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민주당) 이재명, 국민의힘 윤석열 등 여·야 대선후보가 확정되면서 유권자들의 시선은 그들의 공약에 쏠리고 있다. 현 정부의 정책 실패로 국민의 삶을 어렵게 만드는 각종 문제들이 산적해 있어서다. 민생 현안을 해결할 공약이 유권자의 판단은 결정짓는 중요한 잣대가 되고 있는 것이다.
가장 시선이 쏠리는 분야는 부동산이다. 정부의 정책 실패로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국민의 내 집 마련이 사실상 불가능한 수준까지 도달한 상황에서 집값문제 해결 공약에 여론의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아직까진 국민이 공감을 살 만한 이렇다 할 공약이 나오지 않은 탓에 부동산 공약에 대한 관심은 더욱 고조되는 모습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가 집단을 중심으로 대선후보들에게 힌트가 될 만한 조언이 등장해 이목을 끌고 있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한강의 기적’을 통해 한국경제 부흥을 이끌었던 과거 정부의 정책에 해법이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시중의 민간자금을 끌어 들여 수익성을 보장하고 주택공급의 숨통을 트이게 한 고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의 정책이 대표적인 사례로 지목됐다.
단군 이래 최대 토목사업 통해 지붕 뚫린 집값 잡은 ‘집통령’ 노태우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한 여러 입법조치나 종합대책을 강구했지만 여전히 품귀현상을 나타내고 가격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국민께 많은 고통과 부담을 드린 데 대해 대단히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1979년 고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연두 기자회견에서 고개까지 숙이며 사과했을 정도로 집값은 과거 정부에서도 골칫거리였다. 박 전 대통령은 부동산 투자를 ‘비생산적 투기’로 규정하고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다짐하며 금융·세제를 넘나드는 다양한 투기 억제대책을 동원했다. 그러나 보릿고개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대규모 주택공급 재원을 마련해 가시적 성과를 내기는 어려웠다.
불안했던 집값이 안정되기 시작한 시기는 노태우정부 시절이었다. 고 노 전 대통령 취임 초기만 해도 우리나라는 3저호황(저달러·저금리·저유가) 영향으로 시중 유동자금이 크게 늘면서 부동산 시장이 과열돼 있었다. 1988년 27.5%, 1989년 32% 등 지가 상승률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상황이었다. 주택가격 상승률 역시 △1988년 13.2% △1989년 14.6% △1990년 21% 등이었다. 대한주택공사의 1988년 하반기~1989년 상반기 주택가격 변동상황 자료에 따르면 서울 강남지역 아파트값은 6개월 동안 30~50% 폭등했다.
고 노 전 대통령은 민간에 풀린 막대한 자본을 이용한 ‘단군 이래 최대 토목공사’로 일컬어진 1기 신도시 사업을 추진했다. 스스로를 ‘집통령’이라 칭한 그는 ‘주택문제의 해결을 위하여’라는 제목의 라디오 연설문에서 “저도 신혼 때부터 30대 중반까지 계속 셋방살이를 했기에 집 없는 설움을 잘 알고 있다. 설움 중에서도 가장 큰 설움은 집 없는 설움이다”며 신도시 계획을 발표했다.
민간 자본을 이용한 대규모 주택공급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1991년 9월 분당에서 첫 입주가 시작되고 1992년 △평촌(3월) △산본(4월) △일산(8월) △중동(12월) 등에서 주택이 빠르게 공급되자 집값은 안정세로 돌아섰다. 주택 보급률은 1990년 63%에서 1997년 82%로 급증했다.
1993년 아파트가 밀집한 한국 수도권을 보고 놀라 연구보고서를 낸 프랑스의 사회학자 발레리 줄레조는 “서울~부산을 잇는 경부고속도로에서 바라본 분당의 야경은 농촌의 벌판 위에 창마다 불을 밝힌 건물들이 줄지어 우뚝 솟아 있는 모습으로 논 한가운데에서 빛나는 숲처럼 장관을 이룬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無수익 구조 공공주택엔 시중자금 유입 어려워…혈세 외엔 답 없는 국민 고혈정책”
노태우정부가 직접 효과를 입증해 보인 ‘공급이 곧 집값 안정’이라는 공식은 이후 출범한 정부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정권 색채에 따라 방법이 다른 탓에 효과는 천차만별이었다. 결정적인 차이점은 사업 주체였다. 국가가 지원을 하고 민간이 주도하는 방식과 국가가 직접 주도하는 방식 등으로 구분됐는데 결과물도 판이하게 달랐다. 전자는 민간아파트를, 후자는 공공아파트를 각각 탄생시켰다.
차기 대선을 앞두고 각 정당이 유력 대선주자들의 부동산 공약 역시 정치적 색채에 따라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민간 재개발·재건축 규제완화를 통한 주택공급 확대를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일례로 ‘역세권 첫집’은 역세권 인근에 위치한 민간 재건축 아파트 단지의 용적률을 300%에서 500%로 높이는 대신 증가한 용적률의 절반을 기부채납 받아 공공분양 형태로 공급하는 방식으로 구상됐다. 청년·신혼부부와 무주택자를 대상으로 시세 50~70% 수준 분양가에 총 20만 가구를 공급하는 것이 목표다.
반대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공공주택 개념인 ‘기본주택’을 대표 부동산 공약으로 내걸었다. 임기 내 총 250만 가구 공급을 약속하며 그 중 최소 100만 가구를 ‘기본주택’으로 배정한다고 공약했다. 기본주택은 넓은 의미에서 공공임대주택의 한 유형으로 무주택자가 저렴한 임대료로 30년 이상 거주할 수 있도록 하는 도심 지역의 공공주택이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국민 최대 현안인 집값폭등을 잠재우기 위해선 과거의 사례를 거울삼아 동일한 방식의 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내년 국가채무 1000조원 시대를 앞둔 시점에서 국가 주도의 정책을 펼치기엔 부담이 크다며 노태우정부 때와 동일하게 민간 주도의 개발 방식을 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서진형 경인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가주도이 공공주택은 수익이 나지 않는 구조라 시중의 민간 자본을 유치하기엔 한계가 명확하다”며 “질 좋은 공공임대를 44조원에 짓는 것 자체가 무리일 뿐 아니라 정부 예산으로도 모두 감당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국가예산이 부족하면 민간 자금이라도 끌어들여야 공공주택 건설이 가능한데 공공주택 특성을 감안할 때 이는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고준석 동국대학교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노태우식 부동산 정책 없이는 차기 정부에서도 ‘미친집값’은 이어질 것이다”며 “단기·중장기적으로 국민 정서에 부합하는 양질의 주택 공급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으면 집값은 우상향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임병철 부동산R114 리서치팀장도 “민간 주택이 공급 확대가 이뤄진다면 집값이 자연스럽게 하락세로 전환할 것이다”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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