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무드 조성 움직임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또 다시 자국 우선주의 카드를 꺼내들면서 부터다. 트럼프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러시아와 맺고 있는 ‘중거리 핵전력 조약(Intermediate-Range Nuclear Forces Treaty, INF)’ 탈퇴 의사를 피력한데 이어 22일(현지시간) 재차 확인했다.
강력한 고 관세 정책을 통해 중국을 압박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엔 러시아는 물론 중국과의 미사일 증강 대결도 불사하겠다고 나서면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북·미 간 ‘북한 비핵화’ 협상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美, 러·중 겨냥한 INF 탈퇴 압박…군비경쟁 전개 가능성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러시아를 포함한 세계 각국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INF 탈퇴를 결정한데는 중국과의 경쟁을 의식한 결과로 분석된다. 세계 패권을 놓고 다투고 있는 중국의 군사력 증강을 견제해야 할 시점이 지금이라는 판단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INF는 지난 1987년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옛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공산당 서기장이 기존의 500km~5500km(300~3400 마일) 중단거리 미사일을 폐기하고 생산을 금지키로 한 조약이다.
조약 당시 미국이 보유한 ‘퍼싱-2(준중거리 탄도 미사일)’와 소련의 ‘SS-20(중거리 탄도 핵미사일)’ 미사일 등은 모두 사거리가 짧고 속도가 빨라 양국 모두 선제 핵공격을 당할 수 있는 위협대상이었다. 당시 양국은 이를 폐기하기로 합의함으로서 ‘냉전시대를 종식’이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러시아는 2003년 순항 미사일 ‘이스칸데르’ 개발에 이어 지난해에는 사거리 2000km 미사일을 실전배치 했다. 미국도 손 놓고 있지만은 않았다. 2016년 루마니아에 지상형 이지스 BMD(탄도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구축하고 유럽 MD(미사일 방어) 체계구축을 추진했다. 이후 현재까지 양국은 서로 ‘INF를 위반하고 있다’며 비난전을 벌여왔다.
다수의 전문가들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INF 탈퇴 발표는 러시아의 미사일 실전배치를 견제하고 중국의 중거리 미사일 전력증강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중국을 포함한 새로운 ‘미·중·러 INF’가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러시아·중국의 ‘군비증강’ 움직임을 제어해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보다 공고히 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는 설명이다.
미국은 현재 중국이 보유하고 있는 1400~1800기의 미사일 중 90%가 중거리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항공모함 킬러’로 불리는 중국의 탄도미사일의 개발에 대해 우려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지난해 4월, 해리 해리스(Harry Harris) 당시 미 태평양사령관은 의회 청문회에서 “이 조약은 중국과 다른 국가들이 보유하고 있는 크루즈와 지상 미사일에 대한 미국의 대응책을 제한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의 INF 탈퇴 방침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 최근에는 유럽 국가들과 미 의회도 비판 대열에 합류하는 추세다. 미 의회는 “러시아의 INF조약 위반을 인정하면서도 포괄적 전략 없이 의회나 우방국들과 상의하지 않은 채 INF 탈퇴를 결정하는 것은 미국의 장기적인 국가 안보 이익을 위협할 것이다“고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제사회는 한반도에서 동중국해, 대만, 남중국해, 인도양 등에 이르는 미국의 봉쇄전략에 맞서고 있는 중국이 미국의 의도대로 새로운 INF에 동의할 가능성이 적은 만큼 향후 미·중·러 간 군비 확충 경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우려하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INF 탈퇴가 오히려 러시아와 중국의 미사일 증강을 도와주는 결과를 낳을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강대국들의 미사일 개발경쟁을 억제해 온 ‘INF’라는 빗장이 풀림에 따라 러시아는 제약 없이 순항미사일과 중거리 탄도미사일 개발과 배치할 것이라는 해석이다.
미국 CNN은 21일(현지시간) 스티브 파이퍼(Steven Pifer) 브루킹스 연구소 선임연구원의 말을 인용해 “미국이 INF 조약에서 탈퇴하면 유사한 미사일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군비경쟁이 촉진될 것이다”면서 “이에 미국의 철수가 사실상 러시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이어 “러시아 당국자들은 아마도 이 소식을 축하하고 있을 것이다”며 “모스크바는 아무런 제약 없이 9M729 순항미사일과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자유롭게 배치할 수 있을 것이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중국은 미사일 개발에 집중 투자했다”며 “중국이 INF 조약에 가입한다면 약 2000개의 탄도 미사일과 크루즈 미사일 중 95%가 위반될 것이다”고 강조했다.
“미·중·러 힘겨루기에 한반도 평화무드 조성 움직임 타격 우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INF 탈퇴 발표로 인해 한반도 평화무드 조성 움직임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중·러 군비경쟁이 ‘북한 비핵화’ 협상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미 국무부 대변인을 지낸 CNN 군사·외교 분석가 존 커비(John Kirby)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INF 탈퇴 결정은 북한과 이란의 미사일 비축량을 줄이기 위한 노력에 대해 ‘협상 테이블에서 우리의 신뢰도를 떨어뜨릴 것이다”고 지적했다. 미국 민주당 고위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INF 탈퇴’를 거론함으로서 ‘북한 비핵화’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이러한 우려를 일축했다. 최근 ‘미국의 소리(VOA)’와의 인터뷰에서 “날짜가 정해지지 않았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모두에게 적합한 날짜와 시간, 장소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비핵화를 향한 큰 진전이 될 수 있도록 일주일 반 쯤 뒤에 북한 측 파트너와 고위급 회담을 갖고 이 문제를 논의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2주 전 김정은 위원장을 만났을 때도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했다”며 “김 위원장은 6월 12일 싱가포르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 약속을 지키고 있고 우리는 북한 주민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가져다줄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것이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이를 달성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결심한 상태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지난 20일 중간선거 유세에서 북한 문제를 거론하며 “다 잘 될 것이다”며 “여유를 가져라”라고 거듭 말하기도 했다.
우리 정부는 일단 미국의 ‘INF 탈퇴’ 관련 상황을 지켜보면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다자 외교에 집중하다는 계획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11월 열리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ASEAN) 회의를 통해 ‘북한 비핵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폭넓은 지지를 이끌어 내는데 포커스를 맞춰놓고 있다.
지난 21일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미국을 방문, 비건 특별대표 등과 북·미 정상회담 관련사항에 대해 협의를 진행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남북 철도 연결 등 남북교류 사업과 지난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 추진도 주요 사안이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의 INF 탈퇴로 인한 미·중·러 군비 증강 현실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정부의 ‘한반도 비핵화’ 로드맵에 타격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는 해석이 국내 정치권 안팎에서 흘러나온다.
국회 고위 관계자는 “북·미 대화가 현재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지만 언제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며 “세계정세가 강대국들 간에 힘 대결양상으로 전개된다면 국제사회는 양쪽으로 갈라질 것이고 이는 우리에게 결코 좋은 환경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김진강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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