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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식의 청담유감(有感)

학부모들이 번번이 속는 이유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03-03 09:45:39

 
▲홍찬식 칼럼니스트(전 동아일보 수석논설위원)
//한 때 전세 값 올렸다는 혁신학교의 예정된 실패
//처음에 혹시나 기대 걸었던 학부모들은 그럼 뭐였나
//입시 정책 등에서 권력자들의 국민 현혹은 진행형
//한 두 자녀 시대에 ‘초보 학부모’들도 한 가지 요인
//국민이 무관심하면 무너진 공교육 회복은 요원하다
 
“예술은 사기다”라고 말한 사람은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이었다. 예술에서 ‘진짜’와 ‘가짜’의 구분이 힘든 점을 백남준 특유의 어법으로 설파한 말이었다. 실제로 예술 사기꾼이 없으리라는 법도 없다. 비슷한 문제의식이 작동할 수 있는 분야가 교육이다.
 
어떤 교육제도를 택했을 때 성과는 당장은 드러나지 않는다. 나중에 실패로 판명이 났을 때 피해자들은 멀리 ‘시간 이동’을 해버린 뒤다. 옥석(玉石)의 구분이 어렵고 실체는 세월이 지나야 드러난다는 점에서는 교육도 예술과 다르지 않다.
 
혁신학교를 예로 들어보자. 현재 한국 교육계를 지배하는 좌파 교육감들의 트레이드 마크가 혁신학교다. 교육감이 초중고교 중에서 지정하는데 계속 늘어나면서 전국 학교의 16%인 1900여개 교에 이른다. ‘시험 없는 학교’ ‘토론과 인성 교육 위주의 학교’로 알려져 있다.
 
처음에 학부모들은 솔깃했다. 2009년 무상급식과 함께 혁신학교 공약을 내세워 당선된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이 “혁신학교 주변에 전세 값이 오르고 있다”고 자랑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요즘은 거꾸로 혁신학교로 지정된다는 소식이 들리면 반대 운동이 거세다. 혁신학교의 학력 저하 현상 탓이다. 초창기에 학부모들은 ‘혁신’이라는 겉포장에 깜박 속아 넘어간 꼴이다. 그리고 혁신학교에 다녔던 학생들은 실험 대상에 불과했던 걸까. 인생이 잘못됐다면 누구에게 보상 받아야 하나.
 
최근 간행된 서울시교육청 산하 연구기관의 보고서(‘서울혁신교육정책 10년 연구’)에서도 혁신학교가 핵심 쟁점이었다. 보고서가 내린 결론 중 하나가 ‘혁신학교 확대정책을 폐기하라’는 내용이었다. 현 서울시교육감은 좌파 교육감 중 한 명이므로 산하 연구기관의 보고서도 주로 ‘팔이 안으로 굽는’ 사람들이 만들었을 것이다. 그들조차 ‘혁신학교는 이제 그만 하라’고 말리고 나선 것은 혁신학교, 나아가 좌파 교육감들의 실패를 의미한다.
 
혁신학교 초기부터 교육계 주변에선 이런 결말을 충분히 예견하고 있었다. 우선 혁신학교는 ‘새로운 상품’이 아니라 ‘중고 상품’이다. 이전에도 역대 정부와 일부 교육감이 ‘열린 교육’(김영삼 정부) ‘새학교 문화 창조’(김대중 정부) ‘새물결 운동’(유인종 전 서울시교육감) 등 이름만 바꿔가며 시도했다가 슬그머니 사라진 적이 있다.
 
더구나 이전에는 동기 자체는 순수했지만 혁신학교는 정치적 속셈을 갖고 있었다. 전교조 소속 교사들에게 혁신학교 교장 자리를 마련해 주고, 인권과 민주 등을 강조해 ‘좌파 후속 세대’를 키우려 한다는 건 교육계에선 상식에 속했다. 어느 조사에서 수도권 교육청의 고위 간부 가운데 혁신학교에 자녀를 보낸 사람은 32명 가운데 1명에 그쳤다. 교육청 간부라면 자녀 교육에 최고 전문가들이다. 학부모들이 혁신학교 주변으로 이사를 가는 걸 보며 이들은 “이건 아닌데”라며 고개를 내저었을 것이다.
 
