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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근의 미디어와 정치] BBC 감원보다 더 우려되는 우리나라 현실
뉴스·시사 제작 분야에 감축 집중됐다는 점 주목
BBC 구조조정은 공영방송 위상 추락 상징적 사건
존립 위기 맞은 우리나라 공영방송은 권·언 유착 위험
황근 필진페이지 + 입력 2024-11-05 06:30:54
 
▲ 황근 선문대 교수·언론학
지구촌 곳곳에서 공영방송의 위상이 급속히 추락하면서 경영 압박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급기야 공영방송 아이콘으로 인식되어 온 영국 BBC 방송도 대규모 감원을 통한 예산 삭감 작업이 시작되었다. 
 
지난달 15일 BBC 뉴스 책임자인 데보라 턴스(Deborah Turness)는 뉴스와 라디오 그리고 일부 스포츠 제작과 관련된 130개 자리를 축소하는 구조 조정안을 밝혔다.
 
7월에 발표된 ‘BBC 연례 보고서’에서 설정한 2026년 3월까지 500개 자리를 감축하고 2400만 파운드의 예산을 절감하겠다는 목표에 따른 것이다. 이번 조치로 BBC는 올 예산의 4%에 해당하는 비용 절감을 기대하고 있다. 그 배경에 2028년까지 새로운 BBC 재원 구조를 모색할 때까지 수신료를 동결하겠다는 오프콤 결정이 있다. 실제로 올해 BBC 예산은 2010년보다 10억 파운드 감소되었다.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이번 감축 조치가 뉴스와 시사 제작 분야에 집중되었다는 것이다. 우선 BBC의 대표적 시사 인터뷰 프로그램인 ‘hardtalk’가 폐지되었다. 또 정보기술(IT) 같은 첨단 기술 관련 뉴스를 제공했던 ‘Click’을 종료하고, 디지털에 적합한 영화 형식으로 전환해 ‘Tech Now’라는 명칭으로 재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BBC Asian Network의 맞춤형 뉴스를 폐지하고 월드 뉴스를 요약해서 제공하게 된다.
 
이러한 구조 개편 과정을 보면 전형적인 ‘침체의 소용돌이(Spiral of Downward)’ 징조가 엿보인다. 자칫 ‘경영 압박→콘텐츠 투자 감소→경쟁력 저하→경영 압박’으로 이어지는 악순환 구조에 빠지게 될 수도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것처럼 BBC의 경쟁력은 정확하고 공정한 뉴스와 수준 높은 다큐멘터리 콘텐츠에 있다. 따라서 시사·보도 프로그램과 인력 감축에 초점을 둔 구조조정은 BBC 전체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이전에도 팀 데이비 BBC 사장은 디지털 전략을 위해 뉴스 콘텐츠를 20% 이상 줄이라고 지시한 바 있다. 하지만 가짜 뉴스들이 난무하면서 저널리즘의 신뢰가 공격받고 있는 상황을 지적하면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물론 허위정보에 대응하기 위해 공영방송의 역할을 강조하는 오프콤이나 유럽연합(EU)의 기조와도 상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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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양한 구성원 특히 소외계층의 필요와 이해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공영방송 책무와 관련된 지적도 있다. 아시아 네트워크를 폐지한 것은 영국 내 소수인종에 대한 배려를 포기하는 것을 뜻한다는 것이다. 이는 공영방송의 역할을 온라인까지 확장시킨 ‘공공서비스 플랫폼(PSP : Public Service Platform)’ 개념에도 부합되지 않는다. 다양한 인종·계층이 원하는 정보·교육·오락 등을 제공해야 한다는 ‘보편적 소구(universal appeal)’의 개념과 상충되기 때문이다.
 
인종차별 같은 문제로 비화되지는 않더라도 소수인종에 대한 BBC의 불공정 이슈가 제기될 가능성도 있다. 또한 아시안 네트워크 폐지가 BBC의 글로벌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국가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확산시키고 있는 허위 정보가 급증하고 있어 글로벌 뉴스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글로벌 뉴스 프로그램 축소는 러시아·중국 같은 권위주의 국가들에게 글로벌 정보 패권을 빼앗기는 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BBC 구조조정은 공영방송 위상 추락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사건이다. 영향력 하락으로 인한 존립 근거의 약화, 이에 따라 수신료 정당성이 위협받으면서 재정 압박에 봉착하고 있다. 우리 공영방송 역시 심각한 존립 위기를 맞고 있다. 더구나 BBC와 달리 정치권력과 유착된 후견 체제가 견고하게 구축되어 있는 상태다. 이 때문에 위기를 구조조정으로 해결하려 하기보다 정치권력과 더욱 밀착하려는 유혹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7월부터 수신료 분리 징수가 본격적으로 실시되면서 서서히 그 효과가 표면화되고 있다. KBS 역시 지난달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하지만 고용 경직성이 강한 공기업의 속성상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쉽지 않아 보인다. 그 대신 정권과 연계된 인사에 대한 집착과 수신료 제도의 원상 복귀를 희망하는 퇴행적 인식이 여전히 만만치 않다. BBC의 구조조정이 공영방송의 이상이나 책무의 관점에서 우려되는 점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정권의 제도적 후원에 매달리는 우리보다는 나아 보인다. 공영방송 리모델링이 아닌 재개발이 필요한 이유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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