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의 정기를 드높인 안중근 의사(義士)선생님은 일제의 강한 외압에도 전혀 굴하지 않으신 분이에요. 안 의사는 오로지 조국의 독립과 안녕을 위해 국내 및 국외에서 계몽운동을 하셨죠. 저희 단체는 그러한 안 의사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애국정신, 평화사상을 국내외에 널리 선양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죠. 앞으로도 저희는 안 의사의 위대한 정신과 사상을 계승·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더욱 최선을 다할 거예요.”
1905년 체결된 을사늑약의 원흉이자 한일강제병합을 추진했던 인물이 있었다. 그가 바로 초대 대한제국 통감을 맡았던 이토 히로부미다. 그는 1909년 10월 26일, 당시 러시아 재무상이었던 코코프체프와 회담하기 위해 만주 하얼빈에 방문했다가 한 조선인 청년이 쏜 총탄에 가슴을 맞고 사망했다. 그 청년이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안중근, 그는 오직 조국의 독립과 세계 평화를 염원했다.
이후 6차례 재판 끝에 사형선고가 내려졌으며 1910년 3월 26일, 32세의 젊은 나이로 순국했다. 안 의사의 일대기와 업적을 살펴보면 그의 공적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 내용엔 ‘1909년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했다’는 짤막한 글귀밖에 없다.
사단법인 안중근의사숭모회는 이러한 안 의사의 업적을 널리 선양하기 위해 미국, 중국, 일본, 유럽 등의 여러 나라에서 국외선양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이 단체는 1963년 당시 독립운동가 이강, 김홍일, 안춘생 등 15명이 뜻을 같이해 안중근 의사의 애국정신과 평화사상을 기리기 위해 설립됐다. 이후 매년 순국추모식, 의거기념식, 탄신참배행사를 비롯한 선양활동을 추진하고 있다.
순국 111년 지나도 귀향 못 한 안 의사 유해… “발굴에 두 가지 걸림돌 작용”
스카이데일리는 서울 중구 남산자락에 위치한 안중근의사숭모회관(안중근의사기념관)을 방문해 이주화 학예팀장과 이혜균 사무국장을 만날 수 있었다. 먼저 기자는 이 사무국장으로부터 사업활동 내용과 본 단체에 몸을 담그게 된 계기 등을 들어봤다.
“저희 단체는 안 의사를 추모하고 고귀한 애국정신과 평화사상을 널리 알리기 위해 1963년부터 현재까지 선양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어요. 그뿐만 아니라 법인설립과 더불어 순국행사, 의거행사, 탄신행사, 의전행사 등도 지속 추진하고 있죠. 또한 안 의사의 높은 기개와 사상을 더욱 전파하기 위해 해외서도 선양사업을 진행해요.”
“제가 이곳에서 활동하게 된 지는 벌써 25년이 됐어요. 이전엔 한국전력과 무역회사에서 근무를 했습니다만 결혼과 육아 등으로 모든 일을 접었죠. 이후 서울시에서 일본어 통역자원봉사로 활동하다 안중근의사기념관으로부터 제의를 받아 일하게 된 것이 계기예요. 당시 안중근의사기념관을 찾는 일본인이 많았는데 그들에게 안 의사를 바로 알리기 위해 업무 중에 틈틈이 로컬가이드 역할을 병행하기도 했죠.”
안중근의사기념관은 국가보훈처 국가관리 기념관으로서 안중근의사숭모회에서 위탁 관리·운영하고 있다. 이 사무국장은 짧지 않은 세월을 안중근의사를 알리는 사업에 종사하는 동안 가장 보람 찼던 일도 회상했다. 국내 선양활동은 직원들과 함께 역할을 나누고 사업 하나하나에 퍼즐 맞추듯 완성해 나가며 많은 이가 호응해줄 때, 국외 선양활동에선 일본인과의 교류를 통해 그들이 안중근 의사를 바로 이해하며 공감할 때 역할을 다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특히 감명깊었던 것은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이 칸트의 영구평화론과 상통하며, 유럽연합의 이념을 선구할 수 있다고 밝힌 일본인 학자와의 만남이었다고 전했다.
이주화 학예팀장은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지 111년이 되도록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아직까지 유해발굴과 관련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실정이라면서 이 팀장은 유해발굴 작업이 더뎌지고 있는 이유를 차분히 설명했다.
“뤼순 감옥 북쪽 원보산은 안중근 의사가 묻혔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예요. 2008년 중국 당국과 대대적인 발굴을 했지만 결국 실패했죠. 그 뒤 중국의 입장이 변하기 시작했으며 발굴을 허가하는 데 두 가지 조건을 제시했어요. 첫 번째는 안 의사가 어디에 묻혀 있다는 일본의 사료를 가져오라는 것이죠. 물론 일본은 이를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지만 분명 어딘가에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해요.”
