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blockchain) 기술의 등장과 함께 암호화폐(이하 가상자산)만큼이나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분야는 바로 ‘조각투자(fractional investing)’다. 무엇보다 기존에 없던 신시장을 개척하는 새로운 투자 방식이기 때문이다.
암호화폐의 경우는 아직까지 ‘실체 없는 자산’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적지 않지만, 조각투자는 음악·미술품·부동산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돼 활발한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국내 기업 지비시(GBC)코리아도 그중 하나다. 지난해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을 둔 ‘기업 인수합병(M&A) 플랫폼’ 지맵(GMAP)을 개발한 데 이어 수차례 모의투자를 마쳤다. 한국은 물론 지구촌 어디에도 없는 세계 최초의 시도이자 도전이다.
경영 일선에서 한 걸음 물러난 이종성 회장과 장명현 부사장의 의기투합으로 새로운 사업이 싹을 틔우게 된다. 가까운 시일 안에 더 많은 기업이 오너가(家)의 2~3세 대신 전문 경영인 체제를 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을 토대로 새로운 비즈니스를 고민한 끝에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발굴했다고 한다.
장명현 지비시(GBC)코리아 부사장은 최근 기자와 만나 “이종성 회장과 제가 2018년 4월에 GBC코리아를 설립했다”며 “당시 다양한 암호화폐가 출현하고 있었고 이것을 활용해 자산 운용이나 자산 관리 등 새로운 사업으로 접목할 길을 찾던 중 M&A·자산운용·거래소 플랫폼 등 세 가지를 운영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설계를 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 회장과 장 부사장은 독특하게도 여러 인문학적 고민을 사업에 녹여냈다. M&A처럼 사실상 일부가 독식하는 시장에도 ‘절대다수가 의사 결정(투자)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참여 민주주의(participatory democracy) 개념을 고집스럽게 반영했다. 회사명도 세계 시장을 염두에 두고 지었다. 해외 진출이 아닌 세계 각국의 자금을 한국으로 유치하겠다는 거대한 포부도 세웠다.
“상장사 M&A는 통상적으로 고급 정보나 전문적 지식이 있거나 자금이 많은 사람과 기업이 가능한 시장인데, 우린 젊은 사람들 위주로 적은 자금을 가지고도 참여할 수 있는 무대(플랫폼)를 한번 만들어 보자는 게 처음 설계의 목적이었어요. 전 세계가 참여하려면 명목화폐(정부가 가치를 보증하는 화폐)로는 국가 간 거래라는 장애물이 있으니 가상자산으로 하자, 이렇게 된 거죠. 그래서 회사 캐치프레이즈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와 ‘분배의 경제 실현’이 됐지요.” 장 부사장의 확신에 찬 말이다.
GBC코리아와 함께하는 이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SK증권, 휴먼자산운용, 삼일·대주회계법인, 법무법인 강남·태평양 등 다채로운 국내 기업과 제휴 또는 자문 등으로 참여의 폭을 넓히고 있다. 여기에 양자역학과 천체 물리학의 세계적인 석학 미나스카파토스(Menas C. Kafatos) 박사를 고문으로 영입했다.
미래학자 토머스 프레이(Thomas Frey) 미국 다빈치연구소 소장은 2019년 12월 한국에서 열린 ‘블록체인 및 디지털 화폐의 미래 전망’ 콘퍼런스에서 이렇게 설파했다.
“지난해 기준 한국 M&A 거래량이 1515개에 이르며 규모가 조 단위에 이른다.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한 M&A 플랫폼을 통해 효율성이 높아지면 향후 5년 이내 거래량이 2배 이상 성장할 것이다. 앞으로 20년 동안 인류 역사상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변화가 나타날 것이다.”
암호화폐공개(ICO) 등 투자 유치가 어려운 상황이어서 직접 끌어 모은 자체 자금으로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경헌 대표이사는 기술 조직을 이끌어 지맵을 개발한 뒤 대표를 맡아 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이 대표는 새로운 사업에 발을 들이게 된 데 대해 “건국대학교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다가 (이종성 회장) 러브콜을 받아서 합류했어요. 아무래도 주요 타깃이 젊은층이고 개발자도 젊은 사람이 많다 보니 그들과 가깝게 소통하고 이끌 사람이 필요했고, 그래서 저에게 기회가 온 것 같아요”라고 설명했다.
