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를 향한 농민들의 성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유례없는 최장기간 장마로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농민들은 벼농사 작황 부진은 전형적인 자연 재해임을 인지하고 향후 안정적인 쌀수급 등을 위해 벼농가의 일시적 위기 해소를 위한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역대 최장기간 장마에 농사 망친 농민들, 정부 외면에 결국 길거리로
전국농민회총연맹과 전국쌀생산자협회는 지난달 19일 쌀 재해지원금 지급 및 정부 비축미 방출 저지를 위한 ‘전국농민결의문’을 발표했다. 이날 농민 단체들이 발표한 결의문에는 △이상기후 농업 재해 발생 시 농민에게 재해지원금 지급 △수확기 등 12월까지 정부 비축미 시장 방출 반대 △쌀 생산량 거짓 통계 발표한 통계청 특별감사 실시 △근본적인 농정 개혁 위한 농민기본법 제정 등이 담겼다.
농민단체는 더불어민주당 중앙당 당사 주변에서 집회를 열고 자연 재해로 인한 수확량 감소로 생계가 위협받고 있는 농민들에게 쌀 재해지원금을 지급할 것을 촉구했다. 이어 수확기를 코앞에 두고 정부가 비축미를 방출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데 대해서도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농업 관련 예산을 국가 예산 전체 대비 5% 수준으로 확대해달라고도 요구했다.
농민단체는 “정부 발표에 따르면 올해 쌀 생산량이 지난해 대비 약 24만톤이 줄어 5600억원의 소득 손실이 발생했다고 하지만 실제 쌀 농사를 짓는 농민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쌀 재해 손실액만 2조7000억원으로 추정된다”며 “그런데도 장관이나 정부 관료는 쌀 가격이 올라 쌀 소득 손실이 보존되고 있다는 발언만 내뱉고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어 “정부는 쌀 가격을 핑계로 비축미를 시장에 방출한다느니 쌀 수입을 거론하고 있어 농민들의 분노를 한층 키우고 있다”며 “식량 자급률을 더욱 높이고 김치 자급률과 공공 수매제를 도입해 식량 주권을 실현하는 것이 우리 농업을 살려내고 국민의 건강과 먹거리를 지키는 길이라는 것을 문재인정부는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민단체의 주장대로 전국 벼 농가의 쌀 생산량은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12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쌀 생산량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쌀 생산량은 350만7000톤으로 지난해 374만4000톤보다 6.4%(23만7000톤)나 감소했다. 이는 1968년 320만톤 이후 52년 만에 가장 적은 양으로 통일벼 보급 등이 이뤄지기 전 수준과 맞먹는다.
올해 쌀 농사 작황이 크게 부진한 데에는 유난스럽게도 잦았던 비와 태풍 때문이다. 중부지방을 기준으로 올해 장마는 54일 간 이어지며 1973년 이후 최장 기간을 기록했다. 한반도에 연평균 1.1개 상륙하는 태풍도 올해는 3개나 상륙해 쌀 농사에 악영향을 미쳤다. 통계청 관계자는 “올 여름 역대 최장의 장마와 태풍 바비 등의 영향으로 강수량이 증가하면서 쌀 낟알이 제대로 익지 못한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정부 쌀 시장 인위적 개입에 “농사 망치고 제 값 못 받는 농민생계도 챙겨라” 원성
농민단체는 정부가 작황 부진으로 쌀값이 오르자 물가 안정을 이유로 비축미 방출을 결정한 데 대해서도 불만을 토로했다. 물가 안정 취지는 공감하지만 그 과정에서 농민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해졌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인위적으로 쌀 가격을 내리기 전에 농민들에 대한 지원책도 함께 내놨어야 했다는 주장이다.
올해 작황 부진으로 쌀 소매가는 예년에 비해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쌀 평균 소매 가격은 20kg 기준 5만8906원으로 지난해 같은 달 5만1701원에 비해 13.9%(7205원) 올랐다. 올해 5만1000원대를 유지해 온 쌀 소매가는 지난달 5만7841원으로 껑충 뛰어오르더니 이달엔 5만9000원선에 육박하게 됐다.
쌀 가격이 급격히 오르자 정부는 소비자 물가 안정을 근거로 들어 정부 비축미를 방출하겠다고 발표했다. 농식품부는 올해 쌀 생산량 감소를 고려하면 시장원리 상 가격 상승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이해한다면서도 비축미 공급을 통해 소비자 물가를 안정시킨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정부는 올 9월 말 기준으로 총 95만톤의 비축미를 보유하고 있고 올해 생산한 쌀을 공공 비축미로 추가 매입 중이다”며 “총 37만톤 가량을 시장에 풀어 가공용 쌀을 포함한 수급 상 부족한 물량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농민들은 정부의 발표에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라고 맞서고 있다. 농민들의 생계를 위해선 쌀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지만 정부가 인위적으로 개입한 탓에 그 마저도 어렵게 됐다는 지적이다. 이에 소비자 물가를 고려하는 과정에서 농민들의 생계 걱정도 수반됐어야 했다는 아쉬움의 목소리가 나온다.
농민단체는 “올해는 굉장한 흉년이 들어 재해라고 봐야 할 정도로 좋지 않은 상황이다”며 “벼농사 흉작에 쌀 가격이 오르는 건 당연하지만 농가소득이 이미 현저히 낮은 수준인데 소비자 물가만 잡겠다고 비축미를 푸는 것은 농민을 두 번 죽이는 일이다”고 성토했다.
이어 “올해 재난 수준의 농작물 생산량 감소로 소득이 줄어 생계 유지조차 어려운 농민들이 속출하고 있다”며 “소득이 감소해 생계가 곤란해질 정도라면 지원금으로 소득을 보전해주는 것이 어떤 대책보다도 가장 좋은 대책이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이상기후에 흉년까지 들어 올해 농민들은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할 지 걱정인데 정부의 추경과 재해지원금, 한국판 뉴딜 등에서 농업은 배제됐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농업 관련 예산은 국가 전체 예산의 3%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추락한 만큼 국가 정책에서 농업이 소외당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농식품신유통연구원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온 국민들이 힘들지만 농민들이 가장 힘들 것이다”며 “수입 농산물에 의존하려고 하는 현 정부는 국민의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민들의 생계 유지를 위해 특단의 조치를 내놔야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타작물 재배 지원을 통해 쌀 생산량을 해마다 줄여온 정부가 쌀 가격이 갑작스레 오르자 비축미를 방출해 물가를 안정시키려 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오창영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