“두 번째는 남북 간의 합의를 조성하라는 것이에요. 아무래도 안 의사의 고향이 황해남도 해주니까 북한과 협의하라는 입장을 표명한 거죠. 2008년도 김정일이 집권했을 당시엔 지나가는 말이라도 발굴하면 좋다는 식으로 얘기했지만 김정은 정권이 들어서고 나서 공식적으로 브리핑을 한 적이 없죠. 안 의사 유해발굴을 위해선 이것이 넘어야 할 큰 산이라 봐요.”
이 사무국장도 공감하며 한마디 거들었다. 이 사무국장은 남북이 2008년도 중국에서 유해발굴을 공동 추진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현재 유해매장 추정지는 현재 아파트 단지가 들어섬에 따라 원래의 모습을 잃은 상태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일본에선 안 의사 유해와 관련된 공식적인 자료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아직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日 우익 그릇된 역사왜곡으로 한일 관계 걸림돌 우려… “안 의사 디딤돌 삼아 양국 평화 구축해야”
일본 우익 세력은 안 의사를 테러리스트라고 규정하며 평가절하하고 있다. 이는 한일 간 관계 향상 및 신뢰 회복을 위해선 반드시 풀어야 할 하나의 과제다. 기자는 이 사무국장에게 이같은 일부 우익 세력들의 왜곡된 역사 인식으로 인해 자칫 한일 관계 회복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질문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이 의외였다.
“아베 정권 이후엔 안 의사를 범죄자 혹은 테러리스트라 부르지만 순수한 일본 민간인 중에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고군분투한 안중근의사를 이해하고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일례로 일본에서 안중근 의사를 연구하는 도쿄 호세이대학 마키노 에이지 교수는 안 의사를 기리며 추모식에도 참석하신 적이 있죠. 그분은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을 연구하는 대표적인 일본 학자 중 한 사람이죠. 이밖에도 꾸준하게 세미나, 특강 활동 등을 하셨어요.”
“1981년과 2002년도 일본 미야기현내에 안 의사를 위한 석비 2기가 건립돼 매년 추모제가 거행되고 있어요. 2010년 일본 사가현의 어느 한 마을에선서도 마을 사람들이 각자 돈을 거둬 ‘안중근 동양평화기원비’를 세웠죠. 이는 순수히 안 의사를 기리기 위한 취지예요. 예전에 저희도 여러번 그곳을 방문했었는데 그분들로부터 일본내 우익세력이 협박전화로 석비를 깨어버리겠다고 하는데 자기들은 아무런 힘이 없고 어찌할 도리가 없어 겁이 난다는 말을 들었어요. 결국 현재는 우익의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설치한 장소에서 해체해 모처로 옮겨다 놓은 상태예요.”
“그럴 정도로 많은 일본인이 안 의사에 대해 높게 평가하고 있죠.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안 의사의 사상과 철학을 일본 각 지역에 널리 전파하다 보면 일본사람들도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고 정치인들도 안 의사를 다시 보지 않을까. 결국 정치라는 건 국민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죠. 한일 간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볼 때 걸림돌이라 지적하지만 그건 커다란 착오예요. 오히려 안 의사를 디딤돌 삼아 양국의 평화를 구축하는 것이죠.”
문득 기자는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처우 실태가 궁금했다. 오늘날 독립운동가 후손 대부분이 제대로 된 지원도 받지 못한 채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쩌면 이는 부끄러운 대한민국의 자화상이자 아닐까 생각했다. 이 팀장도 공감의 뜻을 내비치며 독립 유공자 후손 처우 실태에 대한 개선점을 거듭 강조했다.
“저도 물론 같은 생각이에요. 소정의 연금 보상금이 나오지만 금액도 적을뿐더러 범위가 굉장히 제한적이고 까다로운 편이죠. 예를 들자면 혜택이 손자까지만 해당되고 증손자부터는 혜택이 없어요. 이같이 사각지대에 있는 경우가 많아 안타까울 따름이죠. 후손들의 모호한 포상제도와 관련해 하루빨리 법 제도개선이 시급하다고 봐요”
끝으로 이 사무국장은 교민들을 중심으로 안중근 의사와 평화사상을 널리 알렸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혔다.
“안 의사는 개인적인 원한에 이토를 죽인 것이 아니에요. 의거를 통해 온 세계가 한국이 처한 상황을 알고 독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결행하신거죠. 그런데도 일본 우익세력은 안 의사를 테러리스트라 얘기하며 일본 정부의 입장도 쉽게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 봐요. 앞서 언급한 것처럼 결국 민간인들에게 안 의사의 기개와 사상을 이해시켜 나가는 노력이 중요하죠. 이밖에 일본,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에 있는 교민들을 중심으로 안 의사를 좀 더 알리고 평화사상을 널리 알렸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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