혁신학교 말고도 학부모들이 교육정책에 기대를 걸었다가 배신당한 사례는 많다. 공정성과 다양성 사이를 오락가락해온 입시정책만 해도 그렇다. 수능시험은 공정성에 방점을 찍은 제도다. 전국의 수험생들이 같은 날 같은 문제로 시험을 치르고 성적이 산출된다. 같은 조건에서 얻어진 점수를 갖고 대학에 지원하니 학부모들은 입시 결과에 승복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수능시험 준비에 유리한 서울 강남 쪽에 이주 수요가 몰리고 아파트 값이 상승하자 이번에는 다양성에 대한 요구가 분출했다. 비(非) 강남 학생들이 수능 점수가 모자란 것은 환경 탓도 있으므로 수능 점수에만 구애받지 말고 잠재적 성장 가능성도 평가돼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따라 내신이 강조되고 수시모집, 특기자 전형 등 입시의 다양화가 이뤄졌다. 그 결과 조국 전 장관 가족이 상징하듯 또 다른 모순들이 드러났다. 지금은 무게 중심이 다시 공정성으로 넘어가는 중이다.
 
정권을 잡은 권력자들은 교육 정책을 인기 획득의 수단으로 여긴다. 가장 민감한 입시제도의 경우 공정성과 다양성 사이에서 어느 쪽이 표에 도움이 될까 계산기를 두드리며 멋대로 뒤집는다. 요즘은 또 자사고·외고·국제고가 도마에 올랐다. 우리처럼 교육제도를 손바닥 뒤집듯이 바꾸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이념에 사로잡힌 운동꾼들이 갈수록 위세를 떨치면서 교육의 정치화는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학부모들은 혼란에 빠지고 불확실성 때문에 사교육을 찾는다. 교육 실패의 태반은 이런 왜곡된 구조에서 비롯되고 있다.
 
최근 각종 폭발력 강한 사회적 이슈들이 꼬리를 물면서 교육에 대한 논의는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그러나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듯이 교육이 유효한 사회적 해결책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의 소멸을 예고하고 있는 저출산 문제만 해도 자녀 교육에 대한 부담 때문에 아이 낳을 엄두를 내지 못하는데서 기인하는 것 아닌가. 양극화의 주범인 부동산 값 상승은 따지고 보면 강남의 교육 환경을 선호하면서 시작된 일종의 도미노 현상이다. 지역 불균형 문제도 지방의 교육 여건과 맞물려 있다.
 
한국은 국민 모두가 교육 전문가라고들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집집마다 한 두 자녀가 고작인 시대에 모든 학부모들은 누구나 ‘초보 학부모’로 시작해 ‘초보 학부모’로 끝난다. 초보는 남의 말에 솔깃할 수밖에 없고 시행착오가 따른다. 그렇게 아이를 키우고 나면 그때부터 교육은 관심 끝이다. 내 문제가 아닌 남의 일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힘들었던 트라우마 때문에 그쪽으로는 아예 쳐다보고 싶지 않을지 모른다. 그렇지 않아도 학부모들이 을(乙)의 입장인 교육은 어느새 공급자 ‘그들만의 리그’가 됐다.
  
특히 좌파 교육감들은 “교육은 정치”라고 보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선출직 수장(首長)임을 내세워 교육계 내부에서 왕처럼 군림한다. 폭주를 막을 제동 장치도 없다. 교육 문제에서 유일한 해결책은 무너진 공교육의 회복이다. 공교육 틀 안에서 최상의 교육이 확보된다면 많은 매듭이 풀릴 수 있다. 하지만 좌파 교육 10년 만에 우리 공교육은 빈곤으로 인한 학력 격차가 심화하는 등 더 황폐해졌다. 어느 평론가는 ‘미술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이 말을 잠시 빌려오자면 국민들이 많이 ‘아는 만큼’ 교육 권력자들이 속임수를 쓸 여지는 사라진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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