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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의 굉음을 묵...'))
40년 동안 내 집 앞에서 하루에도 수차례 뜨고 내리는 군(軍)헬기의 소음을 묵묵히 견디며 살아 온 마을이 있다. 마을 주민들은 ‘나라가 하는 일’이니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참아왔다. 헬기 소음에 견디다 못해 지자체에 항의할 때면 여지없이 ‘대체부지를 구하면 헬기부대를 옮기겠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젊은 군인들 고생하는 것이 안쓰러워 결국 발걸음을 돌렸다.
이곳에서 국회의원·지자체장에 출마한 대다수 정치인들은 주민들의 소음·분진피해와 제한된 재산권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군 헬기부대 이전’을 공약을 내세워 표를 얻었지만 지금까지 진척된 것은 하나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해당 부대에 추가로 헬기가 배치된다는 소식이었다. 참다못한 주민들은 결국 강경 투쟁에 돌입했다. 지자체는 부랴부랴 항공대 이전 대체 부지를 찾겠다고 나섰다.
국가안보 때문에 수십년 소음피해 참았는데…부대 이전 대신 헬기 추가배치 날벼락
강원 홍천군 홍천읍 태학리에 위치한 ‘204항공대대’는 인근 진리에서 태학리로 옮겨온 후 약 40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항공대 조성 당시 홍천읍 외곽이던 태학리 일대는 현재 주봉초교·홍천농고·홍천여중 등 6개 학교와 홍천오드카운티아파트 등 대규모 고층 주택단지들이 들어서 있다. 인구는 3만5000명으로 경찰서·선거관리위원회·국민건강보험공단 등 행정타운이 자리 잡으면서 홍천 동북부 지역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기동헬기 수리온 6대를 보유한 ‘204항공대대’는 바로 홍천읍 한복판 11만㎡(3만3000평) 부지에 자리잡고 있다. 수리온은 앞으로 12대가 추가 배치돼 총 18대를 갖추게 된다. 새 격납고들도 이미 지어 놓은 상태다.
홍천읍 태학리 주민들에 따르면 수리온 헬기는 오전 9시부터 이륙을 시작한다. 2~3대의 헬기가 동시에 이륙해 15~25분간 공중에 머물러 있을 때 소음이 가장 심각하다. 지난해 말 구형인 휴이 헬리콥터를 수리온 신형헬기로 교체한 후 소음은 더 심해진 상황이다. 헬기소음은 83웨클(WECPNL)로 알려져 있다. 바로 옆 사람과도 대화가 불가능한 수준이다. 전문가에 따르면 집중력이 저하될 정도의 수준이다.
항공대대 주변에는 주택·상점들, 항공대 바로 앞 4차선 도로를 마주한 주택·상점들이 수백 곳에 달한다. 헬기 굉음이 일상화 된 항공대 소속 군인들과 똑같은 환경에서 마을 주민들이 생활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항공대에서 홍천농고까지 직선거리는 170m, 주봉초교까지는 400m에 불과하다. 600세대 규모의 홍천오드카운티아파트까지는 1km, 800세대 규모의 홍천갈마곡주공1단지 아파트는 1.8km 남짓 거리다.
범위를 넓혀 항공대대를 중심으로 반경 3km 이내에는 초·중·고 학교 7곳, 400세대 이상 아파트 단지 4곳, 홍천군민스포츠센터 등 주민 편의시설들이 들어서 있다. 소규모 아파트단지, 음식점·커피점 등 각종 상점, 요양시설은 물론 일반 주택까지 더하면 그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태학리 주민 이애자(여·48) 씨는 “타지 사람들이 오면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사느냐’고 말할 정도로 주민들이 겪는 헬기 소음과 분진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며 “학교에서는 헬기 굉음으로 인해 수업을 중단할 정도다”고 말했다. 이어 “담벼락이 무너지거나 지붕에 금이 간 적도 있다”며 “앞으로 수리온이 더 들어온다고 하는데 헬기 소음과 진동은 지금까지 겪었던 것보다 더 심해질 것이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주민 임경애(여·가명·65) 씨는 “헬기부대가 생길 때부터 소음으로 인해 고충이 심했지만 나라에서 하는 일이고 안보가 중요하다는 생각에 참고 살아왔다”며 “그동안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있었고 남자들도 바쁘다 보니 항공대 이전 문제에 대해 나서는 사람이 적었다”고 피력했다.
