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는 정책금융 역할을 도맡아 하는 국책은행이 3곳 존재한다. 기업 구조조정을 포함한 산업의 개발·육성을 위한 자금공급을 위해 설립된 한국산업은행, 수출입 등 대외 경제협력에 필요한 금융을 제공하는 한국수출입은행, 중소기업에 대한 자금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중소기업은행 등이다. 설립근거법 상 은행별로 주요 업무를 명시하고 있지만 국가경제 발전 도모 및 국민들의 자금줄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역할에 큰 차이는 없다. 존재의 이유가 국익을 위한다는 측면에서 이들 자체가 곧 국가로 평가되기도 한다. 반대로 이들 은행을 둘러싼 논란은 곧 국익 훼손으로 이어진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최근 기업은행은 해외 지점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방만한 경영행태로 해당 국가 수사기관의 강도 높은 수사를 받았다. 사안 자체가 세계인의 안전을 위협하는 핵개발과 관련돼 있어 문제의 심각성은 더해졌다. 수사 결과가 어찌됐던 국책은행이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됐다는 점에서 국가이미지 타격을 불가피해졌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스카이데일리가 기업은행을 둘러싼 국격 실추 논란과 그 배경 등에 대해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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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K기업은행(이하·기업은행)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해외 지점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국책은행의 본분을 잊은 방만한 경영행태로 국가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가능성이 대두됐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 및 기업은행 등에 따르면 기업은행은 해외 지점에서의 1조원대 불법 무역거래 혐의와 관련해 지난 2014년부터 최근까지 미국 검찰로부터 이란제재법 위반 여부에 대해 조사받아 왔다.
기업은행은 해당 사안의 경우 이미 한국 검찰로부터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는 입장이지만 미국 검찰의 판단에 따라 벌금폭탄을 물거나 최악의 경우엔 뉴욕지점이 폐쇄조치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금융권의 중론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미국 뉴욕 연방지방법원 배심원단으로부터 이란제재법 위반과 금융사기, 공모 등 5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인물이 기업은행 해외 지점을 통해서도 불법 무역거래를 시도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논란은 더해지고 있다.
美검찰 “기업은행 뉴욕지점, 이란 불법 핵자금 송금통로 여부 조사 돌입”
금융권 등에 따르면 기업은행이 미국 검찰로부터 조사받은 사안의 쟁점은 지난 2012년 발생한 1조원대 위장 무역거래가 ‘이란제재법’을 위반했는지 여부다. ‘이란제재법’은 이란의 핵개발을 막기 위해 미국이 주도한 경제 제재를 말한다. 외국 금융기관이 고의적으로 불법적인 금융거래를 할 경우 미국금융시장에서 퇴출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앞서 미국 검찰은 유령회사 앤코래 대표인 재미교포 정모 씨는 기업은행 뉴욕지점 에스크로 계좌를 통해 이란으로 10억달러를 불법 송금한 사건에 대한 수사를 진행했다. 이란이 무역제재를 피하기 위해 자국과 원화 결제시스템이 구축된 기업은행 등 한국의 은행계좌들이 이용됐다고 판단한 결과였다.
특히 이러한 거래를 통해 송금된 돈 중 상당 부분이 핵무기 거래 자금에 사용된 것으로 의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원화 결제시스템’은 미국의 이란 경제제재 이후 한국과 이란의 수출입 대금을 원화로 결제하도록 구축된 시스템이다.
해당 사안은 앞서 2013년 한국 검찰에 의해 한 차례 조사가 이뤄진 바 있다. 그러나 이란과의 사법공조가 원활하지 못해 수사를 확대하지 못하고 일단락 된 바 있다. 당시 한국 검찰은 정모 씨는 불법 송금 등의 혐의로 구속하고 기업은행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분했다. 기업은행의 경우 단순 업무과실이라고 판단했다.
미국 수사당국은 아직까지 수사 결과를 내놓고 있진 않지만 최근 조사를 완료하고 소송 및 사법적 절차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앞서 미국 내 이란 등 경제제재 국가와의 불법금융거래 연루된 은행들이 대부분 강도 높은 처벌을 받았다는 점에서 기업은행도 처벌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가 주를 이루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기업은행이 이란제재법 위반 판결을 받은 인물과도 거래했다는 증언이 제기돼 처벌 가능성에 무게가 더해지고 있다. 지난 1월 미국 뉴욕남부 연방지방법원 배심원단은 터키 국영은행인 할크방크 부사장인 메흐메트 하칸 아틸라를 금융사기와 공모, 이란제재법 위반 등 5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내렸다. 이란계 터키 금 거래상과 공모해 이란이 미국 제재를 따돌리고 에너지 국제거래를 할 수 있게 도운 혐의다.
특히 유죄 판결을 받은 아틸라 할리방크 부사장이 기업은행과도 거래해 왔다는 주장이 제기돼 상당한 파장이 일고 있다. 미국 현지 외신에 따르면 미국 전 중앙정보국 및 재무부 소속인 데이비드 코헨은 “우리는 아틸라 부사장이 기업은행과 거래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이란제재법 위반 해외은행들…벌금 10조원, 퇴출 등 줄줄이 강력 제재
그동안 미국의 이란제재법 위반 혐의로 징계를 받은 금융회사는 막대한 벌금을 부과받거나 아예 미국 금융시스템 접근이 차단돼 퇴출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지난 2014년 프랑스 BNP파리바은행은 이란 등과 1900억달러를 거래했다는 이유로 미국 검찰 조사를 받은 후 미국 정부에 벌금 89억달러를 물어야 했다. 한화로 무려 10조원이 넘는 금액이다.
파키스탄 최대은행인 하비브은행은 테러활동을 지원하는 자금 창구 역할을 했다는 혐의로 뉴욕 금융감독청(DFS)으로부터 2억2500만달러(한화·약2400억원)의 벌금을 부과받은 뒤 퇴출당하기도 했다.
지난달에도 라트비아 ABLV 은행이 북한 불법자금 돈세탁 등 대북제재를 위반한 혐의로 미국 재무부 산하 금융범죄단속반(FinCEN)으로부터 미국금융시장에서 퇴출당했다. 벌금 납부를 거부하거나 퇴출 처분을 받게되면 달러 결제 업무는 물론 미국 은행과 거래할 수 없게 돼 은행으로서 막대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실제로 라트비아 ABLV은행은 퇴출 처분받은 이후 파산 위기에 직면했다고 유럽중앙은행 은행감독위원회이 밝혔다. 예금 이탈자로 인해 가용 자금 확보에 큰 어려움을 겪게되면서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처했다는 설명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업은행이 한국 검찰로부터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해도 미국 정부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내놓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앞서 프랑스 BNP파리바는 이란제재법 위반 혐의로 미국 정부에 89억달러의 벌금을 물어야 했지만 정작 프랑스나 유럽 법률에는 전혀 문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금융당국 한 고위급 인사는 “미국 검찰이 기업은행의 이란제재법 위반 혐의 조사를 계속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면서도 “최근 미국 감독당국이 대만이나 일본, 중국 등 징계를 강화하고 있는 만큼 기업은행이 벌금을 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이어 “기업은행이 설령 무혐의 판정을 받더라도 우리나라 국책은행이 의심어린 행동으로 미국 정부의 조사를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국가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혔다고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임현범 기자 / 시각이 다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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