 주재 북한공사)의 스마트폰을 해킹한 것으로 드러났다. 해킹으로 인해 태 의원의 저장된 전화번호·통화내용·문자메시지 등의 정보를 탈취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내용은 국내 언론사 통일·안보담당 기자의 스마트폰 해킹 사건을 추적하면서 밝혀졌는데 이미 해킹을 당한 대상이 비단 태 의원만은 아닐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국 사이버보안 전문회사 ‘이스트시큐리티’는 올해 3월 30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북한 추정 해킹조직인 ‘금성121’이 한국 내 사이버 공간을 거점 삼아 주로 외교·안보분야 종사자나 대북관련 단체장 또는 탈북민을 겨냥한 공격을 가속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해킹 수법으로 ‘스피어 피싱’(Spear-phishing)을 지목했다. 스피어 피싱은 불특정 다수가 아닌 특정인이나 기관을 겨냥하는 수법으로 주로 이메일이나 SNS를 통해 첨부한 링크를 클릭하면 해당 PC에 해킹 프로그램을 심는 수법을 뜻한다. 해커들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대상의 PC에 저장된 정보를 빼낼 수 있다.
이스트시큐리티에 따르면 이와 비슷한 수법으로 북한의 해커가 SNS ‘페이스북’에 사칭 계정을 만들고 대북 단체와 탈북민에게 사이버 공격을 감행하기도 했다. ‘꿈의 천사’라는 이름으로 현재 활동 중인 해당 계정은 호주 시드니에서 ‘북한 개혁교’에서 목사로 근무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하며 한국의 국회의원 사진과 캐리커처 등을 무단으로 도용했다. 해커로 추정되는 계정 사용자는 탈북민·대북 관련 단체 등에게 접촉해 북한 이탈주민 후원 모금 서비스로 위장한 사이트로 현혹시키고 해킹 프로그램을 유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수의 전문가는 북한·중국 등의 사이버 여론조작 행위가 이미 기정사실화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만큼 관련 법안 마련을 통해 제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국내 공공기관에 들어오는 사이버 공격만 1초에 18건, 하루에 145만건으로 추산되고 있다”며 “민간업체에 시도되는 공격은 추산조차 되지 않아 언제 더 심각한 사태가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이다”고 우려했다.
이어 “우리나라가 IT강국으로서 아무리 탁월한 방어체계를 구축해놨다고 하더라도 전부 막지 못하고 사고가 터지는 것이 당연하다”며 “중국이나 북한의 사이버 공격에 대한 대응체계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사이버테러 방지법’ 등 관련 법안 마련이 급선무다”고 주장했다.
익명을 요구한 IT업계 관계자는 “해킹 등 사이버공격은 공격하는 입장보다 방어하는 입장에 훨씬 더 큰 어려움이 따른다”며 “해킹 주체에 대한 추가적인 수사·처벌과 같은 국가적 대응이 필요한데 북한이나 중국 등 의심국가와 현 정부와의 관계를 생각한다면 그것마저 여의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엄도현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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