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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호의 ‘맛있는 동네 산책’

추억까지 구워 먹는 연탄불 구이 맛집

충남 도고면 뒷골목 맛집 ‘정다운연탄구이’

서울 상봉동 옛 물길 옆 정겨운 ‘동네갈비’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04-02 10:35:46

▲ 유성호 맛 칼럼니스트
연탄을 보면 두 가지가 퍼뜩 떠오른다. 하나는 시인 안도현 시 ‘너에게 묻는다’다. ‘너에게 묻는다 /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한두 번 이상 들어 본 너무도 유명한 구절이다. 짧지만 울림이 큰 시다.        
 
그는 ‘반쯤 깨진 연탄’이란 시에서는 ‘연탄, 처음으로 붙여진 나의 이름도 / 으깨어져 나의 존재도 까마득히 뭉개질 터이니 / 죽어도 여기서 찬란한 끝장을 한번 보고 싶은 것이다’란 비장함으로 의인화시킨다. 시인에게 연탄은 단순한 땔감이 아니라 우리의 분신 같은 존재인 것이다. 그만큼 연탄은 우리와 가까이 있었고 고마운 존재였다.      
 
두 번째는 연탄가스 중독이라는 트라우마 같은 기억이다. 7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닌 필자는 연탄으로 난방을 하던 세대다. 연탄보일러가 일상적이었고 아궁이에 바퀴 달린 레일식 연탄 화덕을 밀어 넣고 구들장을 데우던 형태도 있었다. 한옥과 구옥 나무 땔감에 의해 기름종이 장판이 시커멓게 타들어 갔던 흔적이 연탄과 비닐장판에도 똑같이 남았다. 등허리를 지지면 더없이 시원하고 좋았다.     
 
그러나 장판을 들쳐보면 방바닥과 벽 모서리나 방바닥 미장이 깨지면서 틈이 생긴 것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곳으로 치명적인 연탄가스가 새 들어와서 입에 거품을 물게 했고 때론 생명을 앗아가기도 했다. 필자 역시 가족 중에 연탄가스 때문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상황이 있었다. 지금은 추억 삼아 이야기하지만 의료 접근도가 좋지 않았던 당시에는 매우 급박하고 위험한 순간이었다. 오죽하면 동치미 국물이란 민간처방이 나왔겠는가. 그만큼 병원은 멀고 연탄가스는 가까웠다.     
 
연탄은 난방과 함께 조리의 화력으로 큰 역할을 했다. 바닥과 옆면이 까맣게 그을린 양은냄비 안에 끓고 있는 꽁치 김치찌개는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보글대면서 터지는 기포에서 새 나오는 새콤한 향에 취해 어느새 한입 가득 고인 침. 고등어도 굽고 삐득하게 말라가는 생태도 구웠다. 양미리를 구울 때 떨어지는 기름으로 불이 치솟았고 밥을 지을 때는 연탄불을 조절하는 뚜껑을 적절히 사용했다.            
 
1920년대 초 최초 연탄 등장
 
▲ 식당에 담벼락에 쌓여 있는 연탄과 연탄재. 하나의 볼거리다. [사진=필자제공]
 
연탄의 역사는 석탄산업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우리나라 석탄산업은 1891년(고종 28년) 평양 탄광지대 채굴권을 독일 거상 세창양행에 담보로 제공하고 은 10만냥을 차관받은 것부터 시작한다.     
 
세창양행은 독일 마이어상사가 인천에 설치한 무역 상사 지점이다. 1883년 인천이 개항되자 서양 무역 회사로는 최초로 지점을 설립했다. 그때 지은 2층 서양식 건물이 우리나라 양관(洋館)의 효시로 기록되고 있다. 세창양행은 인천에 들어오기 앞서 텐진, 홍콩 등 아시아에 적극적으로 진출했는데, 청국 정부에서 관리로 근무했고 한국 외교 고문관 겸 통상업무의 총괄자로 부임한 독일인 묄렌도르프의 역할이 컸다.     
 
