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버 여행기’ 작가로 유명한 아일랜드 풍자소설가 조나단 스위프트는 “굴을 가장 먼저 먹은 사람은 용기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과연 그는 누구일까. 고고학자들이 그 유사한 답을 찾아냈다.
애리조나주립대 문화인류학자 커티스 마린은 남아프리카 한 동굴에서 16만년 전에 조개류 식사를 한 흔적을 발견하고 학계에 보고했다. 이 시기는 현생 인류로 진화한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할 무렵이다. 물론 정확하게 굴은 아니고 조개류다. 고래 껍질에 붙어사는 고래따개비 껍질이 나온 것이다.
조나단 스위프트가 말한 ‘용기’는 굴의 외형 때문에 나온 듯하다. 껍질만 봐서는 어느 누구도 그 안에 맛난 먹거리가 들어 있을 것이라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껍질이 벌어지고 굴이 보여도 감히 먹을 용기가 생기질 않았으리라.
서양에서는 영어의 알파벳 알(R)이 없는 달은 굴을 먹지 않았다. May, June, July, August 등 5월부터 8월까지다. 이 시기는 굴이 산란기라 영양분도 줄고 독소가 생긴다. 게다가 계절로 치면 동서양 공히 더운 날이다. 가공하지 않은 생물이 상하기 쉬운 때다. 그래서 먹기를 자제했다는데 나름 재미난 해석이다.
서양 사람들 ‘R’ 없는 달엔 식용 금기시
한국연근해 유용연체동물도감에 따르면 우리가 주로 먹는 참굴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연안, 발해만, 홍콩, 일본(홋카이도), 캄차카반도 등에 분포하고 주로 조간대 암반에 붙어서 약간의 담수 영향이 있는 곳에서 잘 산다. 모양은 원추형이나 가지모양으로 껍질에 성장선이 나타난다. 서식 환경에 따라 껍질 모양이 달라지는 데, 조간대(썰물 때 노출되는 지역)에 사는 것은 원추형, 물살이 센 곳 또는 내만 개펄에 사는 것은 모양이 길어진다.
우리나라에서는 남서해안 일대서 광범위 하게 양식을 하고 있다. 이 중 경남의 생산량이 전체 약 80%를 차지한다. 경남 지역에서는 통영을 위시해 고성, 거제, 남해, 사천, 마산 등이 주산지다. 전남은 여수, 고흥, 진도, 완도, 충남은 태안, 서산 등에서 많이 양식한다. 인천, 경기, 강원 등지에서도 조금씩 키우고 있다.
거제~한산만, 자란~사량 해역, 산양 해역, 가막만, 나로도 해역, 창선 해역, 강진만 등 7개 해역만이 수출지정해역으로 지정돼 있다. 우리나라 최초 굴 양식은 1897년 원산만 부근에서 살포식으로 이루어졌다. 현재 굴양식은 대부분 수하식으로 1962년부터 본격적으로 보급됐다. 죽은 굴 껍데기를 줄에 꿰어 길게 물밑으로 드리우는 것이 수하식이다.
선사시대 조개더미에서 굴 껍데기가 많이 출토된 사실을 보면 굴이 식용으로 이용된 역사는 오래됐다. 우리 기록상으로는 1454년 단종 2년 공물용으로 생산한 기록이 처음이다. 조선 중기 인문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강원도를 제외한 7도의 토산물로 기록돼 있다. 서유구의 전어지, 정약전의 자산어보 등에는 형태에 관한 기록이 있을 정도로 한국인들이 사랑한 식재료다.
서양에선 ‘바다의 우유’, 우리는 ‘바다의 산삼’
굴은 한자어로 모려(牡蠣)·석화(石花) 등으로 표기한다. 모려는 한의원 한약장에 가면 볼 수 있다. 한약장 서랍을 열면 하얗고 고운 가루가 나온다. 굴 껍질을 곱게 간 것이다. 용골이란 한약재와 함께 쓰이는 처방이 많다. 허준이 쓴 동의보감에는 ‘굴은 바다 어물 중에서 가장 귀한 것이며, 먹으면 향미(香味)가 있고 보익(補益)하며 피부를 아름답게 하고 안색을 좋게 한다’고 적혀 있다. 우리나라에서 서식하는 굴 종류는 참굴, 강굴, 바윗굴, 털굴, 벗굴 등 5종이다. 이 가운데 참굴이 가장 많이 유통된다.
