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의 순혈주의·엘리트주의를 깨기 위해 도입된 법조일원화 제도가 무늬만 바뀐 채 여전히 존속하는 법조계 엘리트주의 풍조에 그 취지가 퇴색되고 있다. 올해 신임 법관 임용 예정자 7명 중 1명이 대형로펌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출신인 것으로 나타나는 등 법관 임용에서 대형로펌 출신 변호사의 쏠림 현상을 보여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당초 사법부의 순혈주의·엘리트주의를 깨기 위해 다양한 법조경력을 거친 사람들 중에서 법관을 선발한다는 게 2013년 도입된 법조일원화의 취지였다. 하지만 현실에선 사법부의 순혈주의·엘리트주의가 무늬만 달라졌을 뿐 이전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지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이 과거 자신이 속했던 로펌과 관련된 재판을 맡게 될 경우 공정성 시비를 초래할 수 있다며 이른바 ‘후관예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 직장에 우호적인 판결 ‘후관예우’ 문제 불거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이 대법원 법원행정처로부터 받은 최근 5년간(2018~2022년) 신규 임용 법관의 법조경력 등 현황을 살펴보면, 올해 신임 법관 예정자 135명 중 19명(14.1%)이 김앤장 변호사 출신이었다. 임용 예정자 7명 중 1명꼴이다. 법조계 안팎의 문제 제기에도 특정 대형 로펌 출신 변호사가 법관에 임용되는 ‘쏠림 현상’은 더욱 심화됐다.
대형 로펌은 연 매출액 100억원 이상 로펌을 말한다. 참고로 인사혁신처가 밝힌 올해 공직자윤리법상 취업제한 대형 로펌은 김앤장 법률사무소 등 국내 주요 로펌 44곳과 외국 로펌 4곳 등을 포함 48곳에 달한다.
최근 5년간(2018~2022년) 신규 임용된 법관 439명의 출신 직역 현황을 보면, 변호사 출신이 71.3%(313명)였다. 이어 재판연구원(50명), 검사(37명) 출신 순이었다. 같은 기간 변호사 출신 법관은 ‘7대 대형 로펌’ 출신 비율이 40%가 넘었다. 로펌별로는 김앤장 출신이 41명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태평양 17명, 광장 15명, 바른 14명, 세종 14명, 율촌 13명, 화우 12명 등이었다.
신임 법관의 특정 대학 쏠림 현상도 변하지 않았다. 최근 5년간 임용된 법관 중 서울대 출신이 147명으로 가장 많았다. 그 뒤로 고려대 출신이 80명, 연세대 출신이 48명이었다. SKY 대학 출신이 275명으로 전체 신규 임용 법관의 62.6%를 차지했다.
김앤장 출신 신임 법관 비중을 살펴보면 2018년 8.3%(3명), 2019년 6.3%(5명), 2020년 7.7%(12명), 2021년 12.2%(19명), 2022년 14.1%(19명)로 증가하는 추세였다.
올해 신임 법관 예정자 중 7대 대형 로펌(김앤장·광장·태평양·율촌·세종·화우·바른) 출신은 총 50명으로 전체의 37.0%에 달했다. 검사·국선변호사·국가기관 출신 임용 예정자(35명)와 재판연구원 출신 임용 예정자(11명)를 합한 숫자보다 많다. 여전히 신임 법관들 다수가 대형 로펌 출신으로 편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탄희 의원은 지난해 김앤장 출신 변호사의 쏠림 현상을 두고 “김앤장의 판사 독식”이라며 이를 방지하는 법안 발의를 추진했다. 신규 법관 중 다수가 특정 로펌에서 발탁될 경우 법원의 사유화가 우려되는 데다, 법관의 다양성이 떨어져 재판의 독립성이나 공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취지였다. 이에 따라 경력 법관 임용 시 법관의 과거 경력 정보를 공개하도록 하는 ‘판사 정보 공개법’이 발의됐으나 현재 국회 계류 중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전원 교수는 “판사 정보를 공개하겠다는 건 사법부의 독립성을 통제하겠다는 발상”이라며 “재판하는 데 공개된 정보가 악용될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사회적으로 다양한 경력을 가진 사람이 법관이 되도록 하는 목적을 위해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의견도 있다.