이후 1905년 광업법이 최초로 제정됐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에 의해 연탄을 처음 생산했고 본격적인 탄광 개발과 채굴한 무연탄을 옮기는 철도도 개발됐다. 1920년대 평양광업소에서 벽돌 모양의 연탄(2공탄)이 최초로 만들어졌다. 1930년대 부산 삼국상회에서 연탄을 만들기도 했지만 당시는 주로 산업용 혹은 일본인 가정용으로만 보급됐다.  
   
삼표·대성·삼천리·협신연탄 등 성업
 
▲ 서울 한 연탄공장 전경.[사진=국가기록원]
 
자주적 연탄회사가 설립되는 등 우리나라에서 연탄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광복 이후였다. 대성산업 김수근 창업주는 1947년 대구에서 작은 연탄공장인 대성산업공사를 세웠다. 직원 2명에 인부 10명과 함께 수동식 연탄 생산 기계를 설치하고 ‘대성연탄’을 찍어 판매했다. 1950년대 들어 서민들 생활필수품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하면서 같은 해 대한석탄공사법이 만들어지고 대한석탄공사가 창립됐다.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무연탄 생산은 부진을 면치 못하다가 휴전이 되면서 급속히 증가했다. 연탄 수요가 늘면서 1959년 대성연탄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서울 왕십리에 공장을 준공했다. 계속적인 사세 확장으로 1970년 영등포에 연탄 제조 공장을 지었다.     
 
공장 자리가 지금의 구로구 신도림동 360-52번지 일대로 현대백화점 디큐브시티점이 들어선 자리다. 대성산업이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매물로 내놓은 것을 현대백화점그룹이 사들여 주인이 바뀌었다. 1층 한쪽에는 당시 대성연탄을 만들던 산업유산 일부가 전시돼 있다.      
 
대성연탄에 이은 후발주자로 삼천리연탄이 있다. 고향이 함경남도 함주인 이장균·유성연 공동창업주가 의기투합해 1955년 서울 을지로에 연탄공장(삼천리연탄기업사)을 세우면서 시작했다. 이 창업주가 경북 포항에서 무연탄 유통업을 한 것이 계기다. 피란지 부산에서 연탄 사용이 늘어나는 것을 보고 결심한 일이다.     
 
상공부 석탄과장이던 정인욱이 대한석탄공사를 거쳐 직접 탄광 경영에 뛰어들면서 만든 것이 삼표연탄이다. 삼표연탄은 연탄파동을 거치면서 돈방석에 앉았다. 초고속 윤전 시설을 갖춘 삼표연탄은 서울시내 연탄시장 점유율 80%에 달했다. 대성연탄, 삼천리연탄, 협신연탄 등이 뒤를 이었다. 이들 연탄 회사는 60~80년대 엄청난 연탄 수요에 따라 에너지기업으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연탄은 공기 접촉면을 늘려 잘 타기 위해 구멍을 여럿 뚫었는데, 구멍 개수에 따라 구공탄, 십구공탄, 삼십이공탄 등으로 불렸다. 가정용 일반 연탄은 구멍이 22개이다. 한가운데 1개, 2열에 7개, 3열에 14개의 구멍이 나 있다. 연탄은 화력이 좋고 무엇보다 오래 타서 1950년대 이후 가정 난방용으로 인기가 좋았다. 쌀과 함께 가장 중요한 생필품으로 자리 잡았다.    
 
70년이 지난 요즘도 연말이면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104(백사)마을에는 연탄 자원봉사 행렬이 이어진다. 이곳은 마지막 서울의 달동네로 불리며 여전히 연탄을 때는 집이 많은 낙후된 곳이다. 백사마을은 1960년대 후반 청계천을 정비하면서 발생한 이주민이 정착한 곳이다.
 
