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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의 ‘음양오행경제’

경주마 같은 엘리트, 유리컵 같이 위험하다

검사, 판사, 변호사, 대기업 임직원 등 조직 떠나면 힘들어 해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17-04-16 19:33:12

 ▲ 명리학자 김태규 칼럼니스트 ⓒ스카이데일리
대기업이나 고위 공직에서 일하는 사람과 얘기해보면 마치 경주마와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경주마는 일반 말과 다르게 길러진다. 경주마는 오로지 앞으로 잘 달릴 수 있도록 만들어진다. 시합에 나가면 앞만 보도록 눈을 가린다. 근육 또한 앞으로 달리는데 필요한 것만 발달시키다. 그렇기 때문에 몸을 비트는데 필요한 회전 근육이나 무게를 견디는데 필요한 근육은 아주 약하다.
 
대기업의 경우 직원 상호간에 치열한 경쟁을 유도해서 모든 직원이 최대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사정없이 독려하고 또 채찍질 한다. 대기업만이 아니라 나름 엘리트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다니는 모든 직장이 그렇다.
 
엘리트들은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고 그러다 보니 자부심이나 자존심도 강한 편이다. 그래서 엘리트들이 모인 직장의 경우 그들로부터 성과를 끌어내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굳이 채찍까지 휘두를 필요가 없다. 그저 그들의 자존심을 약간 건들거나 긁어놓으면 충분하다.
 
자존심을 긁어놓는 대표적인 방법은 ‘고과’이고 이를 이용한 승진 게임이다. 그래서 엘리트들은 입사 동기보다 승진이 1년만 늦어도 엄청난 스트레스와 굴욕감으로 괴로워한다. 겉으론 표시하지 않지만 속으론 앓는다.
 
그렇기에 엘리트들이야말로 뚜렷한 약점을 지닌 부류라 하겠다. 나 호호당은 엘리트를 두고 유리컵이라 부른다. 손에서 놓치면 그 즉시 산산조각이 나는 유리컵 말이다.
 
사람들은 가령 검사라고 하면 대단한 사람들인 줄 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승진 게임에 목을 매는 유리컵과 같다. 로펌에 근무한다고 하면 무척 대단하리라 보겠지만 마찬가지다. 자신이 유리컵이란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다. 삼성전자와 같은 글로벌 대기업에서 부장 정도 하고 있다고 하면 우리사회에선 대단한 엘리트 그룹에 속한다. 하지만 그들 역시 유리컵이다.
 
좀 더 예를 들어보자. 우선 법원의 판사를 놓고 보자. 우리나라의 판사들은 단일호봉제라서 받는 보수는 직급이나 보직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오로지 근무연수에 따라 받는다. 다시 말해서 모든 판사는 법적으로 평등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현실에선 엄청난 경쟁을 펼친다. 현실에선 수많은 계급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일단 지방법원 배석판사로 시작해서 단독판사, 고등법원 배석판사, 지방법원 부장판사, 고등법원 부장판사, 법원장, 대법관, 대법원장으로 이어지는 철저한 계급이 존재하기에 보수와는 별도로 치열한 경쟁이 존재한다. 물론 법원 쪽에선 앞에서 말한 것은 계급이나 서열이 아니라 보직개념에 불과하다고 둘러대고 있다.
 
검사나 판사나 모두 같은 기수가 승진하면 사직하는 경우가 많다, 가령 판사의 경우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되지 못하면 으레 옷을 벗는다. 검사 역시 동기가 고등검찰청의 장이 되면 옷을 벗는다. 이럴 때 쓰는 흔한 핑계가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기 위함이다.
 
예로부터의 말로서 선비에게 모욕을 주어선 아니 된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다. 모욕을 줌으로써 간단하게 선비를 몰아내고 있다고 보면 정확하다. 역사상 무수한 선비들을 죽게 만든 것은 바로 모욕을 주는 것이었다. 선비들이 당파를 짓는 이유 역시 영달을 보자는 목적보다도 어떤 무리에 속해야만 그나마 자신을 지키고 모욕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이나 의식은 오늘날 우리사회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같은 기수를 상사로 모시고 일할 순 없다는 생각 즉 상처받은 자존감은 서구 사회에선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잘 보는 미국 드라마로 ‘NCIS’가 있다. 보신 분은 알겠지만 수사팀을 이끄는 카리스마 넘치는 깁스는 자신의 상사인 흑인 부장과 전적으로 트고 지낸다. 상사라고 해서 존칭을 쓰지 않는다. 직급만 위아래가 있을 뿐 그냥 친한 동료라고 해도 무방하다. 우리와의 문화적 차이가 확연한 대목이다.
 
판사나 검사, 대형 로펌의 변호사, 공기업이나 대기업의 임직원 등은 모두 우리 사회의 엘리트들임에 틀림없다. 우리나라 모든 부모들이 제발 내 자녀가 그렇게 됐으면 하는 선망의 사람들이다.
 
나 호호당의 눈엔 그들 모두가 어김없이 유리컵인양 느껴진다. 지금도 현역 유리컵 또는 퇴직한 유리컵들을 많이 알고 있고 친하게 지낸다. 술자리에선 놀려주기도 한다.
 
이런 점으로 보면 우리사회의 엄청난 것들이 서구화되고 근대화된 것 같지만 본질 혹은 바탕은 여전히 과거 유교적 전통에서 생겨난 폐단에 사로잡혀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그러면 유리컵이기에 겪을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해 본격 얘기를 해보자. 오늘 이 글을 쓰는 까닭은 바로 이 대목에 있다.
 
