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도 지나가고 있지만 건설현장은 여전히 폭염과의 전쟁으로 초긴장 상태다. 그 어느 때보다 무더웠던 올해 여름 날씨에 업계는 만반의 대비를 했지만 기록적인 폭염 탓에 건설현장 온열 질환자는 오히려 작년 대비 증가한 모양새다.
국토교통부, 고용노동부 등을 비롯한 정부 역시 팔을 걷어붙였다. 하지만 각종 온열질환 예방 가이드라인이 권고사항에 불과한데다, 특히 사각지대에 놓인 중소규모 현장에선 현실적으로 지켜지기 어렵다는 반응이 곳곳에서 나온다.
건설업계·정부, 휴식시간·휴게시설 확대 등 각종 대책 마련
건설업계에서는 현장 안팎으로 더위와의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현대건설, GS건설, 포스코건설 등 대형건설사들은 여름철 휴식시간을 좀 더 늘리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외부 기온이 33도를 넘어가면 시간당 10분가량 휴식시간을 추가하고, 그늘막이 없는 꼭대기에서 근무하는 콘크리트 타설작업자 등은 6~8월 사이에만 인력을 추가 충원해 일정 시간 교대로 휴식을 취하도록 했다.
롯데건설은 작업 중 휴식시간을 제공하거나 경우에 따라 작업을 중지·재개하고 있다. 건강 취약근로자는 수시로 혈압이나 체온을 측정하도록 하고, 쿨토시나 아이스 조끼, 제빙기, 식염포도당 등을 지급하고 있다.
삼성물산, HDC현대산업개발, 태영건설 등은 안전하지 않은 상황에서 근로자가 작업 중단을 요청할 수 있는 ‘작업중지권’을 적극 부여하고 있으며, DL이앤씨는 폭염 시간대를 피한 탄력적인 현장 운영, 냉방기를 포함한 간이 휴게시설 마련 등으로 대응하고 있다.
대우건설은 ‘3335 캠페인’을 실시하고 있다. 33도가 되면 자주 물 마시기, 그늘에서 햇빛 피하기, 매시간 15분 이상 휴식 등을 준수하고, 35도가 되면 이에 더해 14~17시 옥외작업 중지, 나와 동료 건강상태 확인 등을 실천하자는 것이다.
한화건설은 기본적인 폭염 대응과 함께 ‘찾아가는 팥빙수차’를 운영하는 등 이색적인 폭염 대응 방안도 눈에 띈다.
정부 역시 올해 특히 온열질환 사고 방지에 적극 나서고 있다. 고용노동부(고용부)는 최근 폭염에 노출되는 실내작업장의 온열질환 예방을 위해 근로자에게 휴식을 부여할 수 있도록 ‘산업안전보건법’ 하위 법령을 개정·시행했다. 그간 옥외장소에서 작업하는 경우에 휴식 의무가 부여돼 왔는데 폭염 시 실외온도와 유사한 고온의 환경에서 작업을 하는 실내작업장 근로자(물류센터 등)를 위한 보호를 강화한 것이다.
또한 산업안전보건 규칙과 고용부 열사병 예방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근로자들이 휴식할 수 있는 장소를 확보하고 휴식시간을 보장하도록 하며, 폭염경보 시 가장 더운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세시간 동안 작업을 중단하는 내용 등을 권고하고 있다.
기록적인 폭염에 온열질환자 오히려 늘어, “중소현장 사각지대”
하지만 업계와 정부의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건설현장 온열질환자 수는 오히려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국토부에 따르면, 5월20일부터 7월30일 사이 발생한 온열질환자 수는 1005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 922명 대비 9%(83명)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질병관리청이 5월20일부터 7월2일까지 온열질환 응급실감시체계를 통해 집계한 전국 온열질환자 수 역시 355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 152명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지난달에는 온열질환 추정 사망자도 3명이나 발생했다.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은 공사규모 50억원 이상의 사업장에서 열사병 등 직업성 질병자가 1년 내 3명 이상 발생하면 사업주를 처벌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규제가 강화됐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관련 사고 또는 환자 수는 줄기는 커녕 오히려 늘고 있다.
업계에서는 대형사업장이 아닌 중소규모 건설현장 등 법의 사각지대에서 온열질환 사고가 다수 발생하며, 권고사항일 뿐인 가이드라인이 현실적으로 지켜지기 어렵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새나오고 있다.
박세중 전국건설노동조합 노동안전보건부장은 스카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올해 폭염은 사실 건설근로자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물 정도로 심했다”면서 “그럼에도 강제이행 의무가 없는 가이드라인과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규제들로 인해 아직까지 사각지대에 놓인 건설근로자들이 많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앞서 전국건설노조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발주 건설현장에 대한 편의시설 실태조사를 자체적으로 실시한 결과, 한 곳당 평균 172명이 세면장 1.7개, 화장실 2.5개, 휴게실 2.5개를 사용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박세중 부장은 “LH 발주 현장부터 조사한 이유는 공공기관 발주 현장은 폭염기 작업중지로 지연되는 부분에 대해 공사기일을 연장하고 금액도 보전해주는 지침이 있어 민간 현장보다 조건이 낫기 때문”이라며 “공공 공사현장부터 이러한 것들이 잘 지켜지면 이것이 민간 또는 중소현장까지 확산될 수 있기 때문에 이곳부터 점검을 한 것인데 생각보다 휴식공간이 너무나도 열악하고 그늘조차 없는 곳도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휴식시간 동안 제대로 쉬지 못해 열을 식히지 못하고 다시 업무를 하는데 휴게공간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라고 반문하면서 “도심 한복판에서 빌딩을 건축하는 전국 다수의 중소현장은 휴게공간을 만드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고, 이 무더위에 옷 갈아입을 공간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스카이데일리가 찾은 중소규모 현장에서도 휴게시설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서울 관악구 소재 오피스텔 건축현장 근로자 A씨는 “큰 곳(대형사업장)에서나 그런 게 가능하지, 이렇게 작은 현장에선 작업공간 한 켠에 앉거나 누워서 쉰다”면서 “그나마 올해는 너무 심한 더위 탓에 쉬면서 하고 있지만 과거 다른 현장에선 공사기일을 맞추느라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고 토로했다.
인근의 빌딩 건축현장 근로자 B씨는 “올해 너무 덥기도 하고 사업주가 휴식시간이나 정수기 등 편의시설을 많이 제공해줘서 쉬어가며 하고 있다”면서도 “소규모 사업장이기도 하고 공간도 여의치 않아 따로 휴게시설, 화장실을 만들지는 않았고 근처 상가 등에 양해를 구하고 사용하곤 한다”고 털어놨다. 강남구 소재 건축현장 근로자 C씨 역시 “파라솔 밑 의자에서 휴식시간을 보내는게 전부”라고 답했다.
박세중 부장은 “산업안전보건법에서 말하는 일반적인 휴게시설이 아니라 건설현장과 건설업 특성에 맞는 휴게시설, 작업중지권 사용 등 관련 법안이 마련돼야 한다”면서 “래미콘은 계속 들어오고, 콘크리트는 계속 부어지고 또 굳는 시간이 품질과도 연결되는 상황에서 근로자가 어떻게 작업중지를 요청하겠나, 결국 정부가 사업주의 관리·감독, 현장 운영에 대해 강하게 규제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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