과거엔 가정뿐만 아니라 일반 식당에서도 난방이나 연료로 쓰였는데 지금은 일부러 연탄 직화구이를 특화시키는 식당이 늘고 있다. 직화구이 식당 중 상당수는 숯과 연탄이다. 숯과 연탄은 대류열을 이용한 가스와는 달리 열을 빠르고 고르게 전달하는 복사방식으로 가스보다 열전달 속도가 5배 이상 빠른 것으로 알려졌다. 연탄이나 숯 직화구이는 불과 접촉면에서 발생하는 기름이 떨어져 불완전연소가 일어나는 데, 건강에는 큰 문제는 없다고 한다.     
 
뒷골목 레트로 정서 가득한 맛집
 
▲ 머글랭가이드 아산 맛집인 ‘정다운연탄구이’는 뒷골목에 위치해 레트로 감성까지 충만한 곳이다. 파김치찜이란 독특한 메뉴를 맛볼 수 있다. [사진=필자제공]
 
필자는 3월 연탄 직화구이 식당 두 곳을 방문했는데, 옛 추억을 떠올리며 맛있는 식사를 접해서 칼럼으로 공유한다. 먼저 한 곳은 충남 아산 도고에 있는 ‘정다운연탄구이’ 식당이다. 이 식당은 지난달 24일 한 달에 한번 아산지역 식당을 배경으로 펼치는 ‘머글랭가이드’를 위해 방문한 곳이다. 도고는 온양온천역에서 서쪽으로 15km 지점에 위치한 곳으로 신라시대부터 약수로 이름난 곳이다. 본격적으로 온천으로 개발된 것은 200여 년 전부터다. 온양온천과 함께 과거 주요 온천 여행지로 각광받았다.      
 
식당으로 접어드는 입구에는 ‘박대통령별장’이란 커다란 세로형 간판이 서있다. 초행길 식객은 영문을 몰라 궁금해하던 차에 머글랭가이드의 가이드인 순천향대 중국어과 홍승직 교수가 “고 박정희 대통령이 지방 순회를 마치고 묵었던 곳으로 1979년 삽교천방조제 현장에 갔다가 마지막으로 들른 후 서울에 올라가 궁정동에서 최후를 맞았다”고 설명했다. 도고별장스파피아라는 회사에서 98년 인수하여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다가 2003년 건강랜드로  개장해 사용하고 있다.     
 
좁은 골목으로 접어들자 독특하게 생긴 건축물이 나오고 그와 접한 조립식 건축물에 간판 대신 ‘정다운연탄구이’라는 상호가 붙어 있다. 식당 앞에는 하얗게 변한 연탄재 수백 장이 담벼락에 가지런히 쌓여 있고 커다란 LPG 가스통 뒤 처마 밑에는 시커먼 연탄 수백 장이 같은 모습으로 쌓여있다.     
 
5시30분 경 도착하다 보니 우리 일행이 첫 손님이다. 한쪽에는 연탄 여섯 장을 넣어 불을 붙이는 커다란 난로가 있고 그 안에는 벌겋게 달아오른 연탄이 손님맞이(?)를 준비하고 있었다. 주문과 동시에 연탄 한 장이 원통형 식탁으로 배달됐다. 과거엔 드럼통을 개조해 만들었지만 요즘은 아예 직화구이 맞춤형 식탁으로 나온다. 건물은 낡았지만 연기를 흡수하는 배기 후드는 매우 깔끔하게 설치돼 있다.     
 
목삼겹살, 통가브리살, 양념갈매기살, 돼지껍데기 각 1인분과 파김치찜을 주문했다.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마스크를 무색하게 하며 코끝을 자극하는 새콤달콤한 파김치 냄새가 났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 파김치찜이란 독보적 메뉴를 선보이고 있었다. 냄새를 맡고 난 후엔 주문을 안 할 수 없는 메뉴다. 그런 면에서 이 신박한 메뉴의 개발은 이 식당의 성공 열쇠라고도 할 수 있다.    
 
