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 부동산 정책 실패로 고통을 호소하는 여론이 고조되는 가운데 그동안 선망의 직업으로 분류됐던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안정적인 생활을 꿈꾸며 평생 열심히 노력한 이들조차 부동산 문제로 고통 받는 현실에 땀의 가치가 무색해졌다는 안타까운 반응이 나온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현재 분위기대로라면 앞으로는 직업이나 소득수준 등이 아닌 오로지 부동산이 사회적 위치를 결정짓는 잣대가 될 수도 있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서 집살까 몇 달 고민한 사이 껑충 뛴 집값…결국 떠밀리듯 외곽 지역으로
경기도의 한 신도시에서 소아청소년과를 운영하고 있는 의사 강준현 씨(가명·36)는 요즘 고민이 많다. 천정부지로 올라버린 집 값 때문이다. 주변 지인들은 강 씨를 고소득자로 생각해 금전적으로 큰 걱정이 없을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강 씨를 비롯한 주변 전문직 종사자들 중 자가에 거주하는 이는 거의 없다시피하다. 다들 전·월세를 전전하다 올라버린 전세 값에 도망치듯 외곽으로 이사 나가는 사람이 대다수다. 강 씨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은 현 정부 출범 전에 빚을 내서라도 집을 샀어야 했다며 후회하지만 이미 오를데로 올라버린 부동산 가격에 매매는 엄두도 못내고 있다.
강 씨가 서울 집을 매수할까 고민했던 시점은 불과 1년 여 전이다. 부동산에 문외한이던 그는 연일 쏟아지는 매매가 상승 기사에 덜컥 겁이 났다고 한다. 융통할 수 있는 자금과 신용대출, 주택담보대출까지 끌어 모아 매매할 수 있는 집을 알아봤다.
그러나 강 씨는 이미 신용대출을 받아 병원을 개원해 추가적인 신용대출을 받을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개원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신용 대출을 받기 위해서는 지난해의 종합소득세가 나와야 가능했다.
마음이 조급해진 강 씨는 은행의 재량으로 기존 신용대출보다 높은 이율을 내고 대출을 받으려 했다. 그러나 3월 코로나 사태로 인해 집값 조정기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머뭇거렸다. 강씨는 ‘높은 이자를 감당하기 힘들기도 하고 앞으로 곧 조정기가 올 거야’라는 생각에 결국 매수를 포기했다.
잠깐은 강 씨의 생각이 예상이 맞는 듯 했다. 코로나의 확산으로 이동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부동산 방문객이 줄어 거래건수도 줄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호가는 높지만 수요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강 씨는 곧 집값이 떨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여름이 되니 시장의 판도가 바뀌었다. 다시 상승세가 시작됐다. 강 씨는 부랴부랴 대출을 받아 집을 사려고 시도했지만 코로나로 인해 종합소득세가 늦게 나온다는 답변을 들었다. 한 달 사이 1억씩 호가가 오르고 실제 거래로도 이어졌다. 강 씨가 몇 달 전 봤던 아파트 역시 이미 1억 이상 올라있었다.
8월이 되자 종합소득세가 나왔다. 소득세는 어마어마하게 많았고 코로나로 인해 강 씨의 병원은 잘 되지 않았다. 적자가 지속됐다. 소득세를 다 내고 나니 보고 있던 아파트는 신용대출과 주택담보대출을 받아도 불가능할 정도로 시세가 올라 있었다. 전세를 껴서 매매하는 ‘갭투자’라도 하려고 했지만 아파트 값이 오르면서 전세가와 매매가의 차이가 벌어져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가을이 되자 임대차 3법으로 전세 매물이 부족해지면서 전셋값이 올라가 매매가와 갭이 적은 매물이 속속들이 등장했다. 그러나 강 씨가 매매를 결심한 순간 주거래 은행은 물론 시중의 거의 모든 은행에서 신용 대출이 막혔다. 10월 말 가계대출 급증세에 정부와 감독당국이 은행들에 대출 총량을 엄격하게 제한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대출을 받더라도 주택매수를 금지시키는 확약서를 써야했다.
