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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충남 홍성엘 갔다. 14일부터 16일까지 홍성읍성서 열리는 홍성역사인물축제 보기 위해서다. 홍성역사인물축제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정한 대한민국 육성축제 중 하나로 공식적인 현장 평가가 이뤄진다. 필자는 현장평가위원으로 2박3일간 머물면서 축제가 주제에 걸맞고 계획된 프로그램대로 진행되는지를 꼼꼼하게 살폈다.
평가 첫날은 암행평가와 둘째 날은 담당 공무원의 조력을 받아 진행할 수 있었지만 서로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계속 혼자 다녔다. 따라서 숙식을 홀로 해결해야 했는데, 잠자리는 편해도 식사는 침묵 속에서 하는 발우공양 같아서 달갑지 않았다. 다행이 좋은 식당과 인연이 닿아 내내 즐거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축제는 둥그렇게 성벽으로 둘러싸인 홍주읍성 안에서 진행됐다. 올해는 탄생 600주년이 된 성삼문이 주제인물로 부각됐다. 읍성 한가운데는 팔각정이 위치해 있다. 이곳에서 이번 식사 주인공인 만화가 천명기(49) 씨를 만났다. 천 작가는 팔각정에서 축제 관람객들에게 캐리커처를 그려주고 있었다. 축제 콘텐츠 중 하나였기 때문에 유심히 살펴보다가 필자도 천 작가 앞에 턱 하니 앉았다.
홍성역사인물축제서 만난 인연으로 점심 식사 겸상
생전 처음 캐리커처 작가 앞에 앉은 터라 시선을 어디다 둬야할지 고민했다. 작가 눈을 쳐다보자니 부라리는 것 같고 해서 찾은 게 인중이다. 인중을 한참 쳐다보고 있으려니 지우개를 들고 그림을 정리하고 슬며시 건넸다. 받아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역시 고수의 솜씨였다. 천 작가 페이스북에 그가 그려준 캐리커처 사진과 함께 감사인사를 올렸다. 천 작가는 댓글로 처음 만났을 때 느낌을 다음과 같이 써 놨다.
“갑자기 포스 넘치는 분이 앞에 앉기에 순간 저어했습니다만, 그만한 저어의 이유가 있었네요. 여기까지 찾아주시고 암튼 감사드립니다. 당일 새벽 장거리 이동으로 컨디션이 영 ‘메롱’이었던지라 그리는 동안 저대로는 ‘이기 아닌데...’하면서 마무리 한 거라 영 거시기 했는데 다 치우고 좋게 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두루두루 연 닿는 지점이 많을 듯 하네요. 내도록 강녕하시소.”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로 맺으면서 다음을 기약했고 그 때문인지 축제 마지막 날 저절로 팔각정으로 발길이 갔다. 천 작가 뒤에서 아이들 얼굴을 그리는 모습을 한참 지켜봤다. 인물의 특성을 잡아내려는 진지한 모습이 느껴졌다. 보통 분이 아니구나 싶었는데, 역시나 지방 일간신문 만평화백 출신이었다.
국문학도 출신이라 글재주도 겸비…부산일보 만평도 그려
축제 내내 비가 오락가락했다. 어수선한 가운데 축제 관계자들과 관람객 모두 최선을 다해 축제를 보여주고 즐기는 듯 했다. 몇 가지 평가기준에 미흡한 부분이 있었지만 악천후라는 변수를 넣으면 무난하단 답이 나올 정도였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나서 팔각정을 다시 찾았다. 전날 페이스북을 통해 ‘일합’을 나눈터라 편하게 만날 수 있었다. 박재동, 이동수 화백 등 어쭙잖게 알고 있는 시사만화계 중진 몇 분을 들먹이며 족보를 내밀었다. 물론 다 통할 분들이란 걸 미리 알고 있었다.
천 작가는 1995년 ‘주간만화’를 통해 데뷔했고 부산일보에서 만평을 그렸다. 이후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코믹한 화풍과 꼼꼼한 묘사력을 가진 작가로 이름을 알렸다. 특히 대구 영남대 국문과에서 현대문학을 전공한 국문학도란 배경으로 시사성과 서사, 묘사가 탁월하단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경북 경산시에 살면서 전국을 무대로 활동하고 있다. 이번 축제에는 홍성역사인물축제위원회가 콘텐츠 다양성을 위해 천 작가를 초대해서 참여하게 된 것이다.
