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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주 대하소설
우리나라 삼국지 [20] 뻗어가는 백제-②
위례의 성민들은 화살과 돌멩이 등을 성벽 위로 날랐다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2-10 10:50:31
 
 
 
말갈과의 싸움에서 통쾌한 승리를 거둔 온조왕은 을음을 비롯해 공을 세운 장수들을 치하했다.
 
“이번 승리는 모두 여러분의 공이오.”
 
“이 기세를 몰아 말갈의 본거지를 치면 어떻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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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음이 토벌을 주장하자 마려가 손사래를 치며 말린다.
 
“지금은 대규모의 군사를 일으킬 때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나라를 안정시켜 백성이 생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그대의 말이 옳소. 당분간은 민생에 진력하도록 합시다.”
 
온조왕은 마려의 진언을 받아들여 민심을 수습하고 이웃 나라와의 충돌을 피했다. 말갈의 배후로 여겨지는 낙랑국에 사신을 보내 수교를 요청한 건 평화를 지키겠다는 왕의 의지였다.
 
낙랑국왕은 뜻밖의 제안에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신하들을 불러들여 의견을 물었다.
 
“백제국의 사신이 와서 화친을 청하는데 어찌하면 좋겠소?”
 
우보 마휼(馬恤)이 나서서 아뢴다.
 
“역시 건건타보를 부추겨 보내길 잘했습니다. 이로써 백제의 힘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들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당분간 지켜본 후에 대처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뭐가 무서워서 저런 작은 나라와 수교를 맺는단 말이오?”
 
장군 한숭(韓崇)이 마휼을 힐난하면서 낙랑국왕 앞에 나선다.
 
“말갈은 예로부터 우리 낙랑과는 수어지교(水魚之交) 관계입니다. 이번에 복수를 하지 않으면 그들이 계속 우리를 믿고 따르겠습니까.”
 
한숭은 건건타보와 의형제를 맺은 사이였다. 그가 분노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좌보 전장(田莊)이 마휼을 돕고 나섰다.
 
“백제를 쉽게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들의 뒤에는 부국(父國)인 고구려가 버티고 있습니다. 그들과 전쟁을 벌였다가는 앞뒤로 공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일단 화친을 맺으시고 나중에 기회를 노리는 게 낫습니다.”
 
고구려라는 말에 겁을 먹은 낙랑국왕은 수교하자는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
 
낙랑국왕은 백제의 사신을 불러 말한다.
 
“이제 백제와 낙랑은 형제국이요. 짐의 뜻을 백제왕께 전해 주시오.”
 
이렇게 해서 백제와 낙랑은 명목상으로 화친을 맺었다. 그러나 두 나라는 서로 상대에게서 의심의 눈을 거두지 않았다.
 
한동안 평화로운 분위기가 이어졌다. 그런 가운데서도 북변의 민심은 흔들리고 있었다. 언제라도 말갈족이 다시 침입해 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온조왕은 불안에 떠는 북쪽 변경의 백성을 다독이기 위해서 순행에 나섰다. 곳곳에서 말갈이 조만간 쳐들어올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소문은 얼마 안 가 현실로 나타났다.
 
온조왕 8년, 말갈족장 건건우수(建建雨秀)가 군사 3천을 거느리고 국경을 돌파한 후 단숨에 위례성으로 쳐들어왔다.
 
온조왕은 위급한 상황에서도 냉정을 잃지 않았다.
 
“말갈군이 성을 포위한 채 항복하라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자 선불(宣拂)의 보고를 받은 왕은 좌보 마려에게 물었다.
 
“어떻게 대응하면 좋겠소?”
 
마려도 여유가 있었다.
 
“저들이 기습으로 기선을 제압했다고는 하나 성을 함락시킬 만한 군세는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성을 굳건히 지키면서 시간을 끌기만 하면 됩니다. 머지않아 군량이 바닥나면 저들은 물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뒤를 친다면 어렵지 않게 제압할 수 있습니다.”
 
얘기만 들어도 든든했다.
 
온조왕은 신하들에게 명했다.
 
“성에 있는 모든 백성을 동원해 저들의 공격에 대비토록 하라.”
 
위례의 성민들은 화살·돌멩이 등을 성벽 위로 날랐다. 이들에게서는 투지가 느껴졌다.
 
말갈군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성벽에 갈고리와 사다리를 걸고 올라왔다. 백제군이 그들에게 화살과 돌멩이를 날리고, 끓는 물을 쏟아부었다. 고함·비명·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많은 사상자가 나왔지만 어느 쪽도 물러나지 않았다. 양편의 치열한 공방전은 십여 일간이나 계속되었다. 공격하는 말갈군이나 방어하는 백제군이나 모두 지쳤다.
 
건건우수가 한 차례 공방전을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였다.
 
말갈군 부장이 근심 어린 얼굴로 막사에 들어왔다.
 
“군량미가 거의 바닥났습니다.”
 
