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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진단] 장애인 권리 예산
“왜 국가는 답하지 않나”… 장애인 지하철 시위 끝나지 않는 까닭
“정부 사회적 약자 위한 촘촘한 예산 지원 거짓말”
“21년간 이동권 보장 요구… 시위 불법성만 운운”
박경석 대표, 버스 운행 방해로 1심서 ‘집행유예’
임한상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2-10-20 14:17:53
▲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대표와 활동가들이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역 5호선 승강장에서 열린 ‘제39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시위에서 장애인 권리 예산과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박 대표는 이자리에서 “지난해 12월3일부터 외쳤던 예산에 대한 구체적인 협의를 해달라”며 “장애인 권리 예산이 얼마나 책정된 것인지 밝혀 달라”고 정치권에 요구했다. 사진은 ‘예산 없이 권리 없다’라는 문구가 적힌 전장연 시위 피켓. [사진=남충수 기자] ⓒ스카이데일리
 
‘장애인 권리 예산’ 반영을 촉구하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탑승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17일 기준 벌써 39번째 시위다. 전장연이 지하철 시위를 재개한 것은 지난달 28일 이후 19일 만이다. 일부 시민의 차가운 눈초리에도 전장연 회원들이 다시 지하철 시위에 나선 것은 장애인도 일상의 시민으로 살게 해달라는 당연하고도 간절한 요구에 정부가 제대로 응답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 권리 예산은 교통약자법 개정에 따른 장애인 이동권 예산을 포함하는데, 이동지원센터 설치·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중앙정부가 서울시에 50%, 지방에 70%를 지급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또한 탈시설, 평생교육시설, 활동지원 예산 등의 내용도 담고 있다. 이 요구안은 지난해부터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 보건복지부, 교육부 등에 전달된 상태다. 그런데 정부는 왜 이들 단체와 사회적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걸까.
 
21년간 호소했던 장애인들의 권리 묵살 당해
 
전장연은 17일 오전 7시 30분부터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서 출발해 여의도역을 거쳐 9호선 국회의사당역으로 가는 지하철 시위를 진행했다. 이날 최종 목적지는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다.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을 출발해 여의도역에서 9호선으로 환승해 국회의사당역을 거쳐 국민의힘 당사까지 이동할 예정임을 시위 일정에 공지했다. 이번 시위로 출근길 지하철 5호선 열차 운행이 길게는 1시간까지 지연됐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광화문역에서 여의도역 방면으로 가는 열차가 최대 1시간 4분 지연됐다”고 밝혔다.
 
전장연 회원들은 이날 시위에서 “누가 죄인입니까. 장애인 권리 예산·권리 입법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습니까”라고 호소했다. “장애인들이 21년을 외쳐도 대한민국 사회는 장애인이 이동할 기본적 권리도 보장하지 않았고, 너무나 지독히도 불평등하고 차별적인 사회였다”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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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장애인개발원이 1월 펴낸 ‘2021 장애통계연보’를 보면 2017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장애인 복지예산 비율은 0.6%에 그쳤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2.02%)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최하위권이다. 왜 한국이 최근 유엔 인권이사국에서 고배를 마셨는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다.
 
▲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대표. [뉴시스]
 
“지하철 탑승 시위를 왜 하필 출근 시간대에 하느냐고 묻습니다. 할 수 있는 건 이미 다 해봤기 때문입니다.” 박경석 전장연 대표의 말이다.
 
그는 1983년 대학생 때 행글라이더를 타다 추락해 하반신이 마비됐다. 그 후 상실감에 휩싸여 5년 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은둔 생활을 했다. 그러다 불굴의 의지로 장애인복지관에서 직업훈련을 받으며 절망감을 극복하고 다시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 경험이 장애인 권리 예산 시위의 자산이 됐다. 1993년 설립된 노들장애인 야학에서 1994년부터 교사로 일했다. 그곳에서 1997년부터 2021년까지 교장을 맡으며 이동권 등 각종 장애인의 권리 실현을 위해 노력했다.
 
박 대표는 39번째 지하철 탑승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가 장애인 권리를 예산으로 보장해줄 것을 촉구하기 위해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를 만나러 이동한다”면서 “장애인들도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고 지역사회에서 어울려 살아갈 수 있도록 정기국회에서 예산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했다.
 
전장연이 이날 최종 목적지로 국민의힘 당사를 선택한 것은 여론 압박 차원으로 풀이된다. 전장연은 국민의힘이 정기국회에서 장애인 권리예산과 권리입법이 통과될 수 있도록 약속해달라고 정진석 비대위원장과 주 원내대표에게 촉구했다.
 
전장연은 이어 “정부가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사회적 지원예산을 두툼하고 촘촘하게 지원했다고 거짓말하고 있다”며 맹비난했다.
 
김철 사회공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그동안 정부가 이들 단체의 면담 요구를 거부하거나, 진행해도 검토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한 게 사실”이라며 “교통약자법이 제정된 지 10년이 넘었고 이동권 보장 요구는 20년 넘게 이어져 온 맥락을 고려하면, 정부에 문제가 있다”고 평가했다.
 
전장연은 지난해 12월부터 장애인 권리 예산 반영과 장애인 권리 4대 법률 제개정을 요구하며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시작한 뒤, 현재까지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고 있다.
 