페이스북서 어머니에 대한 글 시작…노모에 대한 기록 남기기로
국문학 전공자답게 만화 속 말풍선에 담긴 글이 가지런하고 때론 해학이 넘친다. 페이스북에 올린 글도 속편이 기대되는 흥미진진한 것이 있다. 최근에는 천 작가 어머니를 소개한 글을 올려 페이스북 친구들을 감동케 했다. 너무 재미있어서 그 중 일부를 옮겨본다. 제목은 ‘1934년생 내 어무이 박두순 여사’다.
“아무데서나 ‘우리 땅 밟고 지나가지 말라’ 해버리면 경주시 서면 내 사람들이 오지도가지도 못했다 할 정도의 지주의 둘 째 딸로 나셨으니 금수저도 그런 금수저도 없을진대, 가끔 주워들어 짜깁기 해 본 당신 인생사는 그야말로 ‘아크로바틱’ 그 자체다.
대개 그만한 지주가문 둘째 딸이었으면 인성의 결이나 사가지 장착여부는 일단 그렇다 쳐도, 최소 정유라나 조현아 급 호사를 성장기 내도록 누렸음직 한데, 울 엄니 성장기에는 참기름에 계란을 부어 들이켰대도 목이 메는 측은사연만 항금이다.
당신 집안 대를 이을 ‘고추’ 손이 그리 귀했고, 맏며느리에 뒀던 떡두꺼비 장손의 기대를 내리 두 딸 출산으로 무산시켜 버린 쾌심이 암만 크게 일었대도, 차라리 그 마음 그대로, 그 시대 그만한 집안 형편과 가치관으로야 그닥 문제 될 바 없었던 첩이나 씨받이를 들여서라도 대 이을 ‘고추’ 손을 구했으면 그만이었을 것을.
당시 울 어무이의 할머니는 울 어무이의 어무이, 그러니까 내게는 친 외할무이 되시는 그 분께 내리 두 딸을 낳은 죄(?)를 ‘야반 소박’으로 물어 버렸고, 그 바람에 면내 최대 지주가 둘째 딸이고 나발이고 울 어무이 박두순 여사는 채 젖도 떼기 전인 3살 때, 실존적으로는 더 할 나위 없이 불쌍한 어미 없는 반 고아로 전 인생을 시작하시었다.
결국 울 어무이 박두순 여사는 사진으로나 실물로나 평생 당신 친 어무이 얼굴을 한 번도 못 뵀고, 이십여 년 전쯤에 당신 어머니가 서면에서 불과 4킬로 남짓한 북안면 어디선가 평생을 홀로 살다 돌아가셨다는 내역을 풍문으로 들었노라 덤덤히 말씀하시었다.(중략)
어무이와 여덟 살 터울 열여섯 나이로 시집 온 그 새 어무이는 이후 내리, 무려 네 명의 딸을 낳았음에도 소박은커녕 진즉에 곳간열쇠를 물려받아 그 엄청난 지주가문 안방마님의 지위를 평생 누리는 호사를 누리셨으면 좀 좋았을까마는, 새 어무이 인생사도 남달리 박하고 아방가르드 하기 그지없었다.
내리 낳은 네 딸 중에 하나는 9살 때, 하나는 열여섯 무렵에 각각 병사와 우울증 자살이라는 자식 앞세운 고통을 평생 품고 견디셔야 했고, 내 외 할아부지에게서 고스란히 물려받은 그 많은 땅과 재산을 네 딸 끝에 얻은 막내아들이 죄다 홀라당 말아먹고 중국으로 튀어 버리는 바람에 90넘어 돌아가시기 직전의 30년을 생활보호 대상자로 여느 농가 과수원 농막의 방한 칸을 빌어 쓸쓸히 사시다가 6년여 전에 돌아가시었다.“(후략)
한겨레신문 만평 그렸던 박재동 화백도 “그림 좋아졌다” 평가
천 작가의 페친들은 후속작을 기대한다며 응원 댓글을 이어갔고 천 작가는 기약 없는 어느 날 두 번째 이야기를 쓰겠노라고 약속해 놓은 터다. 천 작가는 “노모에 대한 추억을 글로 남기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며 필자에게도 권했다.