자질과 능력이 있다 보니 경주마로 선택됐다. 그 결과 눈을 가리고 앞으로 달리는 것만 배우고 또 그게 전부인 줄 알고 지낸다. 이게 문제가 된다.
 
조직이나 기업은 사람을 부려 먹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개개인의 삶이란 관점에서 보면 엘리트들은 자신들이 조직을 떠나게 될 경우 예상치 않은 위험 혹은 리스크를 지고 있다는 점을 모른다.
 
언젠가는 머물던 조직에서 떠나야 한다. 물론 사다리를 오르는 경쟁에서 최고 최종 단계에까지 올랐던 사람이라면 그 자긍심만으로도 남은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결국 대부분의 엘리트들은 중도에 조직을 떠나야 한다.
 
삼성전자의 경우 직무상의 일반임원으로 승진하지 못하면 그만 두는 경우가 많듯이 말이다.
 
사실 굳이 그만 두지 않아도 되건만 그들이 그만 두는 이유가 뭘까. 그냥 조직에 머물면서 다른 길을 찾을 순 없을까. 이렇게 생각도 하고 물어도 보지만 상처를 입은 그들은 대부분 직장을 떠난다. 오랫동안 그런 식으로 길들여졌기에 때문이다.
 
엘리트라는 긍지와 자존감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인생 사실 멋진 인생이다. 대개의 경우 그들은 올곧고 직업윤리 또한 칭찬해줄 만하다. 우리사회를 지탱하는 기둥이다.
 
그런데 엘리트들이 도중에 부정부패 쪽으로 빠지게 되는 경우도 제법 있다. 이는 내부 경쟁에서 패배한 나머지 자존심에 상처를 입을 경우 ‘인생 까짓 거 뭐 있어’ 하고 자포자기한 까닭이라 보면 거의 정확하다.
 
자신이 만든 사업이나 기업체라 한다면 자신의 것이니 거기에 몰두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엘리트들이 일하는 조직이나 기업은 자신의 것이 아니다. 공공의 것이거나 주인이 있는 기업이다.
 
엘리트인 것은 사실이지만 어디까지나 경주마로서 그렇다는 것이지 마주는 따로 있다는 얘기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이 일하는 곳을 세상 전부인양 알고 영원히 그곳에서 지낼 것처럼 여긴다.
 
그러다가 갑자기 어느 날 그곳을 떠나게 되면 얼마 가지 않아 큰 충격을 받게 된다. 바깥세상의 공기는 승진 게임이 전부이던 그곳과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전혀 적응이 되질 않는다. 일반 세상은 갖은 부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이다. 그렇기에 조잡하기도 하고 야비하기도 하며 작은 이익에 목을 매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명예나 긍지 따윈 찾아볼 수 없는 액면 그대로의 세상이고 정글이다.
 
사람은 어떤 일을 하든 또 어떤 바닥에 들어서든 그 일이나 바닥에서 최소한 10년은 지나야 익숙해지고 자신감이 붙는다. 명예와 승진이란 것에 모든 것을 걸고 살아온 그들이 갑자기 아주 작은 이익에 치열한 바깥세상에 쉽게 적응할 순 없는 일이다.
 
게다가 나이도 이미 적지 않다. 벌써 마흔 중반은 훌쩍 넘겼거나 오십 전후일 것이다. 하지만 세상 전혀 모르는 철부지 어린아이와 같다.
 
어느 정도 먹고 살 것은 있다고 치자. 하지만 뭘 해야 될지도 모르고 막연히 기다리면서 등산을 다니거나 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보면 도저히 사는 게 사는 것 같지가 않다.
 
다른 일자리를 찾아보지만 금방 실망하게 된다. 규모가 작은 기업체에 들어가 보니 거긴 자신이 알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그곳만의 험한 룰이 지배하고 있음을 알고 포기하게 된다.
 
제2의 삶을 살아보겠다고 다짐해 보지만 철부지 어린이가 아장아장 걸음마부터 배워야 한다는 사실은 알지 못하고 바로 뭔가 그럴듯한 일을 만들어보고자 한다. 그러면 대부분 실패로 끝난다. 세상 어디 만만한가 말이다.
 
이윽고 자신이 경주마의 삶 또는 유리컵의 삶을 살아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 그러면서 세월이 조금 지나면 팍삭 삭아서 조로(早老)해버리고 예전의 빛나던 눈빛은 사라진다. 그러고도 여전히 이 세상 어떻게 살아가야 할는지 전혀 모르고 멀뚱히 서성거리게 된다.
 
잘 알고 지내는 후배 엘리트들이 뭔가 언짢은 언색이면 뻔하다. 내부 자리싸움이나 승진 게임에서 밀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농담 겸 이렇게 얘기해준다. “이 사람아, 자네 것도 아닌데 뭘 그래. 그건 다 게임이야 게임. 그러니 떠나고 나면 그건 아무 것도 아니야. 정작 중요한 건 자네의 삶이라네”라고 말이다.
 
우리 대한민국 사회, 참 고단한 곳이다. 엘리트는 엘리트 나름으로 힘들고 범용한 사람들 또한 지지고 볶고 하면서 살아간다. 게다가 최근엔 젊은이들 또한 직장이 있는 친구는 직장에서의 현실 적응 때문에 고단해 하고, 직장이 없는 이들은 마치 이번 생을 포기할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바람 불어 하늘이 맑다. 햇빛이 밝으니 화창하다. 청명의 계절이다.
 
김태규의 희희락락호호당
http://www.hohod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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