서양 사람들은 굴을 ‘바다의 우유’라고 했다. 몸에 좋은 강장제란 시각에서 해석한 것이다. 희대의 바람둥이 카사노바, ‘정력’적인 삶을 산 것으로 유명한 나폴레옹이 모두 굴 마니아였단 사실은 굴 이야기를 할 때 빠지지 않고 회자된다.
실제로 굴 안에는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생성에 관여하는 아미노산과 아연(Zn)이 다량 함유돼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바다의 인삼’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굴에는 아연뿐 아니라 셀레늄, 철분, 칼슘은 물론 비타민 A‧D 등 영양의 보고다.
보령시, 천북굴축제 만들어 산업관광 자원화 성공
충남 보령시는 굴을 상업화시키는데 가장 적극적인 고장이다. 천북지역은 조수간만 차가 커서 성장은 느리지만 맛과 영양이 좋은 천북굴 산지다. 굴은 조수간만으로 인해 물과 볕에 노출됨으로써 생존을 위해 영양을 최대치로 끌어 올린다. 이를 숯불에 구워먹는 맛이 일품이다. 천북면 장은리 굴단지 내에는 자연굴구이 집만 80여 곳이 성업 중이다.
천북굴단지는 홍성방조제 완공 이후 90년대 초부터 마을 사람들이 가족단위로 소규모 식당을 차려 석화구이를 팔기 시작하면서 형성됐다. 초기에는 숯불에 구워먹는 석화구이가 주 메뉴였지만 굴회, 굴찜, 굴밥 등 다양한 메뉴가 개발됐다. 홍성방조제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장은리와 사호리 일대 해변에는 자연산 굴이 지천으로 났던 곳이다.
보령시는 12월에 이곳에서 ‘천북굴축제’를 벌이는 등 여름 보령머드축제와 더불어 ‘夏머드冬굴’로 축제를 통한 지역 관광산업을 활성화하고 있다. 가을철부터 살이 오르면서 굴 향이 살아나는 11월부터 천북굴단지는 들썩인다. 여세를 몰아 12월 중순에 축제를 열어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다.
이 밖에 전국적으로 남해 설천참굴축제(12.29~2020.1.2), 3월에 열리는 통영 한려수도굴축제가 유명하다. 필자는 몇해 전 충남 홍성 용봉산 등산 후 천북굴단지까지 30km를 달려가 굴찜과 굴구이를 먹어 본 적이 있다. 굴의 육즙과 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메뉴들이다. 찬바람이 불면 향부터 생각나는 맛이다.
굴은 날것으로 먹을 때 맛 ‘뚜렷’…선도 떨어지면 굴전
당산역 근처 <이조보쌈>은 굴 보쌈이 유명하다. 한 여름에도 대기를 해야 할 정도다. 이 집의 또하나의 명물은 청국장이다. 콩이 듬뿍 담겨 있고 냄새가 제법 콤콤한게 요즘 서울서 쉽게 맛보기 힘든 ‘강도’ 높은 청국장이다. 향긋한 굴과 수육, 김치, 무김치를 조합해 한보시기 입에 넣고 우물거리면 재료들이 맛있게 섞이면서 막걸리 한 사발을 부른다.
굴, 조개, 홍합 등 연체동물의 맛은 날것일 때 맛이 더 뚜렷하다. 이러한 맛은 외부 염도와 균형을 맞추기 위해 몸속에 축적한 맛 물질 때문이다. 굴을 비롯한 연체동물 대부분은 아미노산을 이용해 삼투압 균형을 잡는다. 껍질이 쌍을 이뤄진 쌍각류는 글루탐산염이 풍부하다. 특히 이들은 에너지원을 지방으로 저장하지 않고 아미노산류(類)로 저장함으로써 단맛을 낸다. 굴이 산란기가 오면 맛이 떨어지는 이유가 산란을 위해 비축한 에너지원을 죄다 소모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가끔 집에서 굴전을 부쳐 먹는다. 생굴을 사다가 먹고 남으면 냉장고에 보관하는데, 몇일 지나면 생으로 먹기 찜찜해 진다. 그럴 땐 물에 한번 씻어서 튀김가루를 묻혀 계란 옷을 입힌 후 중불에 살살 부쳐내면 굴향이 적당한 굴전을 맛볼 수 있다. 사실 굴을 익히면 맛이 날것만 못하다. 열에 의해 아미노산 일부가 응고된 단백질 그물조직 속에 갇혀 미각이 닿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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