설상가상으로 현재 살고 있는 전셋집 집주인이 실거주 의사를 밝혀 강 씨는 살던 곳에서 쫓겨날 처지에 놓였다. 현재 살고 있는 전셋집 인근 지역에서 새로운 집을 구하려고 해도 이미 시세가 수억원씩 오르거나 매물 자체도 거의 없었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강 씨는 인천의 구축 아파트 매입을 결정했다. 강 씨의 직장과는 승용차로 1시간 이상 걸리지만 신용대출이 불가능해진 강 씨의 여유자금으로는 경기도 신도시나 서울에서 매입할 수 있는 아파트는 없다시피 했다. 강 씨가 매입을 고민했던 강동구 암사동 선사현대 아파트 2019년 12월 24평형대가 6억 5000만원이었으나 현재는 10억6500만원으로 1년 3개월 사이 무려 4억 이상이 올랐다.
강 씨는 “이제 의사 등 전문직이라는 직업의 근로소득으로도 집값이 오르는 상황을 따라잡을 수 없는 상황이다”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문직이면 여유롭게 사는 줄 알고 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경기도에 전셋집을 마련하기도 힘든 것이 현실이다”고 토로했다.
직장인의 꿈 ‘억대 연봉’은 이제 옛말…집값 오르는 속도 못 따라가
반대로 한발 앞서 아파트를 매입해 상황이 바뀐 사람도 있다. 경기도 신도시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 최성일 씨(가명·33)는 지난해 초 무리해서 아파트를 매매했다. 집안에 있는 돼지저금통을 깨고 여행가서 남은 돈까지 환전하는 이른바 ‘영끌’을 시도해 어렵사리 매입했다. 신용대출에 주택담보대출까지 한 번에 받기엔 무리가 있어 나중에 입주할 요량으로 전세를 끼고 매입하는 방식을 택했다.
마음이 더 가는 곳도 있었지만 당장 자고 일어나면 오를 거라는 불안감에 지체할 시간이 없어 과감히 포기했다. 아파트를 매매한 후 코로나가 확산되면서 ‘이제는 조정기다’ ‘거래 절벽’이라는 기사를 보면서 ‘내가 꼭지에 샀구나’라는 생각에 밤잠을 설친 날도 있었지만 결과론 적으로 최 씨의 선택은 옳았다.
최 씨가 산 월곡역 인근의 종암sk아파트 가격은 1년 사이 2억5000만원 가량 상승했다. 부동산을 매매한 뒤 취득세를 분할로 납부하며 아직도 허리띠를 졸라매고 생활하고 있지만 아파트를 매매하지 않은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안심하고 있다.
최 씨는 “돈의 가치가 점점 떨어져가고 있는 상황에서 월급을 모아서 부자가 되는 일은 이제 옛말이 됐다”며 “높은 연봉을 받는다고 해도 나가는 세금이 많고 집값은 1년에 몇 억씩은 쉽게 오르니 근로소득은 아무 의미가 없어졌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전문가들은 정부 부동산 정책 실패로 근로소득이나 직업 등이 아닌 집의 유무에 따라 사회적 신분이 달라지는 현재 상황은 정상적인 사회와는 거리가 멀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 이러한 현상이 계속될 경우 점차 땀의 가치가 사라지고 일확천금을 노린 한탕주의 인식이 만연해져 결국 나라 전체가 병들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소득 양극화보다 더 무서운 게 자산 양극화다. ‘하우스 디바이드’라고 해서 집이 있고 없고 따라서 사회적 신분이 달라지는 그런 모습은 앞으로도 더 심화될 전망이다”고 설명했다. 김준환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앞으로 10년 간은 이런 양상이 지속 될 것이다”며 “누구나 살고 싶어 하는 강남이나 서울 도심은 계속해서 수요가 몰려 더욱 살기 힘들어질 것이다”고 말했다.
[윤수현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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