“고작 몇 만원 받고 소음피해 참으라니…군부대를 못 옮기면 마을을 옮겨달라”
40년을 참아 온 지역민들이 항공대 소음 문제와 관련 본격적인 집단행동에 나선 때는 지난 6월 초 무렵이다. 국방부는 지난 2010년 헬기부대 5곳에 대해 부지 이전을 명령했지만 홍천읍 태학리는 제외됐다. 2016년에도 항공대대 이전 이야기가 나돌았지만 실행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그동안 항공대 이전을 내심 기대해 왔던 지역 여론은 군 당국이 오히려 헬기 추가도입과 부대규모 확충에 나서자 들썩이기 시작했다. 특히 ‘군용비행장·군사격장 소음방지 및 피해보상에 관한 법률’(군소음법) 시행시기(올해 11월)를 앞두고 군 당국이 개최한 주민설명회에서 ‘피해지역에 일정금액을 보상하는 대신 오히려 민간 시설물 설치가 제한된다’ 사실이 확인되면서 지역민들의 반발강도는 고점을 치닫고 있다.
군 당국에 따르면 군소음법 시행에 따라 올해 하반기부터 소음영향도 조사를 실시한 후 2021년 하반기 소음 측정도별로 △95웨클 이상 1종 구역 △90~95웨클 2종 구역 △80~90웨클 3종 구역 등으로 소음대책 지역을 확정한다. 2022년 상반기 중 각 구역별로 △6만원 △4만5000원 △3만원 등의 보상금을 각각 지급한다.
다만 소음대책지역으로 이주한지 10년~30년인 경우 보상금의 30%를, 이주한지 10년 이내인 경우 50%를 감액 지급한다. 반면 1종 구역은 신축·개축·증축이 제한되고 2종 구역은 증축·개축만 가능하다. 3종 구역은 방음시설을 갖춘 경우에 한해 건물 신축이 가능하다. 방음시설 설치는 자비부담이다.
변진록 홍천항공대이전추진위원회 위원장은 “홍천읍 지역 주민들의 절반 이상은 10년 내에 이주한 사람들인데 3종 구역의 50%인 1만5000원을 받고 매일같이 굉음을 견디며 살라는 것이다”며 “이는 주민들에게 족쇄를 채워놓고 군 마음대로 헬기를 띠우겠다는 것이다”고 비판했다.
이어 “태학리 주민들은 헬기 소음으로 인해 40동안 정신적 고통을 겪어왔고 고도제한 등으로 인해 재산권 행사도 못해 왔다”며 “학생들은 소음과 진동 때문에 수업을 침해받고 있는데 이 같은 상황을 군 당국은 계속 방치하겠다는 것 아니냐”고 토로했다.
변 위원장은 “주민들 요구는 보상은 필요 없으니 항공대대를 무조건 이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며 “항공대 이전이 어렵다면 우리 마을을 다른 곳으로 이전해 삶의 터전을 마련해 줄 것을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홍천군은 최근 관·민이 참여하는 ‘항공대이전추진위원회’를 구성키로 하고 내달 항공대 대체부지 마련을 위한 용역을 실시하기로 했다. 지금의 항공대가 이전할 만한 부지를 찾아 군 당국과 협의를 벌이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군 당국이 전략적 지형 등의 이유로 대체부지로의 이전을 거부할 경우 마땅한 해결방안이 없다는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최이경 홍천군의회 의원은 “주민들의 요구는 항공대대를 이전해 달라는 것이다”며 “주민들은 군소음법이 주민을 위해서 나온 법 같지만 사실은 규제법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홍천읍은 학교시설과 주택단지, 행정타운이 들어서는 등 발전되고 있지만 도심지 한복판에 항공대대가 있어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진강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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