그림에 글재주까지 겸비했고 역사와 인문학에도 해박한 만화가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한겨레신문 만평으로 시사만화계 위상을 높였던 박재동 화백도 천 화백이 그린 필자의 캐리커처를 보고 “그림이 좋아졌다”고 평가했다.
그는 지금 지역신문인 경산신문에 만평과 4컷 만화를 연재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몇몇 출판사와 만화책을 엮기로 했고 연재물도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올해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만화가 이외 생업전선에 뛰어들어 ‘외도’를 했기에 그의 전업선언은 의미 있게 다가온다. 천 작가를 쉽게 다시 만날 수 없어도 책과 지면을 통해 그의 활동상을 자주 접할 수 있으면 좋겠다. 부디 건필하시라.
| 칼국수와 파전이 일품인 홍성 맛집 ‘성마루’ |
홍성에서 우연찮게 인연이 된 천명기 작가와 축제 마지막 날 점심 식사를 같이 했다. 그에게 꼭 맛보여주고 싶은 음식점이 있었다.
홍주읍성 북쪽 홍주군청 뒤편 조양로에 위치한 ‘성마루’라는 손칼국수집이다. 필자는 2박3일 동안 홍성에 머물면서 여섯 끼 중 네 끼를 이 집서 해결했을 정도로 맛에 푹 빠졌다.
음식 맛도 맛이려니와 김경희 사장의 음식과 식당업에 대한 남다른 열정 때문에 자주 찾게 된 것이다. 한국무용을 오랫동안 전공했다는 김 시장은 모든 음식을 손수 만든다.
밑반찬부터 칼국수, 심지어 파전까지 도맡아 부친다. 축제기간이라 아르바이트를 쓴 것이지 평시에는 혼자 한다고 했다. 그러니 혼자 일하는 게 몸에 밴 상태. 어찌나 몸이 가벼운지 주방과 홀을 ‘날아다닌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종횡무진이다. 첫날 홍성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으러 찾았고 마지막 날 천 작가와 점심을 먹은 집이다. 첫날 저녁에는 새 메뉴로 도입하려는 우거지돼지내장탕을 먹었고 둘째 날 저녁에는 칼국수와 파전을 맛 봤다.
둘째 날 점심은 홍성상설시장인 ‘미래로’(美來路)에 있는 포항집에서 소머리국밥을 먹었다. 홍성이 워낙 소고기와 소머리국밥이 유명한 터라 수소문 끝에 찾아간 집이다. 둘째 날 저녁은 축제장 한우먹거리촌에서 혼자 소고기를 구워먹고 성마루에 입가심을 하기 위해 찾아 갔다. 이날은 저녁을 두끼 먹은 셈이다.
누릿한 소고기 냄새를 손칼국수 육수로 깔끔하게 잡고 싶었다. 홍성은 바다를 접한 도시라 해산물이 풍부하다. 그래서 육수에도 멸치, 디포리 등 건어물이 풍성하게 들어간다. 칼국수 면은 주문이 들어오면 반죽을 늘리고 면발을 뽑는다. 그래서 식감이 ‘탱글’하고 육수는 농후하다.
갖은 야채를 가지런하게 채를 썰어 내놓는 파전은 가성비가 매우 뛰어나다. 음식을 좀 아는 사람이 보면 정성이 많이 담긴 것을 느낄 수 있다. 지역 막걸리인 내포생막걸리와 홍주생막걸리와 조화도 좋다.
소머리국밥이 넘쳐나는 지역에서 우거지돼지내장탕을 메뉴로 추가하는 발상이 좋다. 아직도 외식업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모습을 보면서 성마루가 홍성가면 꼭 맛봐야할 맛집 중 하나로 등극할 날이 머지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필자가 주제넘게 외식업에 대해 몇 마디 한 데 대해 김 사장은 많은 도움이 됐다며 몇 번이고 감사를 표하는 겸손함을 보였다. 실력에 부지런함과 겸양까지 갖췄으니 더 무엇이 필요할까. 부디 건승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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