예상했던 일이었다. 위례성을 포위할 때만 해도 금방이라도 함락시킬 수 있을 듯했다. 그러나 십여 일간 무섭게 공격했지만 성은 끄덕도 하지 않았다.
 
건건우수는 후퇴를 결정했다.
 
말갈군이 물러가는 것을 본 온조왕은 을음에게 명한다.
 
“즉시 정병 2천을 이끌고 가서 말갈의 후위를 치시오!”
 
을음은 기다렸다는 듯이 군사를 소집해 추격에 나섰다. 지친 말갈군은 퇴각하면서 후위에 대한 방비를 게을리했다. 설마 백제군이 뒤쫓아 오겠느냐는 안일한 생각이었다.
 
말갈군이 대부현에 이르렀을 때였다.
후방에 있던 군사가 급히 달려와 보고했다.
“백제군이 들이닥쳤습니다.”
 
깜짝 놀란 건건우수는 말머리를 돌려 후위를 구원하러 달려갔다.
 
그러나 이미 사기가 떨어진 데다 기습을 당한 말갈군은 백제군을 당해낼 수 없었다. 한껏 기세가 오른 백제 군사들은 그동안의 울분을 앙갚음하려는 듯 사정없이 말갈 군사를 도륙했다. 전의를 상실한 말갈군은 수많은 군사를 잃은 채 달아났다.
 
말갈군이 물러간 후, 온조왕은 신하들을 불러 모았다.
 
“이번 말갈군의 침입으로 우리의 국경 수비가 얼마나 허술한지 알게 되었소. 이참에 북변의 수비를 강화할까 하오.”
 
오간이 입을 열었다.
 
“북변의 수비를 총괄할 거점이 필요합니다. 말갈과 대치한 곳에 성을 쌓는 것이 좋겠습니다.”
 
온조왕이 관심을 보인다.
 
“어디에 성을 축조하는 것이 좋겠소?”
 
마려가 지체하지 않고 대답한다.
 
“주변의 형세로 보아 마수에 성을 축조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곳에 성을 쌓으면 말갈의 침입을 방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낙랑국까지 대비할 수 있습니다.”
 
온조왕은 신하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마수성(馬首城) 축조를 명했다. 백제의 축성은 인근 나라에 파문을 일으켰다. 특히 낙랑국은 백제가 북쪽 국경의 전력을 강화하는 것을 보고 불안감을 느꼈다.
 
낙랑국왕은 부리나케 백제에 사신을 보냈다.
 
“지난날 양국이 형제의 의를 맺은 후로 깊은 우의를 다져 왔는데 지금 와서 국경에 성을 쌓고 목책을 세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양국의 우호를 생각한다면 성을 헐고 목책을 파하는 게 맞습니다. 만일 마땅한 조처를 하지 않으면 대가를 치러야 할 겁니다.”
 
사신의 전언은 온조왕의 가슴에 불을 붙였다.
 
“자고로 나라가 외적의 침입에 대비해 국경의 방비를 굳건히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오. 근래 말갈의 침입으로 피해를 본 걸 생각하면 더욱더 그러하오. 그런데 어찌 귀국에 해를 끼치려 한다고 곡해하는지 모르겠소. 이는 아국에 대한 믿음이 없는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소. 혹여라도 낙랑이 자국의 강성함을 믿고 군사를 일으킨다면 우리 역시 가만히 당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오.”
 
낙랑국 사신과의 대면은 험악한 분위기에서 끝났다.
 
빈손으로 돌아온 사신은 낙랑국왕에게 아뢰었다.
 
“백제는 아국과의 전쟁도 불사하려는 듯합니다. 방비를 철저히 하셔야 합니다.”
 
낙랑국왕은 대로한다.
 
“백제 따위가 감히 우리나라를 우습게 여긴단 말이냐. 내 이를 묵과할 수 없도다.”
 
마휼이 왕을 다독인다.
 
“이번 일은 감정적으로 대응해서는 안 됩니다. 저에게 좋은 계책이 있으니 들어 보시렵니까.”
 
왕이 화를 가라앉히고 물었다.
 
“무슨 계책이오?”
 
“옛말에 닭 잡는 데 소 잡는 도끼를 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백제를 손보는 데 우리가 직접 나설 필요는 없습니다. 말갈은 백제에 대한 원한이 깊습니다. 사람을 보내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하면 그들은 주저 없이 군사를 일으켜 백제를 공격할 겁니다. 누가 이기든 둘 다 피해가 클 테니, 우리로서는 어부지리(漁父之利)를 취할 수 있습니다.”
 
“마휼의 계교는 천상의 술책이로구나!”
 
낙랑국왕은 당장 말갈에 사신을 보냈다. 그들은 낙랑국의 제의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후로 말갈은 낙랑국의 지원을 받아 여러 차례 백제의 변경으로 쳐들어와서 충돌을 일으켰다.
 
 
[임동주 글, 이영림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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