전장연이 지난달 26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기재부가 지난달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에 장애인 권리 예산이 삭감 혹은 동결됐고, 의무적으로 반영해야 할 예산과 자연증가분 예산이 과대 포장됐다고 지적했다.
 
또 조규홍 복지부 장관에 대해 장애인 권리 예산 보장에 대한 책임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를 위한 노력은커녕 시위의 불법성만 운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예산 문제로 중증장애인이 거주시설에 가둬지거나 가족에게 살해되는 참사가 수차례 반복되고 있는 상황에서 장애인 권리 예산 반영에 대한 책임있는 언급조차 없는 사람이 과연 복지부 최고 책임자로서 적절한지 우려스럽다는 혹평을 내놓기도 했다.
 
조 장관은 지난달 27일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탑승 시위 관련 질문에 “합법적인 범위에서 조금 벗어났다고 본다”며 “이제는 표현 방법을 조금 바꿔서 시민 불편을 줄이고 수용성을 높이는 게 바람직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 경찰이 열차 운행을 방해하는 행위는 시민 불편과 업무 방해죄로 처벌될 수 있는 불법행위라고 경고방송을 한 뒤 전장연 시위를 강제 진압하고 있다. [사진=남충수 기자] ⓒ스카이데일리
 
앞서 김광호 서울경찰청장도 6월20일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전장연의 지하철 탑승 시위에 대해 “불법행위는 지구 끝까지 찾아가서 사법처리하겠다”고 발언해 전장연으로부터 망언이라며 규탄의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전장연은 당시 서울청을 항의 방문해 “우리는 그동안 장애인 권리 예산 쟁취와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이야기했지만, 오늘은 김 청장의 지구 끝까지 찾아오겠다는 망언을 규탄하고 사과를 촉구한다”며 “지구 끝까지 쫓아 엄벌 처리할 필요 없이 저희가 직접 찾아가 설명드리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애인 이동권 ‘버스 시위 23분’ 징역 4개월 집유 판결
 
이런 가운데 법원이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퇴근길 버스운행을 방해하는 시위로 기소된 박 대표에 대해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단독 양환승 부장판사는 18일 오전 열린 재판에서 박 대표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과 업무방해 등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고, 박 대표에게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검찰은 박 대표를 지난해 4월8일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공원 앞 버스정류장에서 회원 20여 명과 시위하며 버스 운행을 23분간 방해하고 미신고 집회를 연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며 징역 6개월을 구형했다.
 
당시 박 대표는 버스가 정류장에 서자 버스 앞문과 자신의 몸을 쇠사슬로 연결해 묶은 것으로 조사됐다. 해당 버스는 휠체어를 탄 승객을 태울 수 없는 차량이었다. 버스 운행이 잠시 중단되면서 버스에 있던 승객들은 하차할 수밖에 없었다.
 
박 대표는 법정에서 “해당 시위가 위법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폈다.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이고, 짧은 시간에 평화적으로 이뤄져 버스운행 업무나 승객들에게도 위험을 발생시키지 않았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박 대표 쪽 변호인도 “그동안 장애인 이동권이 충분히 보장받지 못해왔고, 그나마 보급된 저상버스도 장애인들은 원활하게 이용하기 어렵다”며 “피고인은 이런 현실을 절실하게 알리고 예산확보 등 정책 마련을 촉구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라고 재판부에 설명했다. 변호인은 이어  “형사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재판부의 생각은 달랐다. 재판부는 “헌법은 표현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지만, 시민들이 이용하는 버스나 지하철이 제대로 운행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행위는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와 권리를 남용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어떤 명분을 내세워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양 판사는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한 이유에 대해 “지난번 재판을 마치면서 시민에게 공감을 얻는 방식으로 집회 방식을 재고해 달라고 했지만, 피고인은 전장연 회원들을 이끌고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반복하고 있다”며 “이런 점을 불리한 양형요소로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 박경석(오른쪽) 전장연 대표가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교대역 2호선 승강장에서 열린 ‘제40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시위에서 버스 운행정지 시위에 대한 재판부의 1심 유죄 판결을 규탄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중앙지법 형사3단독 양환승 부장판사는 18일 오전 열린 재판에서 박 대표에게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뉴시스]
 
박 대표와 전장연 활동가들은 이날 재판 직후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판사가 마치 도덕 선생님처럼 훈계하듯 판결했다”며 “장애인이 지금까지 겪은 차별을 고려하지 않은 판단으로, 즉시 항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선고 다음날인 19일 전장연은 박 대표에 대한 유죄 판결이 부당하다며 출근길 지하철 탑승 시위를 벌였다. 40번째 시위였다. 전장연은 이날 오전 8시쯤 서울 지하철 2호선 교대역 승강장에서 기자회견을 한 뒤 열차를 타고 당산역을 거쳐 9호선 국회의사당역으로 이동했다. 이 때문에 출근길 지하철 2호선과 9호선 운행이 지연됐다. 
 
박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1심 선고에 대해 “나는 차별하는 버스의 운행을 정지시켰을 뿐이고, 그 차별버스가 내게 불법이었다”며 “차별이 무엇인지 하나도 모르는 편견이 가득한 판결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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