충청도는 과거 돼지고기를 공물로 바쳤던 이력이 있다. 그만큼 맛이 보장된 돼지고기 주산지다. 이 식당 역시 맛있는 충청도 돼지고기의 맛을 극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화력을 연탄으로 사용하고 있다. 화력과 불판의 상관관계를 잘 파악하는 것도 고기구이집에서는 꼭 필요한 부분이다. 불판에 고기가 잘 붙지 않고 효율적으로 구워져야 한다. 또 불판에 그을림이 생기지 않아서 교체가 불필요하고 세척에 용이해야 한다. 불판이 직화를 얼마나 통과시키는 것도 관건이다. 이런 면에서 이 식당의 굵은 철심의 석쇠는 적절한 선택으로 보인다.     
 
명불허전 육즙 가득한 목삼겹살, 질 좋은 통가브리살은 굽는 족족 사라졌다. 양념갈매기살은 단맛이 강했고 파김치찜 역시 파 특유의 단맛에 주방의 감미가 더해졌다. 그러나 파김치찜의 단맛은 손님을 설득시키는 데 성공했고 그 결과 7시30분 경 시나브로 식당은 만석이 됐다. 위의 한계로 인해 메뉴판을 화려하게 장식한 된장라면, 땡초라면. 누룽지(동절기 메뉴, 하절기엔 열무국수)를 맛보지 못해 아쉬웠다. 도고면 기곡로 84번길 아무도 없을 것 같은 골목 안쪽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서면 연탄 앞에 옹기종기 모여 돼지고기를 구우며 술잔을 부딪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깔끔하게 정리한 갈매기살 맛집
 
▲ ‘한번 맛을 보면 또 오고 싶은 곳’이란 식당 슬로건을 내걸고 연탄구이 갈매기살을 주력으로 팔고 있는 ‘동네갈비’. 이곳 역시 옛 물길 위에 식당에 세워져 있어 레트로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사진=필자제공]
 
아산을 내려가기 전인 19일에는 서울 중랑구 상봉동에 있는 ‘동네갈비’란 식당을 방문했다. 이 곳 역시 식당입구에 사용 전 연탄을 잔뜩 쌓아 놨다. 이 역시 좁게는 쇼잉, 넒게는 하나의 엑스테리어 요소다. 연탄 직화구이 식당이란 가장 강력한 어필인 것이다. 넓지 않은 실내지만 식당 앞 야장에 테이블을 깔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곳이다. 식당이 작으면 작은 만큼 인력이 덜 필요하단 장점이 있지만 손님이 몰렸을 때는 응대가 늦은 단점이 있다. ‘동네갈비’는 실내만 한다면 여사장님 혼자 감당할 수 있는 네 테이블. 야장을 쓰면 아르바이트가 필요한 구조다.    
 
‘동네갈비’는 오래된 물길이 있었던 곳을 복개한 곳에 위치해 있다. 물길은 곧게 흐르지 않는다. 도로에 굽이가 몇 개 있어 에스라인이 보이면 십중팔구 물이 흘렀던 흔적이다. 물길 위 굽은 도로변에 있는 동네갈비는 그래서 더 정겹다. 시그니처인 갈매기살은 손질이 제법 정갈하게 잘돼 있다. 도매상에서는 지방이 붙은 채로 납품하기 때문에 갈매기살은 식당 주인의 손끝에서 재탄생한다.     
 
갈매기살은 국내산 냉장육이라 꼬들하니 식감이 좋다. 돈의동과 마포 지역에 몰려 있는 갈매기살 식당의 맛을 능가하는 깔끔함이 있다. 그것은 아마도 지방을 잘 정리한 수고가 깃든 맛이리라. 갈빗살은 수입육이지만 관리를 잘한 탓에 국내산 못지않다. 갈매기살과 갈빗살은 돼지와 소의 육향 차이를 기분 좋게 느낄 수 있는 경험이다.     
 
밑반찬을 보니 성실하게 식당을 운영하는 걸 느낀다. 청국장과 된장을 섞어 꼬릿한 맛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된장찌개도 빼놓으면 섭섭하다. 나물반찬이 좋아 비빔밥 그릇 하나 만들어 달라고 하니 바쁜 와중에도 계란프라이 하나 부쳐서 넣어준다. 이런 식당은 한번 더 가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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