블록체인 기술의 강점은 정보 보호와 비용 및 복잡성 저감 등으로 요약된다. 지맵은 이를 고스란히 실현했다. 여러 디지털 장부에 분산·저장된 조각투자 정보는 이론적으로 복제나 도용이 불가능하다. 또 투자자 및 특수목적법인(SPC)과 M&A 대상 기업 사이에 사실상 지맵 플랫폼만 존재해 비용·복잡성 문제를 동시에 잡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 세계에서 M&A에 참여할 수 있으면 우리나라 기업이 해외에 팔릴 수 있다고 오해하기도 하는데, 아니에요. 우리나라 자금 외에 어느 정도만 SPC를 통해 가상자산으로 참여를 받거든요. 기관 참여자가 이미 일정 퍼센티지를 차지하고 소액 투자자가 들어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나라 기업이 해외로 넘어가는 일은 없을 겁니다. 오히려 ‘국부 창출’을 할 거예요.”
블록체인 관련 특허 출원은 코로나19 이후 크게 늘어나는 추세지만 M&A와 관련 출원은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희귀하다. 하지만 GBC코리아는 관련 특허를 3종이나 보유하고 있다. 이 회사의 독보적인 경쟁력을 가장 알기 쉽게 설명해 주는 대목이다.
‘블록체인 기반 인수합병 서비스 제공 시스템 및 이의 동작 방법’은 오프라인 거래 과정을 스마트 컨트랙트상 데이타로 전환해 오프체인(off-chain)과 온체인(on-chain)의 하이브리드성 블록체인으로 위변조를 원천 차단하는 기술이다. ‘멀티 체인 레이어를 이용한 블록체인 기반 인수합병 제공 시스템 및 동작 방법’은 SPC의 정보처리에 관한 기술이며, ‘이종 가상화폐를 이용한 블록체인 기반 인수합병 서비스 제공 시스템 및 동작 방법’은 암호화폐와 스마트컨트랙트를 활용한 M&A 거래 서비스 제공에 대한 특허다.
“지맵은 프라이빗하게 진행되면서도 개인이 참여할 수 있는 장(場)이에요. 지난해 주식시장에서 일어난 이른바 ‘동학개미 혁명’과 같이 M&A 시장에서도 개인의 참여를 유도하고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지맵은 공공성을 갖는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어요. 추가로 특허협력조약(PCT) 25개국을 대상으로 특허 출원을 진행 중이에요.” 이 대표의 설명에는 거침이 없었다.
지맵에서 거래에는 GBC코리아가 발행하는 코인(UCX)이 사용된다. 원래 국내 거래소에 상장했다가 금융당국의 규제로 해당 거래소가 문을 닫는 바람에 최근 해외 거래소로 옮겼다. 최근에는 국제송금용 코인(XRP)으로 잘 알려진 리플(Ripple)과 손을 잡았다. 리플이 UCX를 활용한 M&A 플랫폼 지맵의 가능성을 높게 본 셈이다.
작년 말 리플과 GBC코리아는 옥스퍼드 메트리카(Oxford Metrica)와 함께 ‘한국 블록체인 기술 및 디지털 자산을 위한 정책 프레임워크’라는 정책 백서를 작년 말 발간했다. 이를 더욱 널리 알리기 위해 이달 27일에는 같은 이름의 정책 콘퍼런스를 개최한다.
“블록체인 기술과 디지털 자산의 등장은 세계 금융 지형을 바꾸고 있어요. 새로운 시장 개방·개발로 개인과 기업이 보다 접근성이 높고 투명하고 공정하고 효율적인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데, 우리는 규제에 가로막혀 나아가지 못하는 거죠. 금융당국이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당분간 길을 열어 주고 어떤 정책이 맞을지 관련 사업자 등과 함께 논의해 나갔으면 좋겠어요.”
이 대표의 새로운 도전이 어떤 가치를 창출해 내고 뜻밖의 성취를 일궈낼 수 있을지 궁금하다.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