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가 진정될 기미가 없다. 뉴스를 보니 코로나 확진자가 이젠 전국 모든 지역에서 발생했다고 한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한 질병이 걷잡을 수없이 번져가고 있으며, 그 심각성을 내가 사는 동네에서도 실감한다. 가게마다 손님들이 확연하게 줄었고, 거리에는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 삶이 불편해진 것을 말 그대로 피부로 느끼고 있다.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 사태 같은 상황을 문학에서 다룬 적이 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포르투갈 작가 주제 사라마구가 있는데, 그는 어느 날 만일 모든 사람들이 눈이 멀고 한 사람만 볼 수 있다면 이 세상은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 이야기를 소설로 풀어냈는데, 바로 ‘눈먼 자들의 도시’다.
소설의 첫 장에 보면 사거리에서 한 운전자가 신호를 기다리다가 눈이 멀게 되었다. 도움을 청하는 그를 한 남자가 그의 집까지 데려다 주는데, 착한 사마리아인 같던 그가 눈이 갑자기 멀게 된 남자의 차를 훔쳐 갔다. 실명한 남자의 아내가 남편의 상태를 안 뒤 안과 의사를 찾아가 진찰을 받게 한다. 자동차 도둑, 안과 의사가 모두 전염된 듯 눈이 멀게 된다.
경찰관이 눈이 먼 자동차 도둑을 집에 데려다 주는데 그 경찰관도 눈이 멀고 만다. 첫 실명자 → 그를 집에까지 데려다 준 남자(자동차 도둑) → 경찰관으로 실명을 감염시켰고, 동시에 첫 실명자는 → 안과 의사를 감염시키게 된다. 안과 의사는 실명이 전염된다는 사실을 알아챘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시에서도 실명한 확진자들을 즉시 정신병원에 격리시킨다.
실명이 전염된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온 도시가 공포에 휩싸인다. 겁에 질린 군인들은 눈이 먼 자들을 통제하기 어려워지자 사살하고 만다. 눈이 먼 실명 확진자 240명(실제론 260명)은 병원에서 고통을 당한다. 이젠 아무도 그들을 도우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부딪힌 첫 번째 고통은 용변을 보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복도와 통로를 모두 변소로 만들어버렸다.
처음에는 용변을 그곳에 보는 것이 예외였지만 곧 습관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아무도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서슴없이 아무 곳에서나 용변을 보았다. 사람들은 옆 사람을 아랑곳하지 않고 가래를 뱉었고 방귀를 뀌어대기 시작했다. 온전한 인간답게 살지 못하면 적어도 동물처럼 살지는 않도록 해야 하는데 실명이라는 극한상황이 터지자 숨겨졌던 본성이 드러났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우리 몸에서 그래도 영혼이 남아 있는 곳이 있다면 그게 바로 눈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정신병원에 수용된 확진자 중 단 한 사람만 볼 수 있다. 바로 의사 아내이다. 그는 남편을 지켜주기 위해 실명한 것처럼 거짓말해서 들어왔다. 그녀가 바라보는 정신병원은 꼭 세상의 축소판 같았다.
정신병원에서 눈은 안 보여도 주먹을 쓰는 자들은 음식을 독점하여 그것을 빌미로 다른 확진자들을 위협한다. 정직한 자들이건 불의한 자들이건 실명은 그들 안에 감춰진 것들을 드러낸다. 다들 자신들이 눈이 멀었기에 이곳은 격리된 곳이기에 그들을 지켜보는 눈―안과 의사 아내―이 있으리라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충격으로 다가온 문장은 이것이다.
인간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악에서도 선이 나오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그러나 선에서도 악이 나올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야기들을 잘 하지 않는다. (p.300)
소설을 읽다 보면 세상에는 눈이 먼 사람들이 가득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지금 우리가 겪는 코로나도 소설 속 실명처럼 정말로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사는 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눈이 멀자 그런 사람들의 불행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물론 이것은 세상이 시작된 이래 대를 이으며 계속되어온 일이긴 하지만.
소설의 끝에 가면 시민들의 눈을 멀게 만든 질병이 소멸되고 실명한 사람들의 눈이 정상으로 회복된다. 정신병동에서도 인간다운 품격을 잃지 않은 소수의 확진자들이 있다. 그들이 이런 대화를 주고받는다.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p.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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