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교육 표준안’의 내용 체계는 학교 급별로 초등학교 저·중·고학년과 중학교, 고등학교 등 5개 단계로 나뉜다. 내용과 활동이 점차 추가·확장되도록 편성된다. 초등 1·2학년에게는 몸, 생명, 가족, 이성, 결혼 등의 기본 개념과 함께 생식기 청결 관리, 성폭력 의미와 대처·예방법, 성역할과 양성평등 등을 알려준다.
초등 3·4학년의 경우 다양성 존중과 성차별 없는 사회 정도가 추가된다. 5·6학년부터 몽정과 월경, 출산과정, 사춘기, 에이즈 예방, 또래 성폭력 등으로 범위가 확 커진다. 이후 중학교에서 성 충동, 성 욕구, 피임 필요성과 방법, 미혼모·미혼부 등이 등장하고 고교로 넘어가면 섹슈얼리티, 인공임신중절, 데이트 성폭력, 성매매와 성 상품화 등으로 나온다.
그동안 표준안은 보수와 진보 양측으로부터 매서운 공격을 받았다. ‘남성의 성에 대한 욕망은 때와 장소에 관계없이 나타난다’(초등), ‘데이트 성폭력은 여자가 데이트 비용을 내지 않아서 생긴다’(고등) 등 잘못된 성 인식을 주입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어서다.
이를 두고 한쪽에선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고 여성을 무조건적 약자로 설정했다고 비판했고 다른 한쪽에선 남성의 성욕을 통제 불가능으로 합리화하면서 여성이 성폭력 원인을 제공했다는 식의 여성혐오적인 시각을 담았다고 성토하는 식이다. 이것이 지금까지 학교 성교육의 최상위에 위치한 표준 지침(manual)이다. 표준안은 아직도 바뀌거나 폐기되지 않았다.
“국민적 합의 없이 표준안 벗어난 성교육은 불필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는 2017년 일부 학부모 및 시민단체가 교육부 표준안 폐지를 요구한 데 대해 표준안의 방향성을 유지해달라는 건의서를 교육부에 제출한 바 있다. 표준안은 동성애자 등 성소수자를 일절 언급하지 않았으며 표준안 운영시 유의사항(지침)은 양성평등 관점을 유지하고 교사 개인의 성 가치관에 따라서는 안 된다고 적시했다.
당시 한국교총이 표준안 유지를 건의한 것은 학생의 성 경험 비율이 증가하고 성관계 경험의 시작연령이 낮아지는 상황에서 매체의 발달로 왜곡된 성지식과 정보가 범람함에 따라 기존의 처방 중심 그리고 부분적·산발적·즉흥적 교육으로는 올바른 대처가 쉽지 않다는 판단에서였다. 교사 개개인의 성 인식과 성 가치관에 따라 성교육이 달라져 건전하고 일관성 있는 성 가치관을 확립하는 데 여러 가지 혼란과 갈등과 한계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한국교총은 성 소수자의 인권이 차별받으면 안 되지만 헌법과 규정을 넘어서 국민적 합의를 이루지 못한 성소수자 문제를 교사 개인의 판단에 따라 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정하고 조장하는 교육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김동석 한국교총 교권본부장은 지금도 한국교총이 같은 입장을 견지하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김 본부장은 현 교육부 남녀평등교육심의회 위원으로서 남녀평등교육 증진을 위한 교육정책과 제도개선, 교육과정·교수방법·교육내용 등을 심의한다.
그는 “(성교육 관련) 시대적 변화와 요구, 흐름 등을 표준안에 반영하는 노력은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학생, 학부모, 교사 등 세 주체가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라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김 본부장은 원치 않는 임신을 피하기 위한 피임방법이나 학생 개인에 따라 책임 있는 성 행동 등을 과거와 달리 지금 시대에 필요한 교육으로 꼽았다.
