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공적자금을 운영하는 국민연금공단(국민연금)의 행보가 물의를 빚고 있다. 국민연금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상장사들에 대해 일관성 없이 각기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다. 일부 기업에 대해서는 경영개입을 본격화하려는 한편 또 다른 기업에 대해서는 수수방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민연금이 수수방관하는 기업 중에는 외국계 기업이 속해 있어 국민연금이 ‘외국자본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에쓰오일이 대표적이다.
국민연금 상장사 56곳 경영개입 본격화…전문가들 “자본시장 왜곡·경제발전 저해” 지적
주요 대기업들의 주주총회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최근 국민연금은 상장사 56곳의 지분보유 목적을 ‘단순투자’에서 ‘일반투자’로 변경했다. 일반투자 목적으로 지분을 보유할 경우 해당 기업에 배당이나 지배구조 개선 등을 요구할 수 있다.
이번 조치는 지난해 8월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5% 룰(주식 대량 보유 보고 의무)’ 완화 방안이 이달부터 시행된 데 따른 조치로 해석된다. 5% 룰은 특정 기업 지분을 5% 이상 보유할 경우 보유 현황 및 목적 등을 자세히 보고해야 하는 제도다.
지난해 말 기금운용위원회는 ‘적극적 주주권 행사 가이드라인’을 의결했다. 이를 바탕으로 국민연금은 경영진의 횡령·배임 등 법률 위반, 배당 정책, 사회책임형 투자 등 사안에서 기업 가치가 훼손됐다고 판단될 경우 주주 제안을 통해 정관변경·이사해임 등의 주주권 행사가 가능해졌다.
국민연금은 국민들의 노후자금 운영을 명분 삼아 주요 기업들의 지분을 다량 확보한 상태다. 삼성전자(10.69%)를 비롯해 현대자동차(10.46%), SK(7.45%), LG(7.64%), CJ(8.48%), 한화(9.29%), 대한항공(10.99%) 등 국내 내로라하는 기업들의 지분을 상당 수 보유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마음만 먹으면 주요 기업의 경영권을 흔들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가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나아가 경제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특히 주주권 행사 기준이 뚜렷하지 않고 정부 의도에 맞추려는 경향이 강하다 보니 기업의 지배구조 등을 왜곡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최승노 자유기업원장은 “정부가 국민연금을 통제하고 있다는 점에 비춰보면 결국 정치적으로 경영권 간섭을 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며 “주주권 행사 기준이 자의적인 측면이 강하다는 점은 특히 걱정되는 부분이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연금이 정치에 휘둘려 기업의 경영권을 위협하는 행위는 건강한 자본시장을 위축시키고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행위다”며 “기업의 일은 기업에 맡기고 국민연금도 경영권 개입보다는 본연의 일에 집중하는 게 경제 발전과 국민연금 수익률 개선을 위한 지름길이다”고 조언했다.
한진그룹 오너일가 몰아낸 국민연금 외국자본 에쓰오일엔 팔짱…“특정기업 봐주기” 분분
국민연금의 경영권 침해 논란이 확산되는 가운데 주주권 행사 기준이 명확치 않다는 점도 도마 위에 올랐다. 특정기업에 가혹한 잣대를 들이미는 반면 다른 기업엔 유독 관대한 태도를 보인다는 지적이다. 특히 국민연금은 유독 외국계자본 소유 기업엔 관대한 모습을 보여 거센 비판을 사고 있다.
일례로 에쓰오일은 지난해 최고경영자(CEO)의 성추행 논란이 불거지며 비판을 샀지만 국민연금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 오너리스크가 불거진 한진그룹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던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었다. 당시 국민연금이 적극적 주주권은 행사한 결과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대한항공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난 바 있다.
이달 초 기준 국민연금은 에쓰오일의 지분 6.91%를 보유한 것으로 집계됐다. 최대주주로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석유사 아람코(Aramco Overseas Company B.V.)를 빼면 가장 높은 지분율이다. 충분히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국민연금이 에쓰오일을 의도적으로 봐주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져 나오는 배경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올해 에쓰오일 주주총회엔 더욱 많은 관심이 모아진다. 지난해 부진한 실적을 보인 에쓰오일에 대한 국민연금의 과감한 조치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에쓰오일은 지난해 전년 대비 29.8% 감소한 4492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당기순이익도 865억원에 머무르며 전년 대비 66.5%나 급감했다. 매출액은 24조3942억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4.2% 줄었다.
일각에서는 국민연금의 외국자본 봐주기 논란은 과도하게 돈벌이에만 열중한 결과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공적자금을 운영하는 주체로서 한국경제 전반에 어느 정도 기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수익에만 몰두한 나머지 고배당을 일삼는 외국자본에 관대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에쓰오일은 과거부터 ‘배당잔치’를 벌여온 기업으로 꼽힌다. 일례로 2016년과 2017년 결산배당을 통해 각각 보통주 기준 6200원, 5900원 등의 주당 배당금을 지급했다. 당시 배당금 총액은 각각 7219억원, 6870억원으로 배당성향은 무려 59.89%, 55.11%에 달했다. 에쓰오일 측은 이번 결산 배당도 30% 수준의 배당성향을 유지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경제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국민연금은 개별 기업별로 상이한 투자정책을 펼친다는 명분을 앞세워 주주권 행사에 명확한 기준을 세우지 않고 있다”며 “국민연금이 기업별 지분율 등을 바탕으로 수익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주주권 행사에 나서는 것은 인정하지만 지나치게 수익에 매몰돼 한국경제 전체에 피해가 가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강주현 기자 / 시각이 다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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