한상희 건국대 법전원 교수는 “사회적 다양성을 반영해야 하는 중요한 직무에 종사하는 법관은 사회가 검증할 필요가 있다”며 “법관이 수년 동안 어떤 법조 경력을 가지고 있는지 국민들이 정보를 획득하고 평가할 수 있어야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논란을 의식한 듯 대법원은 2021년 신임 판사 임용부터 ‘블라인드 심사’ 방식을 도입해 출신 법무법인 및 학교를 모르는 상태로 선발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그럼에도 신임 법관들 다수가 대형 로펌 출신으로 편중된 현상이 여전하다”며 “법원이 법조경력이 짧은 인력을 선호하는 등 쏠림 현상을 조장한다는 사실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김승원 민주당 의원도 “법관은 가치중립적이고 공익에 헌신하는 자세로 사법권을 행사해야 하는데 대형 로펌 출신 경력법관 임용 현상이 심화된다면 판결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며 “법관이 사회적으로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공정한 판결을 내릴 수 있도록 선발 과정에서 출신이나 성별, 경력 등도 균형감 있게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후관예우’ 이해충돌 막을 수 있는 장치 미비
로펌 출신 법관이 늘면서 이른바 ‘후관예우’에 대한 경고도 나온다. 후관예우란 법관 자신이 근무했던 대형 로펌이 참여하는 재판을 맡았을 때 로펌에 유리한 판단을 내리거나 우호적 입장을 취할 수 있다는 걸 말한다. 법관이 친정 로펌에서 수임한 재판을 담당할 경우 공정성 시비가 나올 가능성이 불보듯 뻔하지만 관련 제도는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는 상태다.
대법원의 ‘법관 등의 사무분담 및 사건배당에 관한 예규’에 따르면, 후관예우 방지를 위해 변호사 경력 법관의 경우 자신이 속했던 로펌에서 수임한 사건은 퇴직 3년 내 맡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로펌 출신 법관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고 법원장이나 지원장이 필요시엔 예외를 적용할 수 있는 만큼 출신 로펌과 직·간접적으로 연계된 사건을 맡는 사례가 생길 수 있는 상황이다.
아울러 ‘5년 이상 7년 미만’ 신임 법관의 경우 대형 로펌 출신 변호사의 쏠림 현상이 더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5년 이상 7년 미만’ 경력을 지닌 신임 법관 총 95명 가운데 18명(18.9%)은 김앤장 출신으로 집계됐다. 김앤장을 포함한 7대 로펌 출신은 42명(44.2%)이었다. 이처럼 쏠림 현상이 가장 집중된 ‘5년 이상 7년 미만’ 경력의 신임 법관은 전체 임용자의 41.3%였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한 법원조직법이 법관이 되기 위한 법조경력을 최소 ‘5년 이상’으로 유예한 데 따른 결과로 풀이된다”고 설명했다. 법원은 2018년부터 변호사나 검사 등 법조 경력이 5년 이상인 경력 법관만 선발했다.
사법부의 순혈·엘리트주의를 탈피하기 위해 다양한 법조경력을 거친 사람 중 법관을 선발하기 위한 제도인 법조 일원화는 2013년 도입돼 당초 △2021년까지 5년 이상 △2022~2025년은 7년 이상 △2026년부터는 10년 이상 법조경력을 갖춰야 법관으로 임용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지난해 법 개정으로 ‘5년 이상’ 규정을 2024년 말까지 연장시켰다. 법 개정 당시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추진된 법조 일원화 취지에 역행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 의원은 “전국 신임 판사의 7분의 1을 한 로펌에서 독식하는 나라는 없다. 8분의 1을 차지한 지난해보다 더 심해졌다”며 “법원이 김앤장 전초기지가 될 것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이날 임명식에서 신임법관들에게 ‘재판의 독립성’을 당부했다.
그는 “헌법은 재판의 독립을 선언하고 법관의 신분을 보장하고 있다”며 “이는 독립된 재판만이 국민의 기본권을 충실하게 보장할 수 있다는 굳은 믿음에 근거한 것이며 오직 헌법과 법률, 그리고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하라는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재판의 독립은 그 자체로 궁극적인 목적이 되는 것이 아니고 사법부에 주어진 헌법적 사명을 완수하는 데 필요한 수단적 가치”라며 “독립된 법관이 성심을 다해 ‘좋은 재판’을 실현할 때 비로소 국민의 자유와 권리가 충실히 보장되고 재판의 독립을 선언한 국민의 믿음과 기대에도 온전히 부응할 수 있음을 각별히 유념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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