마치 흡연자의 인권은 존중하되 흡연의 위험성과 문제에 대해 가르치고 금연을 교육하는 것처럼 국가의 교육은 후속세대에 올바른 가치를 선별적·체계적으로 가르쳐야 하고 이를 위해 국가수준의 표준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그는 청소년의 성관계 권리 주장이나 일부 교사의 동거나 동성 간 결혼 등 다양한 가족제도를 인정해야한다는 주장에는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김 본부장은 “헌법이 양성 간 혼인에 의한 가족생활을 기본 전제로 하기 때문에 공교육에서도 이에 따른 가족제도를 가르치는 것이 타당하다”고 못 박았다. 우리나라 헌법 제36조 1항은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유지돼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는 “성적 소수자의 인권 보장에 대한 교육과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가치체계로 동성애, 동성혼, 혼전 동거 등을 인정하는 형태의 교육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면서 “청소년 성교육은 금욕을 기본 전제로 생명 존중, 책임감 확립, 성에 대한 다양한 가치 등을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표준안이 실질적인 효력을 잃은 상황에 대해서는 “일부의 폐기 목소리가 거세니까 교육부도 부담을 느껴 표준안이 사실상 작동하지 않고 있다”면서 “표준안을 되살리려고 하면 다시 극심한 반대에 부딪힐 게 뻔한 상황이므로 교육부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국가수준 교육에 기본적인 방향설정은 필요하고 중요하다”며 “(표준안은) 필요하면 개선하고 보완해야지 폐기를 요구할 대상이 아니다”고 거듭 강조했다.
“아이들 성장 걸림돌 된 학교 성교육… 가정·부모 윤리적 관점의 성교육 강조돼야”
성교육과 관련된 대립이 일어나고 잘못된 교육이 퍼지는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은 1960년대 서유럽과 미국 등에서 일어난 소위 ‘성 혁명’이 그대로 우리나라로 옮겨왔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성 혁명’은 성 해방 운동이다. 이성 간 결혼, 일부일처제 같은 전통적 윤리를 거부하면서 혼전 성관계, 프리섹스, 동성애, 소아성애, 낙태 등을 옹호했다. 초기에는 거부 반응이 많았으나 관련 정당 활동, 시민운동 등이 헤게모니(패권)를 쥐면서부터 진보적 입장이 주도권을 잡게 됐다.
민성길 연세대학교 의대 명예교수(정신과)는 성교육에서 진영 논리와 다툼이 벌어지는 것 자체는 당연하다고 말한다. 성을 바라보는 관점도, 성교육에 바라는 지향점도 다르기 때문에 충돌은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성 담론을 장악하려는 보수와 진보의 충돌은 앞으로의 성교육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 교수는 정년퇴임 후 의사, 교수 등 관련 전문가들과 한국성과학연구협회를 출범시켰다. 2016년 성과학연구협회는 첫 사업으로 학부모와 교사를 위한 성교육지침서를 표방한 <성, 사랑, 가정>을 출간했다. 이후 강연회, 세미나를 통한 토론과 현장의 요구 및 새로운 자료 등을 반영해 2019년 개정판을 냈다.
민 명예교수는 책을 내기 위해 교육부 표준안과 함께 최신 성과학 연구결과 등을 모두 검토했다. 그는 이를 토대로 성교육을 하되 전통적 성 윤리 또한 강조하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학생들을 조숙으로 이끌 위험이 있는 개방된 성 윤리나 성소수자, 동성애 등의 성교육을 지양하고 성교육을 인격 교육의 한 부분으로 봐야한다”라며 “이는 성, 사랑, 가정에 대해 기본적인 것과 전통적이고 윤리적인 교육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러한 성교육을 하는데 일차적으로 가정에서 부모가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성 대신 젠더를 쓰는 이들에게도 일침을 날렸다. 성(性)은 남자와 여자를 정의하는 생물학적 및 생리학적 특징을 말하고, 젠더는 해당 사회가 남자 및 여자에게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즉 사회적으로 구성된(constructed) 역할, 행동, 활동, 및 속성들을 의미하는 용어였다. 원래 성이라는 개념 하나만 있었고 충분했는데 이제는 사회적 의미가 내포된 성적 용어를 사용할 때는 젠더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 됐다.
민 명예교수는 “젠더라는 용어의 유래를 보면 그 유래는 성전환 수술과 페미니즘, 나아가 젠더 주류화 등과 관련된다”며 “젠더 정체성, 트랜스젠더, 젠더 퀴어, 제3의 젠더 등의 개념을 성립시키기 위해서 ‘젠더’라는 용어가 필요했던 것처럼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성을 비밀처럼 꽁꽁 싸매느라 애먼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것보다 있는 그대로 드러내자는 입장에도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오히려 지나치게 사실적인 묘사와 구체적인 설명은 아이들에게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를 줄 수도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민 교수는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피임 방법, 동성애 같은 것을 왜 알려줘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중·고등학교 대학교 진학하는 데 필요한 지식도 아니고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콘돔 끼우는 방법을 몰라서 피임을 안 하진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렇게 개인적인 문제를 공교육에서 책임지려고 하니까 자꾸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최소한의 교육만을 학교가 맡고 나머지 사적이고 은밀한 내용은 부모에게 맡기는 것도 한 방법이며 또 부모의 권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원석·김학형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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